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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Bright Feb 16. 2020

놓치면 후회할 고궁 속 건축전.events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 기억된 미래 (~2020.4.5)

ⓒ Sam Bright

서울의 고궁에 특별한 예술작품들이 들어섰다.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다섯 팀이 궐내 건축전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 기억된 미래(Architecture and Heritage: Unearthing Future)>을 연 것이다. 문화재와 현대 예술의 경계를 합쳤다는 호평을 받으며, 약 50만 명의 누적 관람객 수(1월 15일 기준)를 기록한 이 전시는 4월 5일까지만 운영된다.

  


덕수궁,

미래를 품다


전시를 소개하기에 앞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덕수궁의 역사를 먼저 소개해야 한다. 국력이 쇠퇴하던 조선말, 고종은 조선의 연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 뒤 광무개혁(1897~1904)을 단행했다. 이 개혁은 열강 세력에 기대지 않고 옛것을 근본으로 삼아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려는 황실의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기에 고종이 다시 지은 덕수궁은 동서양의 건축 양식을 한데 어우르고 있으며, 독립문과 파고다 공원 역시 도시 구조를 근대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를 반영하고 있다.



외세의 침략으로 충분히 꽃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고종의 꿈을 기리는 한편, 현대적 건축 언어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작품들이 서울의 고궁에 모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항과 근대화라는 격변의 역사를 지닌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현대 건축가 5팀이 함께 힘을 모았다. 이들은 대한제국이 꿈꿨던 새로운 시대, 미래의 도시상을 저마다의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와 격년제 정례 전시 협약을 맺은 이후 처음으로 함께하는 전시다. 또한 지난 2012년과 2017년, 고궁에서 펼치는 현대미술의 향연으로 대단한 호평을 받으며 각각 관람객 35만 명, 90만 명을 동원한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Deoksugung Outdoor Projects)’의 계보를 잇는 건축전으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다섯 장소와 예술



덕수궁 광명문 (Gwangmyeongmun Gate)에는 ‘밝은 빛들의 문 (Gate of Bright Lights)’이 자리 잡았다. 태국에서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다가 현재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Space Popular (Lara Lesmes, Fredrik Hellberg)는 ‘광명문’이라는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중앙 출입구에 빛의 스크린을 설치했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가상의 공간이 궁궐 한복판에 이색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시대에 따른 건축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이 주류가 된 현대에 누구나 새로운 ‘궁궐’의 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고종황제의 침전이나 국정 논의 장소였던 함녕전 (Hamnyeongjeon Hall) 앞마당에는 홍콩에서 가장 혁신적인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CL3 (William Lim)의 ‘전환기의 황제를 위한 가구(Furniture for an Emperor in Transition)’를 만나볼 수 있다.


CL3는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스스로 왕에서 황제가 되었다는 점과 이 시기가 서구를 향한 개방, 즉 중첩과 전환기였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이것을 상징하는 장소로 함녕전을 골랐다. 그리고 이 전환기의 황제가 사용할 가구를 만든다는 가정을 하고 바퀴 달린 가구를 제작해 이동성과 변위, 융통성에 대한 개념을 탐구한다. 작가는 황실의 가마와 가구, 그리고 서양식 가구 형태를 조합해 ‘이동용 가마’와 같은 6개의 가구를 디자인했으며, 관람객들은 가구에 직접 앉아보며 동서양이 만나던 대한제국기 황제의 일상적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덕수궁의 법전인 중화전 (Junghwajeon Hall) 앞에는 ‘201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건축 부문, 문체부 장관 표창)을 수상한 OBBA (Lee Sojung, Kwak Sangjoon)의 ‘대한연향 (Daehan Yeonhyang)’을 만날 수 있다. 1902년 이곳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전통 연회가 열렸는데, 연회에서 사용했던 햇빛과 바람을 막아주는 가리개에서 착안해 작품이 탄생했다.


OBBA는 만인산과 천인산이라는 가리개에서 ‘사용자의 의도나 기능에 따라 공간이 창출되는 변화의 가능성’을 포착했고, 오색 반사필름을 재료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 필름이 바람에 반응하며 매 순간 풍경을 다르게 만든다. 이는 빛과 바람의 충돌을 통해 반사와 투과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현대적 가치로 자리 잡은 유연한 사고/가치/공간을 암시한다.



석조전 (Seokjojeon Hall) 앞 정원에는 조선 최초의 서양식 정원이 있다. 여기서 캐나다 건축가이자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대만관의 대표 작가로 뽑힌 Bureau Spectacular (Jimenez Lai)가 ‘미래의 고고학자 (Future Archeologist)’를 선보인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먼지와 흙이 쌓여 지층이 만들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계단이라는 ‘미래의 지면’을 만들었다.


공중에 띄워진 이 땅덩어리가 ‘몇 세기 뒤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이라고 말하며 이곳에 오르면 현재인 2019년을 과거처럼 바라볼 수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작품의 계단을 오르는 것은 미래로 향하는 특별한 여정인 셈이다. 또한 ‘궁궐’을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보는 게 아닌,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은 덤이다.




덕수궁을 수놓은 네 개의 작품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마당 (MMCA Seoul Museum Madang, the central yard of the museum)에는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인 Obra Architects (Jennifer Lee and Pablo Castro)의 초대형 파빌리온, ‘영원한 봄 (Perpetual Spring)’이 전시 중이다. 가을과 겨울 전시기간에도 봄의 온도를 항상 유지하기 위해 가로 15m, 세로 7.6m 크기의 투명 반구체를 이용해 실내를 환하게 밝힌다. 작품명의 ‘봄’은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해 온 인류의 역사적인 행동들이 ‘프라하의 봄(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 ‘아랍의 봄’(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아랍 중동 국가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의 통칭)과 같이 봄으로 은유되는 것에 착안했다.


특히 이 공간에 ‘세계적 기후와 환경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시각적 장치’를 설치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작가는 오늘날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르는 기후변화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따듯한 공간 덕분에 혹한의 날씨에도 작품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며, 회의를 하거나 친구들끼리 모임의 장소로도 사용할 수 있다. 공간 사용은 www.perpetualspring.org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월간 KOREA 2020-02 Can't-Miss This 기억된 미래]

Originated from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Organized & photographed by SAM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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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KOREA 홍보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글과 사진의 가공/사용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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