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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04. 2023

엄마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씁니다

  '당신들'이라는 2인칭 표현은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신이란 말은 좋아하는데 연장자에게 쓸 순 없으니까요. 마땅한 칭호가 없어 '어른들'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때도 어른들이셨고, 지금도 변함없이 어른들이니까요. 대학 생활을 회고하는 글을 쓰다가 어른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졌습니다. 실제로 연락드릴 용기는 없고요. 미워하지 않으려고, 편지 씀으로써 제 분노 다스리려는 겁니다.


  한때는 날 믿는 대신 비교를 멈추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했습니다. "내가 사촌들보다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어"라는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애당초 저울질 자체가 이해되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주관적으로든, 객관적으로든 저는 어른들보다, 어른들의 자제들보다 못나 보이지 않거든요. 물론 20대를 기준으로 이었습니다. 비교를 하려면 먼저 조건(나이)을 동일하게 맞춰야지요. 그럼에도 부족한 게 있다면 가정형편을 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가난에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결단코 없습니다. 가질 수 없음에 떼쓰지 않는 법은 일찌감치 배웠으니까요.


  이처럼 우리 엄마는 가정교육을 잘 시켰습니다. 아빠가 곁에 있든 없든 엄마는 자식들을 가난 속에서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애썼습니다. 친구가 제 책을 망가트렸을 때는 제게 친구가 실수할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친구  한 페이지를 더럽혔을 때는 새 책을 보내 준 게 납득이 안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엄마의 행동이 갈등이 커지지 않도록 개입해 준 어른의 배려라는 걸 압니다.




  엄마는 강고 지금도 강 사람입니다. 이런 엄마때때로 약해지게 만든 건 저와 언니보다도 어른들의 동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의 불행에 어른들의 동정이 준히 부채질했음 깨닫지 못하시겠죠.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막내 동생, 애교만점에 어딜 가든 사랑받는 막내 동생이 결혼 후 고생만 하니 어른들 마음 아셨을 겁니다. 하지만 힘든 사람에게 동정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어른들도 자의 핍을 셨으면서 우리 가족에게는 함부로 동정을 던지시는 건지는 이해하지 않을 겁니다. 동정만큼 무례한 감정이 없음을, 엄마에게 꾸준히 말해왔고 이제 엄마는 저를 믿어 려 합니다.


  엄마는 오래전에 한 가정을 이습니다. 출가한 자제들에겐 잔소리를 피하시면서 엄마는 동생이라는 이유로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개입을 못 멈추시는 건지요. 사랑둥이 막내 동생도 엄마의 정의인 건 맞지만 제게 있어 엄마는 책임감이 강한 데다 본받고 싶은 멋쟁이니다. 저는 엄마의 자식이고 엄마는 저의 엄마니다. 이 관계는 어른들과 엄마의 관계(자매, 남매, 친구)만큼이나 끈끈하다고 니다. 제가 엄마와 산 세월이, 엄마가 어른들과 동거 세월을 넘어섰으니까요. 마도 이제 50대이십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친정으로 가자시데도 저와 언니를 버리지 못입니다. 그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강만 마음으로는 무너 잦았을 겁니다. 저는 엄마의 긴 고뇌를 들어왔습니다. 어른들이 엄마를 불쌍한 사람 취급하니까요. 그렇다고 저마다 가정을 이룬 어른들에게 기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엄마는 어린 저에게 의지는데 모든 걸 털어놓 엄마의 솔직함은 마냥 옳 못했지요. 하나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합니다. 동정을 다발적으로 듣는데 어떻게 강하게 있수 있나요.


  엄마 대신 제가 밝히자면 어른들이 엄마에게 친 모욕 한 트럭은 됩니다. 엄마는 어른들의 도움을 당연시 여긴 적이 없는데, 동정하다 말고 도와주기 싫어 버럭 화를 내다가, 으스대듯 돈을 건네는 어른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남편 복 없는 사람은 자식 복도 없다고요? 자식을 버리지 못한 엄마가 그 말에 상처받지 않을 거라 보신 건가요. 그 말을 듣고 자란 저는 선택이 필요한 고비마다 제 마음보다도 어른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래야 우리 엄마를 덜 동정하실 테니까요.


  어른들은 "네가 직접 선택한 길"이라 제 힘듦은 스스로 감내하라 하시지요. 삼촌은 무서운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경찰대 대신 명문대를 택하셨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저 또한 엄마의 뜻을 거스를 수는 있어도, 엄마의 사고에 영향력을 행사하 어른들의 뜻마저 거스를 순 없었습니다. 제 행동이 결국은 엄마의 평가로 직결되는 게 무척이나 싫었으니까요. 이래도 제 온전한 선택이라고 말하실 수 있나.


  엄마가 지금도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음은 압니다. 어른들이 수없이 던져주신, 던져주고 계신 조언들. 그 조언을 가장한 무례가 우리 가족을 나아지게 만들었는지는,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지는 자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빠는 변니다. 제대로 된 직장을 찾 엄마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며 사랑 아끼 않지요. 엄마는 아빠를 받아들습니다. 저 또한 변했습니다. 어른들이 제 우울을 한낱 치기로 취급며 엄마를 하시니, 우리 가족은 제 정신을 죽이는 데 합세했습니다.


  지만 저는 이겨냈고 가족을 용서했으며 가족과의 평생을 기 겁니다. 어른들의 바람대로 곧장 취준을 택하는 대신, 제 뜻대로 백수 자청한 지금, 저와 엄마의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습니다. 엄마는 현재의 저를 받아들 저는 이 행복을 오래록 유지해 나갈 겁니다. 엄마를 가엽게 보 게 아니라면 저희의 나날잡언은 삼가 주길 부탁드립니다.


  어찌 됐든 어른들의 동정 엄마를 향한 사이 바탕이지요. 그 때문에 어른들을 하는 일은 과거에도, 지금도 울 수 없습니다. 하나 주제넘게 말해보자면, 마의 장점인 배려가 어른들에겐 부재했 거 같습니다. 머리에 피 마르려면 한참 남은 어린이에게 군 행동을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엄마의 자식인 동시에 아빠의 자식이니, 아빠를 그토록 미워하시는 어른들  향한 움이 한 터럭도 안 생길 순 없겠죠. 어른들은 언제 그랬느냐며 발뺌하실 게 뻔하지만, 아빠 없이 엄마밖에 없던 제게, 엄마는 우리 집안이고 너는 다른 집안사람이니 저쪽으로 가라 농담은 잊지 못할 상처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승자는 엄마라고, 나와 아빠만큼 이 세상에서 엄마를 우선으로 둘 이는 없을 거라고. 남편과 자식이 엄마의 팬클럽 1호와 2호인데 엄마의 인생을 재단할 필요성이 정녕 을까요. 저희 가족을 그저 지켜보시기만 하는 날이 빠른 시일 내에 오길 소망합니다. 저흰 행복합니다. 어른들도 저마다의 행복 빠져드시길 바라요. 건강하십시오.


  - 여전히 엄마 껌딱지인 칠칠이 올림

내년의 봄은 더 행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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