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레베카
나는 한 번씩 무기력에 빠져 드러눕는다. 주기도 깊이도 스스로 파악하지 못해서 자세히 전할 수는 없지만,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조짐을 보이고, 뼈가 시린 계절에는 바닥에 붙어서 일어날 수 없게 되는 때가 많다. 끓던 여름이 바람으로 바뀔 때, 예측하려 애써도 가늠할 수 없는 그 흐름.
몇 해전 또 그랬다. 알아듣을 수 있는 예고 없이. 녹아버린 촛농처럼 바닥에 들러붙었버린 그 해. 목적 없이 틀어 둔 티브이에서는 눈에 들지 못하는 영상과 떠도는 배경음이 송출되어 나왔다. 그러다 오래된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나는 삼십 년을 돌아 어디론가 날아갔다.
슈가맨.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잊혀진 스타를 찾아서 시간 여행을 시켜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의 눈과 귀의 초점을 잡았다.
탑골 지디. 내가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남아있는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나는 리어카 불법 음반 세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조숙한 아이로서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인기가요 불법 복제 테이프를 사서 늘어지도록 듣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다. 인기 가요 모음이지만 좋아하지 않는 노래의 비율도 적지 않아서 그 안에서도 나만의 명반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 아주아주 마음에 드는 음반, 사십 여개의 노래 중 반복하기 싫은 곡이 딱 하나만 있었는데, 그게 슈가맨 양준일의 노래였다. 그리고 그 곡은 하필 A면 1번이라서 억지로 듣는 대신, 그냥 흘러가게 두는 대신 빠른 감기로 넘어가던 곡이라 유감이 있다. 그 마음이 무엇이든.
돌아보면 그 시대 평균의 십 대 초반 소녀에게 난해한 곡이었다보다. 하지만 큰 키에 어깨에 큰 뽕이든 커다란 재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모습만큼은 마음에 들어서, 그 오빠의 노래를 즐기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했던 기억이 삼십 년이 되도록 남아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왔다. 타임캡슐을 열고 지난 추억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보냈다. 탑골 지디. 탑골 공원에서 바둑을 두며 시간 어르신들처럼 보이는 유물 같은 존재가 되어서 왔다. 그렇지만 우리의 아이콘 지디와 견줄만하다는 생각으로 누군가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 난 앞선 간 예술가를 위로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실 확인이었다.
양준일은 레스토랑 서버의 유니폼을 닮은 옷을 입고 - 그는 미국의 한 식당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 삐꺽거림 직전의 어깻짓으로 두루미가 다 펴지 못한 날개를 펄럭이듯이 리듬을 만들었다.
주르륵. 나는 그의 춤사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억울함이 전해져서 마음이 아팠다면 공감해 줄 사람이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우는 이유는 그랬다. 예술가로 살아야 할 사람이, 수모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와중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고 애쓰다, 생활을 위해 음식을 나르는 이야기가 나한테만 그렇게 슬픈가? 생활인으로 살아도 자신이 생각하는 몸매를 벗어나지 않으려 조절하고, 패션도 여전히 철학을 가지고 지켜나간다 했다.
하루 벌이를 못하면 생계에 곤란함이 생겨서 잠시라도 한국에 올 수 없다고 출연을 고사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단단한 약속을 받은 뒤에야 어렵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것이 슬펐을까, 매일매일 먹고살아야 하는 내가 고단해서 슬펐을까.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는 열풍을 일으켰다. 소속사가 생기고 화보집을 찍고 그랬다는데, 앨범을 냈는지 그런 건 모르겠다. 나는 연예계에 대해서도 저관여자니깐. 그래서 그를 위해 백원도 쓴 일은 없고 그냥 반복해서 그 영상을 보며 내 마음을 달랬다. 양준일 씨처럼 대단한 예술가도 그 억울한 세월을 살아냈고, 이렇게 빛을 만났으니 나는 한탄을 지우고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어서 인지, 나는 조금씩 살아났다. 레베카를 들으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운명은 그에게 이참에도 가혹한 것인지, 코로나가 터졌다. 팬미팅 약속이 취소되고, 그는 애매한 위치가 되었나 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볼 때가 있다. 내 돈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가, 그의 시절이 조금이라도 보상되었으면 그걸로 된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스윽 돌아와 한 몫 챙겨 사라져 버린 이가 되었나 보다. 나는 삼십 년 전의 미안함과 몇 년 전의 고마움을 가지고 그냥 스쳐갔는데, 여전히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팬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저 한 마디 전하고 싶다.
양준일 씨, 저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