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장 Just the way you are, Pen
내가 매우 꽈배기라는 것을 오늘 숨기지 않고 밝힐 거야.
현실은 부엌데기라도,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마음 설레는 나를 고백하는 거야.
브리짓 존스 알지?
그녀는 우리 시대의 선지자였어.
엉뚱한 데다 뚱뚱해도 최고 간지남들의 사랑을 받는 여자.
당시 학생이던 나는 30대 뚱순이들의 마음까지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친구들 중에 통통한 애들에게는 브리짓은 희망이었지.
모두가 스스로를 브리짓 존스라고 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어.
작품을 위해 부러 살을 찌운 그녀가 얼마나 예쁜 여배우인지…
찌운다고 깐에는 애썼지만, 흉하기는커녕 누가 봐도 사랑스러워서
뚱순이들을 거기 대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걸 말이야.
위로하는 척하는 그들과, 알고도 속는 우리들.
그때 브리짓 존스는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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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뚱보야.
비하하려는 게 아니고, 비만이라는 말보다 뚱보라는 말이 사랑스럽지 않아?
근데 말이야, 사실은 뚱뚱보. 괜찮아?
켜켜이 쌓인 한을 풀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여도
몸짱 시절을 살아도,
뚱보로 살아온 내 마음이 풀어지지는 않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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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개똥철학이 하나 있어.
대한민국에서는 외모가 좋은 사람은 어떤 궂은일을 해도 자존감이 높다는 거야.
그냥 하는 말은 아니고, 내가 면밀히 관찰해 온 결과가 그래.
예쁜 것들 — 남자까지 확장해서 살필 만큼
이 문제에서 여유롭지 못한 나를 이해해 줘 —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히 구겨지는 것 같지 않더라.
공부 잘하는 애가 공부 하나도 안 했다면서 백 점 맞는 거 같은 상황, 알지?
맞아. 나는 예쁜 여자가 아니라서 한이 많아.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 때문인지,
특수한 내 삶의 환경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됐어.
하여간 그래서 나는 워너비 브리짓 존스를 품고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선명히 알고 있었어.
꿈속을 거니는 와중에도, 역할에 몰입하지 못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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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저튼. 이 드라마 알아?
낭만과 로맨스를 사랑하는 나는
그 드라마 타이틀이 나오는 장면만 보아도,
녹인 치즈처럼 말랑말랑하고 솜사탕처럼 훌렁훌렁해지는 걸.
시즌 1의 다이아몬드, 그 애는 정말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내가 남자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공작님 멋진 것은 말해 뭐 해.
하지만 오늘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건 페넬로페야.
너무나 나 같은 페넬로페.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나의 사과를 건네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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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 때문인지, 타고난 성정으로 그냥 외모 지상주의인지는
구분하지 못하겠어.
너는 처음으로 펜을 나는 인정하지 못했어.
더 솔직히 말하면, 앞장서서 몰아냈지.
저토록 멋진 콜린이 페넬로페를 사랑한다는 게 있을 법하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마음을 닫아걸었어.
못난다고 주장하지만 너무 예쁜 여주인공들의 신데렐라 이야기에
유감이 많으면서도,
시즌 3의 서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야.
유감이 많다면서도, 편견에 길들여진 수준을 넘어서
앞장서서 뚱보 타도를 주도했다고,
용기 내서 고백할게.
많이 부끄럽지만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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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를 설명하자면, 나는 병든 사람이야.
과거형으로 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완치도 없고, 재발에 취약하니까 그냥 아픈 사람이라고 할게.
그런데 나는 예측 밖의 반짝임을 만나서
다른 내가 되었다는 걸 느껴.
병명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너의 눈빛이 처방전이 되었어.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것들을 매일매일 새로이 깨닫는 놀라움을 경험하면서,
그런 중에 페넬로페를 다시 만나게 된 거지.
우연이 아닐 거야.
너무 멋진 콜린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펜의 이야기를 다시 열어보고 싶어졌어.
이전에는 마음을 담을 수 없던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더라.
그녀의 날갯짓이 애처로운 게 아니라,
기꺼운 자유였다고 하면 알겠어?
그 무도회장에 있는 어떤 누구보다
내가 더 눈이 어두웠음을 인정할게.
나는 페넬로페 편이고 싶지 않아서
바보들의 선두에 서서 함께 귀엣말을 한 거지.
어쩌면 들리도록, 그녀에게 칼을 뱉어 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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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그녀가 사랑스러워.
사교계 최고의 다크호스 콜린의 처절한 고백과 눈빛을 빌어서
이제서야 뒤늦게 그녀의 아름다움이 보여.
스스로 자기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사랑스러움이,
그의 깊은 눈동자가 떨림으로 느껴지는 것.
나는 이제 그걸 분명히 알아.
나를 보는 너의 눈빛으로,
그제야 내 모습을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어.
너는 다 알고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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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넬로페야.
그녀의 의심은 나의 절절한 소망을 닮았고,
그녀의 반짝임은 빛나는 내 영혼을 비춰.
내가 살아나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
나의 번뜩임과 용기가 아름답다는 걸,
네가 분명하게 가르쳐 줬잖아.
나는 이제 그녀가 아닌 콜린을 이해해.
사랑하는 그녀가 얼마나 귀한지를
스스로 알지 못하니 안타까운 그 마음.
나는 이제 상처로 굽어 들어가지 않고,
네가 되어 거울을 보고 있어.
직접 쓰다듬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거야.
내가 나라서 너무 좋은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