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19. 워라밸)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입에 달고 산 말이 있다.
"근근이 살고 싶다."
근근이(僅僅이). 국어사전에서는 "어렵사리 겨우."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인간답게 사는, 본인이 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치이자 마지노선"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나는 큰 꿈이 없다.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커다란 목표, 비전이 없다.
이 세상에 내 이름을 크게 알리고 후세까지 명성을 떨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감히 바라지도 않는다. 부와 명예, 명성, 모두 크게 원하지 않는다. 사실 양심에 찔리기도 한다. 늘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보다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와 권력을 부여받기 위한 우선순위가 있다면, 적어도 그들이 나보다는 앞설 것이다.
무엇을 간절하게 원해본 적이 있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딱히 그래본 적이 없다. 뭐가 됐든 내 위치에 맞게, 내 분수에 맞게, 내 처지에 맞는 선택을 했고, 그에 맞는 보상을 받으며 살아왔다. 내 위치보다 높은 곳을 바란 적은 없다. 내 분수보다 넓은 곳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늘상 그렇게 살아왔다.
삼십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다가 갑자기, 불현듯, 내 처지보다 대단한 꿈을 찾아보려고 하니 막막하기 짝이 없다.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월급! 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적어도 부모님의 손을 벌리지 않고 떳떳이 살아가기 위해 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흔히 말하는 사내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한 정치질에는 관심도 없었다. 9 to 6. 야근은 너무나도 싫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모든 업무를 끝내고(시간이 모자라다면 점심시간까지 포기했다. 그만큼 야근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었다.) 퇴근 이후 즐길 수 있던 달콤한 나의 시간이 좋았다. 다른 것보다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좋았고, 행복했고, 즐거웠다.
다시 말해, 그동안 내 일상의 원동력은 "나만의 시간"이었던 거다.
사회생활을 하느라 기력이 소진된 스스로를 충전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소박하게 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즐기는 시간, 사랑하는 가족들과 밥 한 끼, 커피 한잔을 하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 같은 순간들 말이다.
정리해 보자면 나는 워라밸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람이다. work and life balance. 이러한 워라밸이 지켜지는 회사는 사실 찾기 어렵다. 냉정하지만 뭐든 돈 받은 만큼 일하는 거다.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작지만 소중한 수입원"이 필요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배포가 작아서야 되겠냐고 말이다.
걱정은 고맙지만, 난 그냥 그런 사람인 거다. 당장의 부귀영화보다는 스스로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다. 물론 물질적인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불행할 것 같진 않다. 가늘고 길게, 근근이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그냥 이런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는 거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분일초가 아까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거고, 주어진 조건 중에 하나를 포기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거다. 포기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근근이 살기 위해 용기를 낸 거다.
그래도 살아보려고,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일단 그렇게 살다가 다음 스텝을 밟아도 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감히 꿈꿔봐도 되지 않을까?
심적 풍요를 이룬 다음, 물질적인 만족은 그 다음 숙제로 미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