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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05. 2023

간헐적으로 싫어지는 주말

  8월 5일 토요일. 서울에 사는 언니와 평택에 사는 아빠가 만나 한 차로 내려왔다. 근 3주 만에 멍멍이를 포함한 다섯 식구가 토요일을 한 집에서 보내게 됐다. 분명 기뻐할 일인데 하루가 끝나가는 지금, 왜 이리도 울적한지. '가족 사랑'이란 주제로 글을 써온 게 모순으로 느껴질 만큼 간만의 재회는 가족들을 향한 애정이 줄어들게 만들고 있다.


  백수로 지내도 요일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건, 아빠가 주말에만 내려오기 때문이다. 주말 부부, 내 기준으론 주말 부모인 셈이다. 하나 아빠의 주말행과는 무관하게 주말이 달갑지 않은지는 꽤나 오래됐다. 주말이면 가족들의 무기력을 가만히 목도해야 돼서다. 가족들에게 "과거에 그랬던 걸 이해한다"는 말을 참 자주 내뱉으면서도, 무기력만큼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현재 진행형이라 이해가 쉽사리 되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그저 시간 죽이기 바쁜 무기력이 이해는커녕 싫기만 하다.


  매 주말이 이런 건 아닌데.... 오늘은 가족들이 합세라도 한 듯 무기력하게만 있었다.




  아빠와 언니는 낮 4시경에 집에 왔다. 아빠가 배고프다며 라면부터 끓이려 하기에 얼른 국수 만들 테니 기다리라 했다. 도착 시간을 알려줬더라면 다른 걸 했을 텐데 미리 알려주는 법이 없다. '라면'은 내가 먹는 것도 싫어하고 가족이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난과 라면은 찰떡궁합 아닌가. 라면을 맛있어서 먹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 부모님도 지금은 이쪽에 합류했는데, 어쩔 수 없이 먹어 온 기억이 있는 사람에겐 라면만큼 미운 음식도 없다.


  언니는 이왕 할 거면 자기 몫까지 2인분 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심에는 엄마에게 밥을 해주고, 한낮에는 아빠와 언니에게 밥을 해 주는 게 (현) 백수 입장에선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싶었다. 언니와 아빠는 예능 방송을 보면서 국수를 뚝딱 먹은 후 싱크대에 그릇만 담가 뒀다. 어쩌다 넷이서 밥을 먹을 때는 그릇을 치우질 않으니, 이거라도 감지덕지다 싶으면서도 한숨부터 나왔다.


  저녁은 홀로 먹었다. 엄마는 밥 생각이 없다 하고, 아빠와 언니는 배고프다며 먼저 먹었으니 자연스레 <혼밥 당첨>이었다. 국수용 비빔장이 남아서 해치워야 했다. 개인적으론 소면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파스타면 삶은 후 대충 섞었다. 점심때 노른자만 사용해서 흰자 남은 것도 익혀 올렸다. 괴식 그 자체였지만 혼자 먹으니까 상관은 없었다. 가족들을 위해 요리할 때는 조금만 짜거나 조금만 싱거워도 아쉬움이 떠나질 않는데, 입에 꾸역꾸역 넣다 말고 약간 씁쓸해졌다. 밥을 먹곤 설거지 먼저 끝냈다.




  아빠는 얼마 안 있어 잠들었다. 밥 먹고 눕지 말라, 밥 먹고 잠들지 말라는 잔소리는 날이 갈수록 잘 통하지 않는다. 아빠에겐 수면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토요일의 노동과 일요일의 농사가 아빠의 남은 주말을 잠으로만 채워버리니 말이다. 근래는 날도 더워 몸이 더 고된 탓인지, 한 번 잠들면 그때가 낮이건 새벽이건 깨어나질 않는다. 아빠, 엄마, 나 세 사람이 함께 하기로 한 멍멍이 산책도 엄마랑만 다녀왔다. 참고로 언니는 멍멍이 산책을 거부한 지 오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귀찮아서.


  아빠는 소파에서 잠만 자고, 엄마는 저녁도 거부한 채 침대에만 누워 있고, 언니는 내가 싫어하는 짓(언니의 체면을 위해 서술 생략)을 한 후 유튜브로 시선을 돌렸다. 고요한 집안에 남들의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하하하, 호호호. 나도 알고 있는 예능 콘텐츠였지만 무엇이 저리 기쁠까 순간 짜증이 났다. 짜증은 이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마음을 여유롭게 가져야지. 그렇지만 가족이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나 곁에 있는 휴일에는 참 버겁다.


  과거가 날 주저앉히는 걸 극복했더니만 현재가 남아 있다. 깜빡했다. "아빤 원래 그래" "엄만 원래 그래" "언닌 원래 그래" '원래 그렇다'는 건 마법의 현재형 표현이다. 이러니 나만 빼놓고 보면 환상의 궁합 같다가도, 남들의 눈에는 나 또한 "쟨 원래 저래"라 비추어지지 않을까, 급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가족과의 시간은 참 힘듭니다. 남은 1시간은 엄마를 제외한 두 사람을 조금만 미워하겠습니다. 엄마는 오늘의 투덜거림을 다 들어줬거든요. 이 정도의 미움은 아빠와 언니도 넘어가 주겠죠?

꽃을 보러 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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