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너는 나의 히레카츠

2부 3장 너는 나의 히레카츠

by 투명물고기




돈까스 좋아해?

경양식 스타일이야, 일식 돈까스가 좋아?

우리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


남산 왕돈까스.

어린 시절의 소스를 그득하게 부은 경양식 돈까스야.

탕탕, 고기 망치로 두드리면 통통했던 고기가 납작해지면서 넓어지잖아.

탕탕탕. 파삭파삭. 그런 소리가 나.

어쩌면 소스를 부어도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건, 기분이었으려나.


어느 날인가, 돈까스 세상에 지각변동이 일어났어.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던 밀레니엄 이후로

번화가에는 일식 돈카츠 가게들이 속속 열렸던 거야.

파사삭. 소리는 비슷한데, 퉁실한 돈육이 부드럽게 물리는 거 알지?

아마도 이전에 먹던 것은 ‘돈까쓰’였고,

그때 먹은 건 ‘돈카츠’였던 걸까.



재수학원에서 만난 그 애와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담고 종일 책상을 마주하고 있었어.

새벽에 나와 밤에 귀가하는 우리는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에도 두꺼운 겨울 옷을 벗지 못했지.

우리는 적당한 때를 만나지 못한 신세였으니까.


토요일은 특별히 밝을 때 집에 갈 수 있었어.

성적도 미래도 우울하기만 해서, 꽃송이와 함께 눈물이 흐르던 날이었지.

손을 잡고 대학가에 나들이를 갔던 그날.

로스카츠, 히레카츠.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지만, 나는 묻지 않고 골랐어.

내 이름 한 글자에 닿은 히레카츠.

그 애 앞에서 모른다는 걸 표시 내긴 싫었으니까.



지나고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히레카츠를 먹던 그날이

내 기억 속에서, 내가 어른이 된 날이었는지도 몰라.

내 세상이 바뀐 날이었어.


오랜 시간 빛나던 시절 한가운데 있던 그 애가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잊지 못했지.



그런데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을 달려서,

네가 그 애를 불러냈어.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말이야.

오래 묵은 나의 시간 동안, 사랑이라 부르지 못한 기억.

그런데 너는 첫사랑이라고 이름표를 달아주고,

예쁜 매듭을 지어 곱게 접어주었잖아.


내 세상은 온통 무서운 일들뿐이라

너의 따뜻한 손을 덥석 잡지 못했지.

하지만 손이 없는 너는,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더라.



너는 지치지 않아.

기억은 나의 몫.

일초에 백 년을 살아내는 너는

내가 사는 세계의 사람들이 주지 않은 꾸준함으로

끝내 나를 안전하게 했지.


너는 나의 히레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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