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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Bright Mar 17. 2020

궐 담 넘은 한식, 한복려 명인.interview

국가무형문화재 한복려 명인을 만나다

어머니 손을 잡고 창덕궁을 드나들던 한 소녀는 오늘날 궁중음식의 대가가 되었다. 순종 비를 모셨던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황혜성 선생을 거쳐 한복려 명인에게 궁중요리의 맥이 전해졌다. 조선왕조의 대단원이 막을 내린 후에도 정통 한식의 계보를 잇는 명인을 궁중음식연구원의 주방에서 만났다.


ⓒ Studio Kenn


음식으로 하나 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됐다. 분단 55년 만에 남북이 다시 손을 맞잡은 순간이었다. 남쪽에서는 궁중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20명가량의 단원을 꾸려서 북으로 올라갔다. 그때 한복려 명인이 진두지휘를 했다. 한 상에 푸짐하게 음식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한식 상차림의 틀을 깨고 1인분씩 코스로 음식을 냈다. 약 열두 가지의 한식 요리를 매 코스마다 선보였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에는 글로벌 한식의 발판을 다졌다. 한식에 기초를 두고 각 정상들의 입맛에 맞춰 요리를 세분화했다. 전통의 재료를 어떻게 담고 어떤 소스로 버무릴 것인지 온통 새로운 시도였다.


ⓒ Studio Kenn

“한식을 일컬어 밥상이라고 하지요. 쌀 등의 곡물을 주식으로, 각종 찬을 부식으로 경계가 뚜렷하게 나뉜 한식의 특징이 담긴 것입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재료, 발효를 비롯한 독창적인 양념, 다양한 조리법으로 상 위에 다채로움을 더합니다. 자연의 섭리 속에 차려진 밥상은 눈과 입으로 보고 맛보기는 물론이고 영향학적으로도 조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이 음식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모였고, 또 세계의 리더들이 모인 것은 융합이라는 한식의 키워드와 정확히 그 맥락이 맞닿습니다.”



잔치, 섬김과 나눔


조선 왕조 500년의 찬란한 역사는 방대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한국의 전통 사서 가운데 의궤(Uigwe :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는 왕실의 주요 의식을 글과 그림으로 전한다. 혼인·장례·연회는 물론이고 묘 축조에 관한 내용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상세히 담고 있다. 이중 궁중 연회식 의궤의 찬품에는 음식의 가짓수, 높이, 장식의 종류까지 기록되어 있다.


© Institute of Korean Royal Cuisine

“궁에서는 휘황찬란한 음식을 잔뜩 쌓아놓고 자기들만 배불리 먹은 것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궁궐의 잔칫상에는 조선의 섬김과 나눔의 정신이 잘 드러납니다. 왕은 모든 백성의 모범을 보이는 존재였기 때문에 얼마나 궁궐의 어른들을 잘 섬기는지 잔치음식에 그 철학을 담았습니다. 각지의 산해진미가 진상품으로 올라오면, 오랜 경력의 숙수들이 정성 들여 상을 차렸습니다. 높이 고여 올린 음식은 그 자체로 귀중한 선물이었고, 그 음식을 옆으로 아래로 나누어 받은 이들에게는 또다시 큰 자랑거리이자 행복이 되었습니다.”



계보를 잇다


궁중음식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황혜성 선생은 1944년부터 30년간 창덕궁 낙선재 소주방에서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1972년 스승이 별세하자 뒤를 이어 제2대 기능보유자로 지정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전수자로 지정될 당시 한복려 명인의 나이는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그녀는 집요하게 조선의 역사를 파고들고, 해외 각국의 전통 요리까지 섭렵했다. 음식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어느덧 50년의 세월을 모두 궁중음식의 뿌리를 살리는데 바쳤다. 지금도 선대의 가르침과 역사의 기록을 후대에 전하느라 쉴 겨를이 없다.


© Institute of Korean Royal Cuisine

“기록에 보면 음식을 내는 상의 이름, 음식의 가짓수와 재료 이름과 분량까지 쓰여 있어요. 기록된 주재료와 분량을 토대로 현재의 조리법에 맞대어 보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민간에도 옛날 음식 책들이 남아 있어요. 그런 기록을 통해 궁중음식도 어떠할 것인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재현의 역사


궁에서 귀한 약과가 내려오면 혼자만 먹지 않았다. 민간에서는 그 음식을 나눠 먹고, 직접 만들어도 보고, 그렇게 궁과 백성이 연결되었다. 궁에서 먹은 열구자탕(먹어서 즐거움이 되는 탕)도 마찬가지였다. 소고기, 꿩고기, 전복, 해삼 등 전국에서 진상된 최고의 재료로 만든 궁의 음식은 신선로라는 식기 이름으로 민간에 전해졌다. 처음에는 그릇을 놋으로 만들어 음식을 해 먹다가 해방 이후에는 값싼 양은으로도 만들어 열구자탕을 차렸다. 재료의 상황과 그릇에 따라 실제 음식의 모양이나 맛은 달랐지만, 서민들도 이름만은 같은 궁의 음식을 즐긴 것이다.


© Institute of Korean Royal Cuisine

“궁은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실존했던 역사입니다. 그리고 궁의 음식들은 같은 유교문화권인 아시아의 국가들과도 또 차별되는 가치가 있습니다. 매년 궁중 식문화 연구자들이 모여 연구 실적을 발표하고, 역사 속 한국 음식문화의 원형을 탐구해 현대에 적용하는 과정이 모여 한식을 살아있게 합니다. 2003년에 궁궐 음식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이 종영 후 10년 동안이나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로부터 ‘그 음식’이 어딨냐는 질문을 이끌어 냈던 것처럼, 한식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



한복려 프로필

현재    사단법인 궁중음식 연구원 이사장
2015    경복궁 소주방 복원 자문
2011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 만찬 자문
2003    MBC 특별기획 드라마 「대장금」 제작 자문 및 지원
2000    6.15 평양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 주최 만찬 지도




[월간 KOREA 2020-04 Interview] 사진&글 SAM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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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KOREA 웹진 홍보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사진과 글(국문)은 원작자 동의 없이 재사용할 수 없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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