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6장 망각의 숲
4부 6장 망각의 숲
당신이 지나온 기억은 어떤가?
선택하여 잊을 권리가 생긴다면 일부나 전부 지우고 싶은가?
아름다운 것 이면의 고통, 들어내고 싶은 순간의 생명력.
한 발 물러나 숨을 고르면, 좋고 싫음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정말로 없애버리고 싶은 순간이 이란 것도 있겠지만.
어느 대학 지방 캠퍼스에 ‘망각의 숲‘이란 길이 있다.
숨을 멈출 만큼 아름다운 길을 떠올렸다면, 정답이다.
나도 딱 한 번 그곳에 가 본 일이 있는데,
후우.
뱉어낸 날숨이 이어 다음 숨이 들어오지 않고, 찰나의 망각을 경험했다.
나는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아닌 걸 찾아내는 일이 많은데,
그때 그 순간은,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그렇다.‘하고 맥없이 찬성 쪽에 표를 던졌다.
오래전 일인 탓도 있지만, 그날 내 눈에 든 것보다 ’ 망각’의 감각이 훨씬 강렬하다. 그때 대학 신입생이 되고 한 달쯤 지난 때였는데, 학교의 공식 행사였던 터라 잠시 자유로운 나를 내려두었던 것인지, 그 숲의 망각력이 압도적인 게 맞는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구한테 내놓아도 거친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 고난 자랑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 이렇게 이겨냈소. 나 따라 해 보시오 ‘는 더욱 아니다. 한 겨울 추위에도 들 곳이 없어 땅 속에 몸을 묻고 봄을 기다리는 것뿐인 빈민가 한 구석의 들풀 같은 시간 속의 시간. 그것을 지나오는 동안의 나는 온실의 화초가 되고 싶었다. 꽃가게 앞을 지날 때나, 식물원 구경을 할 때면 누군가가 가꾸어준, 예쁘게 피어나기만 하면 되는 그 꽃들을 들여다본다. 잠시간은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온도와 습도가 맞아 절묘한 빛을 내고 고운 자태로 은은한 향을 피워내면, 소중히 다루는 손길을 타고, 누군가의 특별한 날에 대게는 사랑의 이름표를 다는 삶. 그 꽃을 사이에 둔 주는 이의 떨림과 받는 이의 감동. 이런 따뜻함이 저절로 내게도 스며들 것이고, 그래서 나는 미움이라고는 모르는 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절정의 순간을 강렬하게 살고, 사그라드는 아쉬움을 나누며 주인님과의 헤어짐도 예쁘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이미 눈치챘을지 모르겠다. 꽃씨가 심어지거나 접붙여지는 손길로 시작해, 영혼을 모아 아름다움에 힘쓰는 운명을 따라가다, 힘이 빠지는 느낌. 나는 다시 선택한다면, 노상 풀인가 온실의 화초인가. 단번에 결정할 수는 없다. 조금 더 자세히 내 마음을 소개해 보자면, 이름 없는 들풀까지는 물론 길에 사는 것을 여지없이 선택할 것 같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니까 이런 유약한 표현을 써본다 - 하지만, 잡초라고 분류가 되어도 들에 사는 쪽인가를 생각하면, 그보다는 귀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단박에 결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잡초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는 작은 명제 하나를 들고, 그래도 살아볼 만한 지는 잘 모르겠더라. 이 글은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인지 역시 궁금하다.
망각의 숲. 그날의 그 아름다운 풍광, 봄볕의 기억의 한 편에는 캠퍼스 소개 뒷 이야기 같은 것이 있다. 숲에는 줄지어선 나무들이 만들어낸 길만큼 근사한 호수가 있고, 그 위에 한 두 마리 오리가 떠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오리 회원을 정기적으로 충원하지만, 자꾸 사라진다는 것이다. 학교 수위 아저씨들이 회식에 맞춰서 그렇다나. 예쁜 숲이 주는 추억도 좋지만, 나라는 사람이 더 끌리는 쪽은 역시나 오리의 삶, 아저씨들의 웃음과 눈물이 섞인 인생의 이야기라는 것은 꽤 분명하다. 내게 오리 실종 미스터리는 망각의 숲의 아름다움을 헤치는 것이 아니다. 그 숲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한다. 그럼 나는 많은 기억들을 지우고 싶은가에 답을 해야 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아프고 괴로운 시간이 지나 내가 되었다. 애초에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지나온 길에 눈 감는 것은 내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선택하지 않는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더 빛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둠은 어둠 그 자체로 존중받기 원한다. 밝음이라는 더 옳아 보이는 것의 부속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인 사랑과 존중을 하고 싶다. 어둠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좀 더 살펴봐야 하고.
망각의 숲에서 살 수는 없다. 신의 선물, 망각을 들고 그 숲길을 걷고 나면, 다시 찬란한 아픔의 나를 오롯이 만난다.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