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낙동강 꽃놀이

4부 2장 낙동강 꽃놀이

by 투명물고기

봄의 아우성.

오르페우스의 수금 타는 소리.

나에게 봄은 전령은 벚꽃이다.

꽃구경이라면 중년 어머니들의 단풍놀이가 곧장 생각나지만,

벚꽃 놀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흐드러지는 체리블라썸.

눈물처럼 내려도 사랑과 희망이 더 남는 건,

봄의 힘인 걸까.


나는 부모를 배우지 못했다.

다 늙어진 어머니 아버지를 탓하려는 건 아니다.

불편하다면 내 마음밭이 건강하지 못하고 유약하여

바람막이가 없는 환경을 잘 나지 못했다 하자.

약수터로 가는 오솔길 가득 떨어진

아카시아 꽃잎을 봉지 가득 주워 담던 추억은,

가슴속에 찰랑찰랑

늘 위험한 눈물을 덮으려는 어린 나의 본능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떠난 지인처럼 교류하는 나의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부산에 산다.

한국 지도를 펼칠 때마다

내가 사는 서울과 아빠가 있는 곳.

멀찍이 떨어진 집을 짚어보는 것이

휑한 바람이 분다.


지난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는 노래가 아닌 울음이다.

웃음 짓게 하는 반가움 대신,

가슴이 쿵 떨어지는 소식이 전해진 기억이라서.

051. 이제 지역번호는 낯선 시절이지만

부산 번호표는 한다.

“**대학병원 간호사실입니다. ***님 보호자 되시나요?”


쿵.

유난히 큰 소리가 난다.

나의 보호자로 내 아버지를 부른 추억이 없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의 보호자가 되었다.

억울한 마음이 없다 해도 불편감이 고개를 든다.

심장소리만큼 당장에 달려갈 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환자분의 옷을 입은 아버지에게

조석으로 안부를 묻는다.

수 십 년간의 벌어진 틈이 붙는다.

핏줄은 당긴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가.

내 안에 꼬여있던 붉은 색실이 뻗어나간다.

잘 도착했는가.


토요일을 기다려 새벽 첫 비행기를 탄다.

단신으로 김해로 가는 여정이

부산투어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콧노래가 나온다.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지도를 훑는다.

꼬마전철을 타고 시내로 가는 길.

너른 흙마당 사이로

물길이 굽이쳐 흐른다.

머리에 넣어둔 기도책을 연다.


아… 낙동강인가.

내가 사는 한강과는 다른 호젓한 모습이

강변 살자는 동요를 불러온다.

끊어질 듯이 가는 물줄기에

다시 한번 마음이 쿵.

한참을 마른하늘 탓에

물이끼가 끼고 푸른색이 짙어질까 염려가 된다.

얼른 비님이 잔뜩 찾아와서

낙동강 허리에 살이 붙기고

때가 씻겨 나가기를, 그렇게 여름을 기다린다.

여기서도 꽃잎은 차창에 매달린다.

둥실둥실 나는 모양새가 눈물인 듯, 첫사랑의 설렘을 안고 있다.

키 작은 부산경전철에 비해 한참 큰 전면 유리 너머

생에 첫 봄꽃놀이를 즐긴다.


초행길을 걸어 아빠에게 간다.

간호사 선생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까부터 1층 로비에서 나를 기다린 아빠에게,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애틋했나

못난 마음이 불쑥 솟아도

주름진 얼굴이 아이처럼 맑게 웃는 모습에

찌잉 모드가 켜져 버린다.

휠체어 위에 놓인 손을 꼭 잡는다.

아빠의 마른 어깨를 쓸고,

슬리퍼 밖으로 비죽 나온 발가락이 애처롭다.


보호자가 없이 침대를 지키느라 쓸쓸했을까.

지난 삶에 대한 회한도 일었을까.

병실 동료에게 ‘서울 사는 딸’을 뽐내듯 소개하는 그에게서

또 한 번 턱을 치켜드는 꼬마가 보인다.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과

돌봐주신 마음에 감사를 전하며

아빠의 병원 친구들에게 마음을 건네는 동안,

효녀 심청이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아

자기 검열을 켰지만,

내내 웃고 있는 아빠를 보며, 행복을 생각한다.



지나온 시간 속에는 그의 손의 감촉이 남아있지 않은데,

본래 모양인양 내내 아빠와 딸은 손을 마주 잡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유년시절의 친구처럼 조잘조잘 말이 끊기지 않는 동안,

나의 비틀린 유머가 나의 아버지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회로를 몇 번이나 감아보아도 이렇게 빨리 감긴 시간은 없다.

주거니 받거니 척척 호흡이 맞은 영혼의 짝이 있었던가.


저녁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길,

화사한 햇살아래 빛나던 낙동강변에

지글지글 붉은 노을이 지고

어스름이 밀려든다

해 질 녘 풍경에

아빠의 주름진 손이 겹쳐진다.

이제 나에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은 날씬하게 휘어지는 낙동강이다.

손 내밀 허락을 구하며 손길을 갈증 하던 꼬마는

스스로 손을 내밀어 구겨져있는 세월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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