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된 이후의 삶에 대한 고찰 혹은 넋두리
오전 8시.
백수 L씨는 기상합니다. 미라클모닝을 시도해 볼까 했지만 생각만 해봤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습니다. 밤낮은 바뀌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절대 늘어지진 말자, 라구요. 몸을 일으켜 침대를 정리합니다. 곧장 욕실로 가 씻습니다. 부엌으로 나와 사과 한 개를 깎습니다. 아침은 사과 한 조각. 그리고 커피머신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1잔 내려 마십니다. 오늘은 날씨가 꽤나 좋군요.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쌓여있는 집안일을 합니다. 세탁기를 돌리거나, 바닥을 닦거나, 욕실을 청소하거나. 금방 점심시간이 됐습니다. 사실 백수가 되고 나서는 끼니를 차려먹는 게 퍽 귀찮아졌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해 먹거나, 시켜 먹진 않습니다. 냉장고털이! 냉털이 주메뉴입니다. 점심은 차려 먹고는 바로 설거지를 합니다. 이래 봬도 꽤나 깔끔한 편입니다. 그릇이 쌓여있는 꼴을 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백수 L씨의 진짜 일상이 시작됩니다.
1.
L씨는 퇴사를 하기 2년 전에 학사 취득을 위해 편입을 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은 변명이고, 이력서에 한 줄 더 넣을 요량으로 시작한 공부였습니다. 때 마침 방학이 끝났네요. 이번 학기는 막학기로, 틈틈이 공부 중입니다.ㅡ막학기여야만 합니다. 더 이상 레포트의 늪은 싫어요....ㅡ 그래도 아직 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좋기도 하네요. 이제 중간, 기말까지의 일정이 대략 나왔습니다. L씨의 노트북은 더욱 바빠지겠습니다. 더불어 아이패드도 화이팅.
2.
현재, 새로운 직무로의 도전을 앞둔 상태입니다. 도전이라고 하기엔 아직 섣부른 단계이지만,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도전에 앞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격증 시험은 5월이기에, 천천히 그리고 지치지 않게끔 매진할 생각입니다. 아예 처음 겪는 분야라 공부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L씨가 감당해야 할 부분 중에 하나겠지요.
3.
또한, 올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던 브런치 작가 선정! 지난달에 달성하여, 글을 하나씩 쓰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구독자 수는 적지만 그래도 틈틈이 타자를 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 근래 가장 행복한 시간이 있다면 바로 글을 쓰는 이 시간일 겁니다. 남들이 보기엔 습작이겠지만 L씨 스스로에겐 뿌듯하고 사랑스러운 문장들입니다. 이 짧은 문장들로 하여금, 남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 싶습니다.
4.
남편과의 첫 유럽여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결혼한 터라,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습니다.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아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원래의 L씨라면 계획 of 계획을 짜야하겠지만, 남편과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만큼은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여행을 해보자! 그래도 기본적인 숙소, 교통편, 여행자보험 정도는 예약할 것 같아 하나씩 퀘스트를 깨고 있습니다.
5.
가끔, 친조카를 돌봐주기도 합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요 생명체는 귀엽고 이쁘고 다 합니다. 고모랑 똑 닮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새끼는 얼마나 이쁠까?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아직은 용기가 안 납니다. 작은 이 4개로 오물조물 먹고 있는 조카를 보면 사랑해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뽀로로를 좋아하는 조카에게 뽀로로의 모든 걸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6.
규칙적으로 운동도 합니다. L씨는 백수가 된 이후, 헬스장 회원권을 끊었습니다. 남편의 부탁 반, 협박 반으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꽤 규칙적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회원권으로 요가를 같이 배우는데, 헬스보다는 요가가 퍽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알고 보니 요가계의 숨은 강자가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사님이 L씨 수준에 맞춰서 가르쳐주시는 것 같네요.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7.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직 동네 근처만 다니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더 많이 해볼 예정입니다. 남편이 차를 바꾸면 아예 운전대를 주겠다네요.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남편이 L씨를 좀 더 믿게끔 베스트 드라이버가 돼야겠습니다. 운전 또한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안전! 운전!
8.
축구에 단단히 빠졌습니다. 사실 축구에 빠졌다기보다는 축구선수에 빠진 것이겠지요. 모름지기 삶의 원동력은 덕질 아닌가요? 축구선수의 경기를 챙겨보느라, 소식을 챙겨 듣느라, 뜻하지 않게 바쁜 덕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수를 보고 있자면 아드레날린이 샘솟습니다. L씨도 그 선수처럼 열심히 살고자 합니다. 열정적, 긍정적으로! 돌이켜보니 L씨가 백수가 되고 나서 시작한 일들이 꽤나 많군요. 꽤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수 L씨는 이렇게 24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바쁘게도, 어느 때는 여유롭게도, 이냥저냥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