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1. 자아성찰)
#백수
30대에 백수가 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퇴사를 마음먹은 것은 사실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렇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어떠한 갈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왜, 그런 순간 있지 않은가.
어느 날처럼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는데, 몇 년 후에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 같은.
무의미해지고 허탈해지는 감정.
그 순간 이후, 옅게나마 느꼈던 감정을 곱씹게 되었다. 꽤 자주 말이다.
처음 느껴본 그 생경한 감정을 잊지 못한다.
마음속에서 넘치다 못해 흘렀지만, 그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했다.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감행한다면 "왜?"라는 질문을 받을 게 분명하니까.
나는 그저 "그래, 그동안 고생했어."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가 하면,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참으로 딱해 보였다. 아무 표정 없이, 공허한 눈빛의 내가 서있더랬다. 누가 봐도 지쳐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그 사실이 힘들었다.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삼십 대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스스로에게 미안해졌다.
어떤 날은 이런 생각도 했다.
내 삶에 가이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살에는 이걸 하고, 저걸 멀리해야 해, 몇 년 후에는 이걸 하도록 해, 몇 개월 후에는 이걸 배워봐. 이런 가이드 말이다. 정말 겁쟁이다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래, 나 30대는 처음이잖아. 남들은 20대에 끝났을 고민들을 이제야 하기 시작한 것뿐이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리저리 부딪혀보지, 뭐.
바야흐로 삼십 대를 맞이하며, 조금 더 생산적인 행위를 하고 싶어졌다.
내 삶에 있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자, 반짝이는 순간을 만들고자 결심을 하게 되었다.
#겁쟁이
사실 나는 엄청난 겁쟁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한다. 다치는 걸 싫어해서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다. 물이 무서워서 수영도 못한다. 거절을 무서워하고,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을 싫어한다. 내 마음이 다칠까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내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이곳을 떠나면 후회하진 않을까?
안정적인 자리, 위치에 미련이 생기지 않을까?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어떡하지?
허나, 어떠한 선택을 하건 후회하기 마련이다.
후회를 두려워하다간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우물 안에 머물 건지, 우물 밖에서 제자리걸음이라도 할지.
나는 후자를 택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퇴사를 하고 나서도, 난 여전히 겁쟁이다.
여전히 미래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다만, 무수히 많은 고민들 속에서 무섭고 두려운 감정보다는 설레고 긴장되는 감정이 앞선다. 이 감정들은 내 마음속에 긍정적인 잔여물을 남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두근거림, 뿌듯함! 저절로 행복하다. 억지로 행복을 좇으려고 했던 지난날의 내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나는누구인가
백수가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더 알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마음속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에 흥미가 있는가?
무엇을 할 때 즐거워하는가?
첫 번째, 나는 생각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혼자 있는 게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혼자서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신다. 그리곤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한다. 금방 배꼽시계가 울린다. 밥을 먹고, 한참을 노트북으로 써내려 간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말이다. 간간히 휴대폰으로 지인들과 안부를 나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운동을 간다. 씻고 집에 오면 잠에 들 시간이다. 그러한 나날들 와중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카페에 가기도 한다. 혼자만의 시간, 공간이 주는 매력은 분명하다.
두 번째, 나는 생각보다 글을 좋아한다.
이런저런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을 밖으로 내뱉는 것보다 손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 편하다.
타닥타닥 치는 타자 소리가 안정감을 준다.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는 잡념을 정리하는 데에도 꽤나 도움이 된다. 글을 업으로 써본 적은 없어선지 공백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느껴본 적 없다. 심리적으로 복잡할 때, 이렇게 써 내려간 글은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쾌감을 주기도 한다.
세 번째, 나는 생각보다 운동을 좋아한다.
평소 운동 실력은 젬병이지만, 새로 시작한 요가가 꽤 나에게 잘 맞는다.
코어에 힘을 주고 자세를 해나가는 재미가 있다. 수련을 할 때면 시간이 훌쩍 간다. 눈을 감고 내 호흡에만 집중하게 되므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퇴사하고 헛헛한 하루를 채우려고 시작한 것뿐인데, 크나큰 효과를 봤다. 대단한 장비가 필요 없는 운동이다.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과 신체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운동이다.(물론, 소중한 관절을 위한 요가매트는 필수.)
그렇듯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