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
따끈따끈한 중소회사(이라 쓰고 중구난방 체계 없는 소기업이라 읽는다.) 체험기
나는 사실 굴리는 입장보단 굴림을 당하는 입장에 익숙하다.(사람이든 일이든 구분 없이, 그냥 내가 직접 1에서부터 10까지 하는 게 마음 편하다.)
상급자가 존재하는 업무의 실무자 혹은 담당자의 입장으로서 N년간 근무해 왔다. 위에서 오더를 받으면 받는 대로, 지시가 내려오면 지시대로, 가끔 이게 아니다 싶으면 건의도 하고 상의도 하고 말이다. 어딜 가든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대리 2년 차 퇴사를 감행한 것이다. 상사의 존재가 이리도 그리워질 줄이야. 나는 이 회사를 다닌 이틀차에 실감하게 되었다.
숱한 경험들로 다져왔기에 웬만한 배짱이 있다. 손이 빠르고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왔기에,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있더랬다. 그래서 어느 회사를 가든, 어떠한 일을 하건 다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중소기업은 소규모 회사인 만큼 담당자가 1명 혹은 2명이다. 이 말은 각각의 한 명이 일당백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다시 말해, 개개인이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야만 하는 곳이다. 실무자와 대표(혹은 사장)만 존재할 뿐. 실무자의 책임을 덜어줄, 함께 공유해 줄 중간관리자는 찾기 어렵다.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중간관리자가 그의 자리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준다면, 업무의 진척도나 히스토리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흔히들 말하는 좋소회사가 아니다. 이러한 중간관리자가 존재한다면 자연스레 회사 내 건강한 문화도 정착될 것이고, 업무를 지속하는 데에 있어서 서로 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 회사를 다니게 된 이틀차에 발견하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간의 업무 경험이 쌓인 탓인지, 한 회사를 파악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 이곳은 중간관리자가 없다. 업무의 내용이나 히스토리를 물어볼(혹은 이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상급자 또한 없다.
실무자가 오롯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며, 그 책임은 모두 실무자의 몫이 되겠구나. 체감하게 되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진 실무자 자리의 잦은 채용 또한 모두 이해되었다. 업무 히스토리를 보고 있자니,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공백이 보였다. 이 공백을 메우려면 웬만한 애사심으로는 어렵지 않나, 싶었다.
빠르게 모든 것을 파악하고 나니, 결정이 쉬웠다.
이 업무의 빈자리는 내가 채울 수 없다. 아니,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것을 해낸다면,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한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기획하고, 반영하고, 제도를 정착시킨 이후의 보상? 기타 등등 모든 것이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위해 포기해야 할 나의 시간과 열정이 아쉬웠다. 나 자신을 쏟아낼 만큼 가치가 있는 회사인가? 대답은 No. 모든 판단이 끝나고 나는 3일 만에 퇴사하게 되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할 내용은,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지지부진 끌고 가다가 억울하게도 내 몫의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다.
회사를 "왜" 다니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대답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 또한 회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정말 본인과 잘 맞는 회사를 만난다면 자기개발은 물론이고 자아실현도 가능할 것이다. 잘 맞는 회사를 만난다는 것은 천운과도 같고,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 나 또한 이러한 회사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뭐 쉽지 않다. 과연 그런 회사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떤 회사를 원하냐고?
첫 번째, 나 자신을 쏟아낼 가치가 있는 회사(사실 이건 내가 사업주체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건 자영업이라고 칭하고 싶다.)
두 번째, 내 삶과 일 사이 상충점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 회사를 찾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느꼈다. 아무튼, K-직장인, 최고다.
나는 회사의 규모를 떠나, 회사를 다니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을 존경한다.
이유가 어찌 됐건 밥벌이를 위해 오늘도 출근을 하고, 좋건 싫건 일을 하고, 퇴근을 한다. 그리고 이 행위를 일주일에 5일이나 반복한다. 말이야 쉽지, 이렇게 매번 반복되는 삶을 즐기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직장인은 대단하다.
본인 삶의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자신의 삶에 책임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하고 있고, 회사를 다니고 있다. 어떠한 일을 하건, 어떤 곳에서 일을 하건, 중요치 않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대단하고 멋진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다. 박수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