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차 대기업 직장인의 회고록
6년 전, 자그마한 자취방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취업 커뮤니티에서 들려오는 지라시들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채용 사이트를 접속하곤 했었다.
"약속의 12시"
"약속의 1시"
"약속의 2시"
한 시간 간격으로, 때로는 30분 간격으로 결과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마치 알람처럼 대화방에서 퍼지곤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창을 확인하던 순간, 부모님과 통화하며 감격하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년간의 취업준비 끝에 마침내 나도 사회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회에서 정해주는 좋은 대학교를 넘어 다음 스텝으로, 이대로 앞으로만 나아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흘렀다. 2년 차까지는 별생각 없이 회사를 다녔다. 나름 루틴화 되어있는 일상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했고 사람들과도 가까워지면서 사회생활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다.
3년 차가 되자 매너리즘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과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사내 분위기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좋은 선배들도 하나둘 새로움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마음을 다시 추스를 수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3,5,7년 차를 조심하라고 했던가. 애써 다잡았던 마음이 5년 차가 되니 전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강요받는 책임과, 아이러니하게도 주어지지 않는 권한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들이 쌓였다. 같은 주제를 놓고 반복되는 회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나오지 않는 결론. 보고를 위한 보고와 알맹이 없는 예쁘장한 자료들. 하루하루가 비효율의 연속이었다.
"머리 비우고 다니기엔 좋은 회사야"
누군가는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출근해 있는 시간이 마치 죽어있는 시간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한숨을 쉬어야만 숨이 쉬어진다는 선배들, 누굴 만나도 대화 주제가 회사욕으로 끝나는 순간들, 회사에 오래 근속하라는 게 최고의 악담이라며 손사래 치는 사람들.
하루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업무 시간 중에, 부정적인 이야기들만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직장이란 무엇일까, 그저 돈 버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 것일까?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는 일상이라도 매달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에 만족하는 삶이 진짜 행복한 삶인 걸까.
작년 원천징수영수증에는 7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찍혀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그게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덕분에 지난 6년간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었고 삶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은 점점 공허해졌다.
돈은 조금 덜 벌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고 내가 좋아하는, 지속가능한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삶의 시야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선배들이 살아온 인생을 정답지처럼 쫓아가기 바쁜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정말 '내' 인생이 맞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시야를 조금만 밖으로 돌리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삶들이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1년 전부터 커피와 공간에 관심이 생겨, 작년에 처음으로 카페쇼에 다녀왔다. 수많은 인파 속에 각자의 브랜드가 담고 있는 가치를 전달하고자 열심히 소통하고 있는 사람들. 사무실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열기와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이런 에너지를 돌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도 혼자 카페투어를 종종 다니고 있다. 프랜차이즈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들을 주로 방문하는데, 카페를 열게 된 계기도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점과 그로 인해 바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커피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커피일을 추천해 주는 사장님들도 더러 있었다.
한 번뿐인 삶에서 '내가 어떤 가치를 좇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무기력한 일상에 빠져있다면, 스스로를 잠시 건져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제대로 짚어보아야 한다. 5년 차에 찾아온 회사와의 권태기로부터 1년 동안,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채워나갔다. 그로 인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조금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회사를 나가는 게 불안하지 않아요?"
절대 불안하지 않다. 고민과 행동을 지속하다 보면, 불안함이 떠난 자리에 기대와 설렘이 자리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비로소 삶의 방향키를 내 손에 쥐었다는 생각에, 일상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하고 실천해 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이다.
앞으로 또 어떤 방향성을 갖게 될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들을 채워갈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이직을 할 수도,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도,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없으며 펼쳐질 내일에 대한 기대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남이 정해주는 기준과 정답을 강요하는 요즘의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답은 없다.
각자의 삶 속에 각자의 방향성, 그리고 각자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