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집엄마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by 투명물고기

세대마다 기억하는 동요가 다르다.

나의 동요 시절은 꽃밭에서, 아빠하고 나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노래들이었고,

나의 세 아이는 멋쟁이 토마토를 부르며 자랐다.

동요에는 세상만사, 세태의 변화, 시대상이 다 들어 있다.


- 나는 작고 뚱뚱한 주전자…
궁둥이가 흔들흔들할 차례가 오고,


-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이제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가사도 있다.
청각장애인을 비하하고, ‘착한 어린이’라는 틀로 욕구를 막아서는 노래.
시대가 변했으니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하다.



하지만 명작은 시대를 탓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손주를 이어주는 미학은 변명하지 않는다.

외국 합창단이 불러도 울림을 주는 노래, 섬집 아기.

솔직히 말해, 이건 그냥 띵작이다.


엄마가 섬그늘에 물질을 가고,

아기는 집을 보아야 하는, 무거운 풍경.

파도의 위로에 젖어 하릴없이 잠드는 아기의 모습.

누군가는 학대라 말하겠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시적 허용을 허락한다.


혼자 집을 보는 일이 많았던, 결손의 아이 나는

이 노래가 늘 불편했다.

아기를 두고 떠난 엄마가 미웠고,

아빠는 어디 있는지, 그 빈자리의 슬픔이 더 크게 다가왔다.

혹시 나만 이런 생각을 할까 봐 꽈배기처럼 꼬인 사람일까 걱정하며,

그 미움을 오래 감추었다.


몇 해 전,

백일도 채 안 된 내 딸이 고열로 입원했을 때였다.

먹지 않는 아이를 안고 링거대를 끌며

병원 로비를 하릴없이 서성였다.


그곳 한쪽 벽, 오래된 가사판 앞에서 오해가 풀렸다.


-아기는 곤히 잠을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아, 엄마는 이미 마음이 아기 곁에 있었구나.

손은 물질에 묶여 있어도, 발은 곧장 아기를 향해 달려왔구나.


나는 내 아픔만 호소하느라,

엄마의 고통을 조금도 몰랐다.

그 미안함이 그날 비로소 나를 덮었다.


나는,

무거워서 나오지 못하는 진실을 살살 깨워 꺼내는 그런 무엇이 되고 싶다.

“미안하다” 말하지 못한 부모의 고통까지도,

내 마음에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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