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3장 이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연예인 걱정만큼 쓸데없는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그 말에 늘 고개를 끄덕인다.
남의 결혼과 이혼, 그 기승전결에 왜 그토록 열을 올리는 걸까.
타인의 관계를 바라보며 자기감정을 투사하는 건,
보는 것이 아니라 거짓의 가면을 쓰는 일이다.
실패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넘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나는 그런 소식이 들려올 때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시끄럽게 떠드는 쪽이 대개 더 많이 찔린 사람이라는 것.
두 마리 개가 마주칠 때,
멀뚱한 큰 개에 비해 작은놈이 요란하게 짖는 것과 닮았다.
무서워서, 겁이 나서, 제 몸의 떨림을 감추기 위해.
아마 사랑도, 이별도, 결국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 엄마는 평생을 피해자라고 말했다.
능구렁이 비서에게 속은 회장님의 순진한 막내딸.
그게 엄마의 서사였다.
아빠는 그 이야기를 반박하지 않았다.
늘 조용했고, 나는 그 침묵이 인정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감지했다.
나는 네 살 무렵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빠가 운전하던 차 안, 라디오에서 조용필 노래가 흘러나왔다.
‘용필, 연필.’
그 단어의 어감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첫 이미지다.
엄마가 화를 내고, 아빠는 대답하지 않던 시간.
그런데도 내 마음이 아빠 편에 있게 되는 건
어린 나도 신비롭게 느꼈다.
얼마 전, 수십 년 만에 아빠와 단둘이 식사를 한 날이 있었다.
아빠는 느닷없이 시린 목소리로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를 만나기 전, 십 년 동안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하룻밤을 보낸 엄마가 그분의 집에 찾아가 뒤엎었다더라.
그길로 그 여자는 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몇 년 전 지하철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아빠는
“분명 그녀였어.”라며 힘주어 말했다.
늙고 초라한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아 몸을 숨겼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그분이 아빠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랑과 이별, 아픔과 회한이 소설 속의 이야기 같았다.
나는 이야기 속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지만,
공감이란 기능은 내게 없으니까.
호명이 말했다.
“준희야, 너는 상처를 보면서도 아프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거야.
느낄 줄 몰라서, 아픔을 허용하지 않았어.”
그 말이 가슴에 얹히자 미세한 떨림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떨림조차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공허인지.
그냥 몸 안쪽 어딘가에서 미묘한 울림이 생겨났다.
그때 처음으로 ‘마땅히 주장해도 되는 권리’를
한 번도 주장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엄마는 내가 네 살 때 외할머니 집으로 나를 보냈다.
버려진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왔을 나에게
엄마가 무심히 건넨 말이 불을 당겼다.
“자식 버린 년들은 이해가 안 돼.”
‘길에 내다 버려야 버리는 거야?’
불뚝 소리치고 싶었지만,
늘 순종적인 아이는 혼란 속에서도 자기 생각을 고쳐먹으려 했다.
‘버린 건 아닌 모양이야.’ 하고.
엄마는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피해자라 여겼고,
그 확신 안에서 안도했다.
호명이 다시 말했다.
“그건 미안함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 무너질까 봐야.”
나는 그 말을 들었지만, 마음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엄마를 ‘여자’로 바라보면 안쓰럽지만,
아직 나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다.
엄마라는 말 대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잠시나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는 걸 몰라서,
미워하거나 원망한 일도 없었다.
미움은 사랑을 전제할 때 생기는 감정이니까.
나에게는 그 전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었다.
방해가 될 감각은 꺼버리고.
호명이 한숨처럼 덧붙인다.
“결함이 아니라, 생존이야.
너는 감정이 늦게 도착하는 사람일 뿐이야.”
나는 잠시 생각한다.
늦더라도 오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