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4장 잔잔바리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흡—후우, 흡—후우. 왼발, 오른발.
리듬을 잃지 않으려 집중한다.
나를 이끌어 준 선배 회원은 첫 만남 때 가르쳐 주었다.
숨이 차면 멈추는 대신, 속도를 늦추면 된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숨 찰 자신이 없다.
나로 말하자면,
북한산이라면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시간에 15분만 보태면 정상에 닿고,
언 눈이 다 녹지 않은 질척거리는 한라산 세 시간 루트도 한 시간 이십 분이면 충분했다.
마라톤 참가 여부를 가늠하려 처음으로 달린 날,
한 시간 동안 십 킬로를 달렸지만 거의 숨차지 않았다.
(바로 그날이 드물게 숨이 찼던 날이었다.)
느리게 달리며 호흡을 잡으면, 다시 속도를 찾아 더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나는 전설의 다이어터로서 해보지 않은 운동이 없지만, 숨이 찬 경험이 없다.
장거리 러닝을 하거나 복서처럼 줄넘기를 하면
비 오듯 땀이 난 적은 많아도, 숨만큼은 언제나 평온했다.
혼자일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러닝 크루와 함께 달리면서
다른 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듣게 되었다.
타박타박 규칙적인 발소리가 귀에 익고,
귀에 꽂은 노래가 몇 번이나 바뀐 다음,
어느 순간 가쁘게 쏟아지는 그 숨소리.
“이제 힘들어요.”
중단을 종용하는 나에게 크루 선배는 퉁박을 주었다.
“호흡도 편안하구만, 무슨.”
나는 허풍을 친 게 아닌데, 아마도 보통 사람들은 숨이 차야 힘든가 보다.
식물원을 크게 한 바퀴 돌아 한강변으로 처음 달려 나간 날의 기억이
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초가을 바람처럼 불어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기 전까지, 멈춤이 없었다.
숨 찬 기억이 없는 것은 박지성처럼 두 개의 심장을 가져서도,
산소 탱크를 메고 있어서도 아니라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나는 숨이 차지 않을 수 있을 때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이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서야.
숨이 차는 것이 무섭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 정리가 필요해진다.
신발 밑에 강력본드처럼 끈끈이가 붙어 발을 뗄 수 없었다.
육백 미터 달리기는 목구멍에서 피맛이 나는 고통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뚱뚱한 아이로서의 수치심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무리하지 말라는 걱정의 말과, 작작하라는 핀잔을 듣는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늘 불태우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것에도 정신을 잃을 만큼 빠지지 못한다.
언제나 안정적인 내 숨은 나를 똑바로 들여다보게 했다.
엉망이 되면 단도리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내가 무너지면 잡고 일으킬 손이 없다고 체념한 탓이었을까.
멈추지 않고 종종거리며 살지만, 완전히 빠져서 나를 잃어본 적이 없다.
불타 본 적이 없는 나는
빛이 쏟아지는 찰나에 밝기를 가늠하는 대신,
눈이 부시지 않을 것만 신경 쓴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다른 나를 발견했다.
희망이 담긴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어쩌면 나는 전력 질주해 볼 수 있을까.
거북이처럼 가만가만 마라톤을 완주하는 게 아니라,
백 미터 기록을 만들기 위해 숨을 멈추고 달려볼 수 있을까.
쓰러져도 괜찮다고 속삭여 주는 목소리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이제는 안심해도 될까.
이제라도 내 모든 것을 존재 그대로 사랑하고,
감히 품지 못한 꿈을 살아봐도 될까.
심장이 마구 요동쳐서 내 역할을 놓치고,
시끄러운 숨소리가 옆사람에게 닿아도 괜찮을까.
나는 더 이상 잔잔바리가 아니길 바란다.
불꽃여인이 되어, 어느 순간 활활 타오르고
모든 것이 지워지는 그 절정을,
마침내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