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제한 없고, 안전벨트 꽉 매고.travel
녹색 깃발이 흩날림과 동시에 질주가 시작됐다. 5.615km에 달하는 아시아 최장 트랙을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돌아 다시 출발선을 스치는 경주 차량의 최대 속도는 F1의 경우 시속 320km를 웃돈다. 드라이버들이 인코스/아웃코스의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동안 관중들 역시 손에 땀을 쥐고 경기에 빠져든다. 약 12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전남 최대의 스포츠 시설, KIC에서는 극한의 속도감이 주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460마력에 6,200cc 엔진을 탑재하고 다른 편의장치 없이 오직 레이스만을 위해 제작된 스톡 카가 내뿜는 굉음과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국내 최상위 클래스이자 아시아 유일의 스톡 카 경주인 ‘ASA6000’는 여러 클래스 가운데 단연 백미를 자랑한다. ‘GT 클래스’에서는 다양한 양산 차를 기반으로 엔진 등이 취향별로 개조된 차들의 개성 넘치는 경기를 볼 수 있다. 450마력의 고성능 차량인 M4 쿠페로 구성된 ‘BMW M 클래스’, 포뮬러카를 축소해 놓은 듯한 독특한 외관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레디컬 컵 아시아 시리즈’ 등 5개 클래스 96대의 차량이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KIC 위를 내달린다.
아시아 지역 유일 반시계방향으로 설계된 트랙에는 18개의 개성 강한 코너(좌11/우7)가 배치돼 있어, 자동차와 드라이버의 능력을 고루 시험하는데, 잘 만든 트랙이 경기의 재미를 더한다. 한 번에 약 12만 명에 달하는 관중을 수용하는 방대한 KIC의 최고 명당은 바로 메인 그랜드 스탠드다. 1만6,000명이 함께 피니시라인에서 경기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다. 거대 전광판을 통해 짜릿한 속도감과 함께 경기 전체 흐름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스타트라인부터의 엔진의 성능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고속 구간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맞이하는 코너인 Turn1에서는 100Km/h 초반대까지 속도를 줄이며 경기 시작부터 추월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랜드 스탠드에서 그 뒷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말 그대로 쏠쏠하다. 뒤이어 1.2km의 최장 직선 구간에서는 최고시속 320km 이상의 최고속도로 선두 자리를 빼앗고 지키려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머신의 엔진 성능을 최대로 선보이며 질주한 후, Turn3에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급히 줄여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타이어 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두 번째는 머신의 코너링 성능과 밸런스를 겨루는 고난도 구간이다. 이 구간만으로도 서킷의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Turn3에서 Turn4까지 긴 직선 구간 후 나타나는 좌-우-좌 연속코너 구간에서 드라이버의 고난도 테크닉이 빛을 발한다. Turn7부터 9까지 이어지는 최북단의 3개 코너는 아주 짧은 브레이킹만으로 통과할 수 있는 고속 코너로 짜릿한 역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세 번째는 피니시라인을 향하는 마리나 구간이다. 직선로가 짧아 가속의 기회가 부족한 대신, 머신의 방향을 급격히 바꾸어야 하는 저속 코너와 중고속 코너가 섞여 있다. Turn15에 이르면 속도가 100km/h 초반대까지 떨어지는데, 미래에 도시개발이 진행되면 시가지 속에 자리 잡은 코스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Turn17에서 정점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영암호 전경은 지중해의 모나코나 발렌시아 스트릿 서킷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아름다운 코스로 드라이버들 사이에서 그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영암의 국제자동차경주장(Korea International Circuit, KIC)은 국내 유일, 국제자동차연맹(FIA) 공인 최고등급인 ‘FIA Grade 1’ 서킷으로 국내에선 유일하게 F1 대회를 4회 개최한 곳이다. 2010년에 첫 가동을 시작한 이래 지속해서 성장 중인 KIC는 작년 한 해 동안에만 280일간 트랙을 열고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전라남도 GT 등 국내 최대 규모의 프로 모터스포츠 경기와 국제급인 TCR아시아 국제대회, 아시아 카니발 대회까지 총 27개의 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올해도 수준 높은 경기들이 각자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까지 KIC를 찾은 방문객은 총 10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되었으며, 전남의 랜드마크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달리는 자동차 말고도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이 운영 요원들인 ‘오피셜’들이다. 트랙 옆과 코너마다 깃발을 들고 운전자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관제실, 피트, 안전, 기록측정까지 대회 구석구석에 손을 안 대는 곳이 없다. 전문 오피셜들이 운영하는 매끄러운 경기는 KIC의 명성에도 한몫하고 있다. 한 경기당 대략 80명에서 100명가량 투입되는 오피셜은 KIC에서 현재까지 1천여 명이 양성되었는데, 올해도 200여 명이 교육을 이수 예정으로 자동차 경기의 핵심인력 양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써킷 맞은편에는 F1 서킷을 축소한 미니트랙이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F1 경기의 아마추어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만 놀이공원에서 타는 범퍼카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F1 경기용 차와 구조가 유사한 카트를 타면 바퀴의 진동이 온몸에 전해지는데, 지면에서 고작 8cm 떨어진 채로 아스팔트 위를 스치듯 달리다보면 스트레스가 절로 날아간다.
운전실력이 없어도 카트 체험에 전혀 문제없으니 걱정 마시라. 오른쪽 페달은 액셀이고 왼쪽 페달은 브레이크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엑셀을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선다. 계기판이 따로 없으니 타면서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면 된다. 한가지 팁이라면 바로 코너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직선 코스에서는 과감하게 속도를 내고, 코너로 진입하기 전에는 속도를 살짝 줄이면서 부드럽게 상대방을 제치는 것이 당신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일반적으로 겨울은 모터 스포츠계에서는 스토브리그(새로운 시즌 준비를 위해 따듯한 난로 앞에서 차량을 정비하는 기간)라 불린다. 하지만 온화한 기후의 영암에서는 겨울에도 주행이 가능해 드라이버들의 동계훈련이 가능하다. 기업/개인이 트랙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임대도 틈틈이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속도제한 없는 도로, 그것도 F1 등급의 서킷을 직접 달리는 맛을 많은 사람이 톡톡히 즐기고 있다.
경주장 입구에 마련된 카트장을 중심으로 오토캠핑장, 생활야구장, 오프로드 체험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경주장 주변에 조성된 녹지공간은 생활체육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수많은 국제행사를 치르고도 사후 활용이 어려워 지역의 랜드마크가 아닌 골칫덩어리로 전락하는 경기장도 있지만, KIC는 지속해서 국내외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며 지역민의 삶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다채로운 매력으로 무장한 KIC는 짜릿한 속도감을 즐기는 모터스포츠 팬들은 물론 수많은 이들이 전라남도를 다시 찾도록 이끄는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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