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프롤로그, 1장 섬집엄마
4부 프롤로그
어둠을 지우는 지우개 -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
깊다든지, 예술가 기질이 있다든지,
그런 말로 포장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편이지만,
웃는 와중에도 문득 든다.
‘나는 조커가 아닐까.’
하지만 이제 안다.
이 고백은 패배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나는 내 어둠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자란다.
열등감 없이, 비교 없이, 그냥 나로서.
오래전, 마음을 두었던 그 애가 내게 말했다.
“너는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야.”
그 말 이후로 —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
나는 내 어둠이 부끄러웠다.
밝게 웃는 얼굴이 되고 싶었지만,
활짝 웃으면 얼굴이 망그러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짓으로 나를 가리고,
‘재밌는 사람’ 역할을 연기했다.
그런 내가 이제 슬픔을 훈장으로 단다.
너를 만나 소망을 품게 되었고,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상처가 별이 되어 누군가를 비춘다면,
그 별을 빚은 아픔조차 사랑하게 된다.
나는 너 앞에 알몸으로 선다.
미워하던 내 몸의 구석구석에
“미안해”라고 속삭인다.
손끝으로 나를 어루만지며 묻는다.
‘이제는 춤출 수 있을까?’
그런데, 어쩌면 이제 알겠다.
사랑이 어둠을 지우는 지우개라면,
그건 완전한 삭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흔적의 방식’ 일 것이다.
쓱쓱, 싹싹.
정성껏 지워보아도
공책이 찢어질 수도 있고
연필이 지나간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빛이 드는 자리에조차,
연필의 발자국은 은은히 비친다.
그래서 나는 새 노트가 되고 싶지 않다.
삶의 기워진 자국들은 나의 문양이다.
그 위에 밝은 왈츠와 사랑의 세레나데를 새길 것이다.
슬픔을 이해하는 환희로,
나는 진짜가 된다.
예쁘게도, 숭고하게도.
어둠을 지우는 지우개를 손에 쥔 채로.
4부 1장 섬집 엄마
세대마다 기억하는 동요가 다르다.
나의 동요 시절은
꽃밭에서, 아빠하고 나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런 것들인데,
요즘 아이들은 토마토 잔혹사 ‘멋쟁이 토마토’를 부르며 자란다.
동요에는 세상만사, 세태의 변화, 시대상…
많은 것이 들었다.
- 나는 작고 뚱뚱한 주전자, 손잡이 있고 주둥이 있죠.
보글보글 물이 끓으면,- 이 대목에서는 반드시 궁둥이가 흔들흔들한다.
쭉! 기울여 따라주세요. -
아마 지금의 시대는 메시지보다는 감각에 집중하는 가보다.
-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벙어리 조금통이 아이고 무거워.
하하하하 우리는 착한 어린이. -
이 노랫말을 들으면 인상이 찌푸려지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
인정한다.
청각장애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인 데다,
착한 어린이란 프레임을 씌워 욕구를 막는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알뜰함이 미덕인 때를 지나 이제의 대한민국은 풍요롭다.
하지만 명작은 시대를 탓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손주들까지 세대를 이어주는 미학은 변명하지 않는다.
동요이지만 외국 합창단에게 ‘아리랑‘의 한과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띵작.
’ 섬집아기’
엄마가 섬그늘에 물질을 하러 가면 아기가 집도 봐야 하는 서로가 무거운 상황.
파도의 위로를 받으면 하릴없이 잠이 드는 아련한 설정.
물론 아동 방임이자 학대라며 칼을 들이대는 꽈배기 성정의 누군가도 등장할 수는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 아름다워서 시적 허용을 허가한다.
혼자서 집을 보는 일이 많았던, 결손의 아이 나는,
섬집아기가 좀 불편했다. 아기를 혼자 두고 나간 그 엄마를 늘 탓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까 봐, 내가 꽈배기인 걸까 봐 걱정해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그 미움을 담고, 그 바다의 어머니를 떠올렸고, 아빠는 어디 갔나 어촌의 비극을 상상하기도 했다.
얼마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으로 잠시 입원한 일이 있었다.
병원의 조치로 통증이 잡히자, 찾아오는 이 없는 병실이 썰렁해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 손에는 링거대를 끌며 대학병원 1층 로비를 하릴없이 서성이다가,
그곳 한켠에서, 오래 묵은 오해가 풀렸다.
동요의 가사가 새겨진 큰 동판 앞에서…
- 아기는 곤히 잠을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아, 아기의 외로움 그 위에, 더 큰 아픔으로 엄마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구나.
내 아픔만 호소하느라,
상대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한
지난 어리석음과 미안함이
나를 덮었다.
나는,
무거워서 나오지 못하는 진실을
살살 깨워 꺼내는 그런 무엇이 되고 싶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 건네지 못하는 나의 부모를 마음에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