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4장 루피의 인생 역 전- 패티 나쁜 X-
루
노는 게 제일 좋은 우리들은
뽀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열 살 터울의 형제자매도
뽀로로로 대동단결할 수 있고,
아이 없는 어른이라도
‘노는 게 제일 좋은 그 아이들’의 습성쯤은 다 안다.
만화 속에도 질서가 있다.
뽀로로, 크롱, 패티, 포비, 해리, 루피, 용용이…
그리고 기타 등등.
주인공은 늘 뽀로로다.
그게 조금 얄밉고,
목록에 넣을까 말까 망설이던 용용이가 미안해지고,
“기타 등등”으로 묶인 조연들이 짠하다.
작은 몫도 다 소중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아직 그만큼 순수하지 않다.
그래서 또 오지랖이 발동한다.
취향에 따라, 성격에 따라
각자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있을 것이다.
나는 루피에게 마음이 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 루피 안에 나를 본다.
공주를 꿈꾸지만
현실은 부엌에서 샌드위치 굽는 소녀.
다른 친구들이 놀 때,
새벽부터 김밥을 말고, 쿠키를 굽는 아이.
그런 루피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그래서 나는 줄넘기하는 패티를 미워했다.
패티 나쁜 년.
꾸미기와 독서로 자기 관리를 하고,
요리는 못하는 척하며
“루피, 네 쿠키가 최고야!” 한마디로 늘 얻어먹는다.
내가 꼰대라서 남자애들이 요리하지 않는 걸 문제 삼지 않느냐고?
그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이건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아픔의 서사다.
“귀엽다, 맛있다” 하면서
정작 사랑은 패티에게 고백하는 나쁜 놈들.
내 분노는 그들에게 가 있다.
루피는 핑크색이다.
약간 촌스러운 연분홍.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움이 있다.
부엌칼 대신 손톱을 들고,
묵묵히 요리하고 웃는 동안에도
자신만의 상처를 품은 아이.
그런 루피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
손에 물 마를 날 없던 루피가
모델이 된 것이다.
버거킹의 광고 모델 루피.
SNS를 뒤덮은 루피 짤.
그때 나는 묘하게 후련했다.
“그래, 이제 세상이 한 번쯤은
루피를 봐줄 때가 됐지.”
패티는 여전히 예쁘고,
뽀로로는 여전히 주인공이지만,
이제 루피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건 작은 역전이지만,
내겐 인생 같은 루생역전이었다.
억울한 마음, 괜찮다.
모두 정해졌다고, 이미 끝났다고
단정 짓지 마라.
너는 너의 속도로
너만의 빛을 찾아가면 된다.
네 시대가 오든, 오지 않든 상관없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시간은
그 어떤 실패보다 큰 후회로 남을 테니까.
요리는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먹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하지만,
그 감사가 당연해지는 순간,
차라리 버려라.
로맨스를 꿈꿔도 좋다.
망설이지 말고 사랑을 고백해라.
너는, 언제나 주인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