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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리 Jun 20. 2024

우리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살아온 곳들과 살고 싶은 곳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대학생이 되어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벌써 30대 중반을 앞둔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나의 첫 자취방은 하숙집이었다. 먼 타지로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해 주는 하숙집이 가장 마음 놓이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아침이면 하숙집의 형, 누나들과 식탁에 모여 앉아 아주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한 가족처럼 생활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래층에 계시던 집주인 할아버지께서는 컴퓨터가 어렵다며 종종 나를 부르곤 하셨는데 짙은 고동색의 목재 가구들과 오래된 낡은 컴퓨터,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시던 효자손까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10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컴퓨터를 쓰고 계실까, 모쪼록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군대에 가면서 하숙집을 나오고 지금은 좀 더 쾌적한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은 자취 생활 중 가장 깊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작은 공간에서 옹기종기 모여 주고받았던 순수한 정 때문이 아닐까.




요즘에는 퇴사를 하고 다양한 동네로 카페 투어를 다니고 있다. 같은 서울이라도 동네마다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정서가 느껴진다. 트렌디하고 힙한 건물들이 반짝이며 위용을 과시하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제대로 된 간판 하나 없이 소박한 공간들이 자리하는 동네도 있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둘 중에 내 취향을 고르자면 후자에 가깝다. 소소한 편안함이 느껴지는 정취라고 할까. 요즘은 그런 동네의 사랑방같은 카페를 찾아가는 걸 즐긴다.


최근에 다녀온 카페에서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감성적인 인테리어로 SNS에서도 유명한 신상 카페가 있어 아침부터 찾아갔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곳이었는데 앞서 말한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가득했다.


한창 커피를 마시며 공간을 둘러보고 있으니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는 할머니 한 분이 카페로 들어오셨다. 힘들게 쥐고 있던 장바구니를 내려놓으시고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카페 직원은 정겹게 맞이했다. 이내 테이블에서 홀로 커피 한 잔을 즐기시고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얼마 전에 브런치에도 남겼던 '누구나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는 공간'을 현실에서 마주한 것 같아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가 카페를 찾은 이유는 적어도 'SNS에서 유명한 카페'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동네에서 편하고 시원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사실 나의 어릴 적을 돌아보면 이런 정겨운 풍경은 꽤 익숙한 일상이었다. 어느 가게에 가든 동네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동네의 모든 공간들을 공공장소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공유하며 살았다. 요즘에는 많은 것들이 개인화되고 단절되면서 앞서 이야기한 소소한 일상에도 감동을 받게 된다.


동네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 동네 : 사람들이 생활하는 여러 집이 모여 있는 곳


동네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하숙집이 오래도록 나에게 큰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도, 카페에서 마주한 찰나의 순간이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는 것도, 동네에서 정을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사람들'때문일 것이다.


훗날 나는 어떤 동네에 살고 싶은지 떠올려본다. 마당이 있는 곳, 자연이 펼쳐지는 테라스가 있는 곳 같은 물리적인 환경들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


아직은 막연한 꿈이지만 꿈을 꾸다 보면 언젠가 그런 집에 살게 되지 않을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


10년 후의 우리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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