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진단 일기
바나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가끔 맛이 있고, 종종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바나나는 늘 나를 멈추게 한다.
아이들 등교 준비를 돕는 내 손에는
점박이 바나나가 있다.
점박이는 도박이다.
하얀 점은 수성전,
검은 점은 공성전.
누가 이겼는지는 껍질을 까봐야 알 수 있다.
짬밥으로 감각은 대충 짚어낸다.
겉은 멀쩡해도 속살은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검은 점이 많아도 의외로 단단하기도 하다.
오늘 아침,
한때는 어엿한 덩어리였던 바나나가
식탁 한쪽에 지쳐 누워 있었다.
세월 맞은 내 얼굴 같아 가련하다.
주근깨일까, 검버섯일까.
나는 바란다.
막내의 등원길을 든든히 채워주길.
그러면서도 풀썩 쓰러질 낙담을 준비한다.
툭, 상투를 비틀어 껍질을 벗기며
견뎌낸 너를 인정한다.
보기 좋은 바나나는 맛이 없다.
너무 쌩쌩해서, 꼭지를 꺾을 때만 힘든 그것.
차라리 조금 지쳐 단맛이 배어든 것이 낫다.
만나는 사람도 그렇다.
겉만 반듯해도 속이 덜 익어 맛이 없는 이,
허술해 보여도 달콤한 부드러움으로 감동을 주는 이,
혹은 단맛이 지나쳐 곧 무너져버리는 이.
바나나는 길다.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어쩌면 그 노래처럼,
바나나는 인생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