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리 삼번지 Mar 07. 2023

평범함이 주는 특권

(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5. 평범하지 않으면 어때?)


나는 평범함을 좋아했다.


유년시절부터 학창 시절을 거쳐, 삼십 대가 되면서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다.

평범이란 자고로, 물속 오리처럼 짧은 발갈퀴로 수많은 물장구를 쳐야만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 마냥 철없어야 할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 진리를 이미 깨달아 버린 것이다.




평범은 다수에 속해야만 한다. 고정관념 혹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 기반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평범이란 사회가 만든 여론 속에서 만들어진 편견인 것이다. 정말 모순적이게도 나는 평범을 좇으며 살아갔지만, 그 편견이 묘하게 불편했다. 퇴사 이후 <평범함을 좇았던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평범한 30 대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고정관념 속 삼십 대에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어야 하고, 이십 대 시절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야 하며,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과연 나는 그 안에 속하는가? 

애석하게도, 퇴사 이후의 나는 안정적인 직업이 사라졌으며, 경제적인 여유 또한 모호하다. 오히려 결혼 이후에 맞벌이를 유지하다가 외벌이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현재의 나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과거에는 그저 쳇바퀴와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벅차 "이 정도면 평범하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직장인 시절 썼던 일기에서조차 현실에 안주했던 내 모습이 녹아져 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상대방의 물음에 나는 "없어.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겠어. 다들 이러고 사는 거지, 뭐." 라며 항상 똑같은 입장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살겠어, 먹고살려면 무슨 일이든 하는 거지. 마냥 좋은 게 어딨겠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쳐가는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다들 이렇게 살아. 라며 스스로를 다독인 것이다. -2022년 5월 일기





사실, 평범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은 꽤 달콤하다. 나 정도면 평범한 거 아냐? 지금 괜찮은 거 아냐? 하며 현실에 만족하게 된다. 인정한다, 과거의 나는 현실에 적당히 만족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품으면서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에 속해있다는 안정감이 좋았다. 출퇴근길에서 늘상 비슷한 표정으로 마주치는 직장인들, 그들을 보면서 그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하면서 말이다. 평범함이 불편해졌던 건 그즈음이었다. 


왜 평범해야 하는데?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직장인 N년차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고 회사를 관두면 어떻게 되는 걸까. 평범했던 내 삶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뒤늦은 사춘기였던 걸까. 다수에 속하지 않는다면, 불안한 건 본인 자신이다. 그래, 불안감. 그것을 즐겨보자.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다시 생각해 보자. 평범의 기준을 누가 세우는가? 객관적인 지표가 과연 존재하는가? 평범함이라는 방패, 그 특권은 누가 만든 것인가? 오히려 스스로가 지레 겁먹고 웅크렸던 건 아닐까? 

나는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중이다. 내가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몇 년을 해도 지겹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찾고 있다. 그 여정은 물론 녹록지 않으며,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다. 스스로를 믿기 때문이다. 다수의 삼십 대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비로소 명쾌하다. 나는 찾아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결심한다. 

뻔뻔하게, 지독하게, 주관적으로 살아가련다. 



작가의 이전글 칭찬 품앗이를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