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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04. 2023

엄마의 현실주의, 아빠의 낭만주의

  부모님이 질색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주제는 '유전'이다.


  닮은 사람일수록 끌린다는 설과 사랑할수록 닮아진다는 설이 있다. 어째 우리 부모님은 다 해당되지 않아 보인다. SNS상에서 화제였던 아랍상과 두부상의 조합도 아니다. 부부가 날이 갈수록 닮는 건, 같은 순간에 함께 웃는 등 얼굴 근육을 비슷하게 써서 그렇다고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한 지붕에서 산 세월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어 순간을 공유하지도 못했다. 두 분 사이에 웃음도 적었다. 그러니 비슷해지지 않을 수밖에!


  그 때문에 내 존재가 신기하기만 하다. 엄마네 사 남매와 아빠네 삼 형제는 지나가는 사람이 슥 봐도 저들은 피붙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엄마와 삼촌은 성별 다른 도플갱어라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두 집안의 강력한 유전자가 만났는데 워낙 끈질긴 탓인지 승자는 없었다. 내 얼굴에선 엄마의 얼굴과 아빠의 얼굴이 혼재해 있다. 눈은 엄마, 입은 아빠 이런 식으로 닮았다기보단 전체적으로 엄마인데 또 아빠이기도 한 희한한 결과가 도출됐다.


  누구는 아빠 닮고, 누구는 엄마 닮고, 누구는 아빠엄마 반반인데 나만은 결이 다른 게 신기했다. 엄마와 있으면 사람들은 흡사함에 놀란다. 아빠와 있으면 역시 딸은 아빠 닮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릴 때부터 이런 요상함에 주목하며 <야매 유전 분석>을 했다. 유전은 생김새에 한정된 게 아니니 행동이나 성격을 파헤칠 때면 더 재밌었다. 아빠와 같이 살지 않는데도 아빠가 내 특질에 영향을 끼친 게 많았다. 이런 모습은 엄마 닮고, 이런 면모는 아빠 닮았네, 혼자 분석하며 킬킬댔다.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으니 부모님이 질색팔색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부모자식 간에 상처 없는 집안이 어딨으랴. 나도 부모님에게 상처를 줬지만, 유년 시절을 서술하면 보호 조치가 내려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집안은 살얼음판이었다. 어린 자식을 앞에 두고 폭력을 주고받는 부모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류다. 부모가 처음이라 그렇다는 건 이해하지만, 부모라는 게 초중고처럼 한때에 그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달라질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처음이라는 말만 되뇌는 건 어린 내게 변명처럼 느껴졌다. 우리 가족이 달라지기까진 오랜 충돌과 감내, 그리고 서로의 용서가 필요했다.


  아무튼 우리 부모님은 이상하고 유치했다! 두 분 다 나이가 들면서 그때를 부끄러워하니 나도 그 시절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성장환경이 나빴지만 또래보다 부모 애착은 강한 편이다. 부모님만 잘못했나, 나도 잘못했지, 하는 생각. 그도 아니면 부모님 탓해서 무얼하리, 라는 생각. 아무래도 유교 정신이 박혀 있어서 그런 듯싶다. 부모님을 향한 애착이 강한 데는 유전 탓도 크다. 거울을 보면 아빠엄마가 보이고, 내 온갖 행동에서 부모님이 묻어 나오는데 성인 됐다고 부모님 돌아설 수 있겠는가. 아빠와 엄마는 내 출처이다. 출처를 부끄러이 여기면 날 알아가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을 테고 출처를 욕하면 결과물인 나까지 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봤다.




  엄마의 외벌이로 형편이 팍팍한 탓에 엄마에게서 낭만을 바라긴 어려웠다. 회사원인 엄마는 집에 있을 때면 부업을 했고 새벽에는 신문 배달까지 나갔다. 엄마는 현실주의자였다. 엄마가 현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자식들의 미래는 순탄하지 못하리란 판단이었을 것이다. 반면 아빠에겐 낭만만 강했다. 엄마는 아빠의 현실 인식을 간절히 바랐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아빠는 돈 대신 사랑만 내밀어대니 엄마가 화날 만도 했다.


  엄마가 허리띠 졸라맬 동안, 아빠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 모조리 다 챙겼다. 엄마가 꼴 보기 싫다는데도 결혼기념일과 엄마의 생일엔 집에 꾸역꾸역 들어와 선물을 내밀곤 도망쳤다. 엄마가 꽃다발을 집어던져도 아빠는 내년에 또 꽃다발을 사들고 오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내 생일 또한 한 번도 거른 적 없을 만큼 매해 선물을, 그것도 낭만 넘치는 선물을 들고 왔다. 엄마는 독서대, 화장품, 속옷처럼 선물에서도 실용성을 중시 여겼다면 아빠는 인형 집, 만화책 시리즈, 피겨처럼 없어도 살 수 있는(말고 生) 물건들만 내밀었다. 고등학생 때 <패왕별희>란 오래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지금은 재개봉도 하고 OTT에도 올라와 있지만 그때는 볼 수가 없었다. 돌아온 내 생일날, 아빠는 낡은 CD를 내밀었다. 우리 집 컴퓨터 본체는 망가진 지 오래라 CD를 끼울 수 없음에도 장국영 얼굴이 딱 있는 CD를 손수 포장해 왔다. 어디서 구했을지 짐작도 안 됐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포장 안  선물을 내민 적도 없었다.




  유전 외에도 대화 주제로 꾸준히 오르는 게 <아빠의 일기장>이다. 이는 아빠가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까지 써 온 것으로 글은 별로 없지만 볼 건 많은 요물이자 유물이다. 현실주의자인 엄마와 언니는 '애인 없는 외로움'을 토로한 내용에 웃어댄다. 나는 웃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가 꿈이던 아빠가 신문을 스크랩한 거며, 예쁜 낙엽을 주워다 끼워둔 거며, 유적지의 티켓을 붙여둔 것 등이 내 마음을 울리니까. 아빠와 내가 만나기 한참 전의 아빠를 알 수 있는 건 특혜 아닌가.


  일기장엔 아빠가 손수 쓴 자기소개도 있다. 이 자기소개가 아까워서라도 평생 소유할 테다. 엄마만큼이나 아빠도 동정을 많이 샀다. 엄마가 제일 불쌍히 여긴 사람도 아빠였다. 정기적인 일자리 없이 전국을 떠돌며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기도 했다. 엄마의 고난은 지켜봐 왔지만 아빠의 고난은 집 바깥에서 벌어졌기에 잘 알지도 못한다. 아빠와 떨어져 살 때, 아빠가 전화를 안 받으면 확 죽어버린 건 아닐까, 사고가 난 건 아닐까 두려울 정도로 아빠는 위태로운 사람이었다. 일기장의 자기소개만큼은 아빠의 얼굴을 휩쓴 고독 대신 멋 모르는 청춘의 낭만만 느껴져서 좋았다.


  현실주의자인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는 바른 사람으로 자랐다. 하나 낭만주의자인 아빠의 유전자도 물려받아 낭만을 잃지 못하는 백수가 됐다.... ㅎㅎ 엄마에게 낭만을 주입시키는 역할은 내가 위임했고, 아빠에게 현실을 각인시키는 역할도 내가 맡고 있다. 아빠는 엄마 잔소리라면 듣는 체를 안 하지만 훨씬 어린 내 잔소리에는 별 수 없이 수긍한다. "엄마, 이 소설 좀 읽어 봐." "엄마, 이 장면 좀 봐 봐. 엄마는 슬프지도 않아?!" "아빠, 밥 먹고 바로 눕지 말랬지!" "아빠, 복권에 돈 그만 쓰랬지!" 같이 잔소리꾼 딸내미가 되었다.


  하여튼 이상한 가족이다. 그래도 난, 대조되는 유전자를 보유한 우리 부모님이 좋다. 유전자를 희한하게 물려준 부모님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19살 때 아직은 따로 살던 시절. 랜덤인데도 딸이 원하는 검정 냐옹이만 기막히게 뽑은 금손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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