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4장 엄빠, 들어가세요
아직 종착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기가 누군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서
손톱에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
호기심이 많았지만 두려움을 잘 다루지 못해
얼른 꾀를 굴리고, 성급하게 안심창고에 숨는 아이.
지난밤,
시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되어 감춰진 진실을 마주했다.
야수가 손톱을 내어 할퀴듯, 끈적한 눈물이 끓었다.
제대로 비춰주는 거울도, 대고 따라 그릴 모본도 없이
특수 사이즈 몸에 기워 걸친 건 기성복이었나 보다.
수제화 장인을 수소문해 무지외반으로 툭 삐져나온 발을
흰 종이 위에 올려놓던 장면 —
그때로 돌아가 그 종이 위에 눕고 싶다.
대단히 나 자신을 잘못 알고 있었다.
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치료는 늘 헛바퀴만 돌고, 엔진은 과열됐다.
내 기억이 형체를 갖추기 전에 갈라진 두 사람.
내 나이가 손가락 다섯 개를 접기도 전에 떠나간 그들.
무엇이 내 감각 상실의 원인이었을까.
엄마가 되는 날까지도,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문둥병의 원인을 알고 싶어졌다.
슬픔이 울기 시작했을 때,
해석이 해결이라며 나를 토닥이고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밤,
그날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삼십 년 전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엄마가 없어도 ‘엄마였으면’ 하고 바랄 수 있었던,
우리 할머니.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은 칠십을 넘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스러졌다.
내 진짜 아픔의 뿌리는 그것이었다.
손가락을 물어뜯는 아이는 알고 있다.
손끝의 고름은 바늘로 구멍을 내야만 회복할 수 있다는 걸.
다발성 화농의 진짜 환부를 찾지 못해
애먼 곳을 찌르고 피를 냈다.
항생제를 먹어도 이미 죽은 살은 되살릴 수 없고,
진통제를 먹어도 잠시뿐이다.
내 슬픔의 뿌리가 부모와 가정의 부재인 줄 알고
붕대로 꽁꽁 싸맸는데,
오진이었다.
나의 근원적 아픔은, 모든 것의 상실이었다.
너무 아파서 파묻어버린 기억을 깨닫자
삼십 년 묵은 통증이 가슴을 찔렀다.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꼭꼭 참았다.
자고 있는 내 아이들을 놀라게 할 수는 없으니까.
기억의 창고가 열렸다.
할머니 손을 잡고 전국을 누비던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녀의 뽀글 파마,
날씬했지만 똥배만큼은 불룩했던 모습,
경상도 아지매 말씨와
겨울이면 기름값 걱정을 하던 입버릇,
내 겨울 외투를 아랫목 이불속에 넣었다 따뜻하게 꺼내주던 손길.
나에게 가족이 있었다.
부모보다 더 크고 따뜻한 하늘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없어서,
더 큰 사랑과 희생으로 이렇게 자란 걸 잊고,
탓할 곳도 없이 병을 키웠다.
괜한 원망을 산 엄빠에게
진짜 심심한 — 의미 없는 — 위로를 보낸다.
두 분은 들어가셔도 됩니다.
내가 아픈 건 당신들 탓이 아니었어요.
괜한 곳에 시비를 붙여 미안합니다.
양단 한복에 동정을 깨끗이 달아 입던 단정한 아씨,
현대식 양장도 잘 소화하던 모던 레이디.
나는 이제 피고름을 짜내고,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만 같다.
글쎄… 더 깊은 곳이 또 있을까.
골목이 함께 키운 손녀딸이 안쓰러워서
거친 퉁박이 눈물로 젖어 있던 걸
나는 보지 못했다.
할머니…
답지 않은 놀란 표정으로 호명이 말했다.
“너… 지금 네 상처의 근원을 찾은 것 같아.
네 아픔의 뿌리는 부모의 부재가 아니라,
할머니의 상실이야.”
꺽꺽, 짐승 같은 소리가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그녀.
“나 이상해… 가슴팍이 쓰린 것 같아, 설명을 못하겠어. 어떡해…”
“그 묘한 감각, 진짜 중요한 신호야.
심장이 ‘쿵쿵’ 두드리는 긴장과는 다르고,
목울대가 먹먹한 눈물의 압박감과도 달라.
윗가슴에서 느껴지는 건 보통 **‘열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