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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08. 2023

농담이라기엔 규모가 큰데요?

[ㅁ] 만우절
누군가를 속이는 날로, 모든 장난이 그러하듯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할 것


  타인의 생일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월과 일을 합한 두 개에서 네 개의 숫자가 뭐라고, 이리 뇌리에 안 박히는지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시간아 알아서 흘러가라며, 바삐 지내다 보면 가까운 이의 생일도 깜빡하는 일이 벌어진다. 성의의 차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상사라 억울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로 인해 생일은, 사람들 사이 감동을 유발하면서도 가시지 않는 서운함에 시달리게 만든다.


  작은 일로도 토라지는 예민한 학창 시절. <새 학기, 방학, 시험 기간, 공휴일> 이 네 경우에 생일이 들어간 아이들은 왠지 모르게 손해 보는 기분을 떨쳐 내지 못한다. 반은 매년 바뀌니 처음 만난 동급생들의 생일을 번번이 축하해 주는데, 어째 나만은 작년에건 올해건 축하받지 못했다는 의문에 휩싸이는 것이다.


  4월 1일, 만우절도 학기 초라 볼 수 있을까? 학기가 시작된 지 끽해야 한 달이 지났으니 친해진 친구는 소수에, 어색한 친구가 좀 더 많기 마련이다. 하나 학생들에게 만우절은 넘어갈 수 없는 연례행사라 이 날 생일인 아이는 친밀도와 상관없이 주목과 축하를 동시에 받는다.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의 생일보다도 만우절에 태어난 이의 생일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만우절이 생일인 친구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내가 당사자라 매년 겪어 왔다.




  초등학생 때, 4월 1일이 되길 간절히 기다렸다가 "오늘 내 생일이야" 수줍게 말하면 "거짓말 치고 있네!"란 반응이 끊이질 않았다. 조용조용하던 애가 만우절이라고 거짓말을 다 하니 웃겨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진짜 오늘이 생일 맞다니까!" 소리를 꽥 지르고 나서야 친구들은 "우와, 신기하다!"며 순수한 놀람을 내비쳤다. 몇 년 당하다가 이후부턴 생일이 다가오기 전에 "곧 있으면 생일이다? 4월 1일 만우절이 생일이야"라 예고했다. 생일 파티 초대장도 없으면서 호들갑 떨기 일쑤였다. 4월 1일마다 "오늘 얘 생일이래!"라 기억해 주는 친구는 한 명 이상 나왔다. 내가 말한 게 아니니 거짓말이라는 오해를 받지도 않았다. 세심한 이의 발화에 동급생들은 동조하며 축하를 보냈다.


  친구들이 만우절에 태어난 나를 신기해하듯, 나 또한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친구, 설날이 생일인 친구를 보면 '우연이 만들어 낸 특별함'에 감탄했다. 하지만 난 이들과 다른 경우였다. 어른들의 공작 하에 일부러 만우절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이 비화까지 말해주면 친구들은 더 난리 쳤고, 그런 친구들의 반응에 힘입어 지치지도 않고 매년 썰 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말을 마치고 나면 이상한 씁쓸함이 혀끝에 맴돌았다. "이게 좋아할 일이 맞나?" 혀끝에만 남아 있던 쓸쓸함은 강력한 미움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한국 사회에서 아들을 소망 역사가 유구했단 건 숱한 일화를 통해 안다. 내가 태어나기 10년에서 20년 전까진 낙태도 성행했다. '백말띠 여성'이란 표현이 뉴스를 통해 주기적으로 들려와서 알았다. 2000년대 어떠했을지 잘은 모른다. 다만 우리 가족과 친척들, 친구들 가정의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기왕이면 아들>이 다수 의견이었다. 낙태는 안 해도 딸이라는 데 아쉬움을 감추진 않았고, 딸-딸-딸 연속 끝에 아들인 남매도 자주 보였다. 딸이 우선인 집도 있었겠지만 초등학생 때까지 특별히 본 기억은 없다. (초등학생 때까지인 이유는, 질풍노도 10대가 되면 다들 가족 험담은 해도 가정 내의 정보를 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의 시부모님, 달리 말해 나의 친조부모님은 성별로 압박을 주진 않으셨다. 몸도 성치 않은 엄마가 손주를 낳은 것만으로도 죄스러워하셨다. 하나 엄마가 첫 며느리기도 하니 내심 아들을 바라셨을 테다. 엄마는 출산에 적합한 몸이 아니라 무조건 제왕 절개이면서 수술의 난도도 높았다. 의사 선생님은 출산날을 미리 정하라 하셨다. 이에 할아버지는 "4월 1일 만우절에 낳으라" 권하셨다. "병원에서 여자라 했지만 만우절에 낳으면 남자로 바뀔 수도!"란 농을 던지셨다. 우리 부모님은 불가능한 부탁도 아니니 결국 4월 1일을 출산일로 잡았다. 진심이 가미됐어도 결국은 '노인의 농담'이었으니까.


  앞서 말했듯, 손녀란 이유로 조부모님에게 차별받은 적은 결코 없었다. 어릴 때야 "할아버지두 참~ 그 말에 따른 엄마두 참~ 그 부탁을 들어준 의사 선생님두 참~" 하고 나 또한 재밌어했지만 슬슬 머리가 크고 나선 배신감이 찾아들었다. 차별을 안 당했으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바라신 마음도 몰랐다. 알고 보니 날 계속 싫어하신 게 아닌가 하는 망상으로까지 확대됐다. 할아버지가 날짜뿐 아니라 시간(12시 정각)도 정해주신 게 불 난 마음에 부채질을 더했다. "그 정도로 손녀가 싫으셨던 거야?!"란 분노가 내 머릿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돌아가신 조부모님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는 게 아니라 쩔쩔매고 계셔도 이상할 게 없듯 이 못난 마음은 오래도 갔다.


  추가 정보

  1) 우리 가족은 농담을 즐겨한다. 단, 나만 빼고. 내가 농담을 못 즐기는 건 개그임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2) 만우절 땡 하자마자 태어난  아니고 12시간 지나고 낮에 태어났다. 신생아 탯줄이 잘리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니 정각 맞추기엔 실패했다.


  [분량이 길어져 나눠 씁니다. 감사합니다.]


외가 가는 길은 사진까지 찍어 놓고, 친가는 자주 찾아뵙지 못한 데다 사진 한 장 없는 게 속상하다. 사진이 누런 이유는 10대 때 일명 '오줌 필터'란 게 유행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면 맛있지, 맛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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