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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교수님께 겁도 없이!

by 밀과참

초등학생일 적엔 담임 선생님과 종일을 함께하니 정(情)은 나날이 커져갔다. 다만 학년이 바뀌면 담임 선생님도 달라져 기존의 정은 멈춰 버린 채, 새로운 정을 쌓아야 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담임 선생님이 계시더라도 과목별 선생님들이 따로 계시니 정이 골고루 퍼졌다.


내게 있어 정(情)의 기준에 시간이 크게 작용했다. 2학년 때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다음 해에 3학년을 맡게 되시면서 1년 더 뵐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경우 처음 만난 담임 선생님보다 2년 연속 뵙는 선생님들과 더 가까워졌다. '낯가린다' '말수 적다' '조용하다'란 수식어를 첫인상으로 꼭 들을 만큼 첫 만남이 내게는 장벽과도 같았다. 지난해 뵌 선생님들 사이엔 그러한 장벽이 없으니 학급 친구들보다도 마음이 편했다.


부모님이 가정의 어른이시라면 선생님은 학교의 어른이 아니신가. 미성숙한 나와 달리 어른의 면모를 지닌 선생님들이 좋았다. 같은 직업이라 해도 저마다 개성이 있으셨겠지만 정이 가는 선생님들은 공통적으로 똑똑하시고, 친절하시고, 재밌으시고, 다감하시고, 든든하신 만능 이미지셨다. <교수님은 '쌤'이 아닌 걸 알면서도> 편에서 서술했듯, 이런 역사가 있기에 교수님들도 마냥 좋아 보였다. 선생님들과의 관계처럼 친밀도는 높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어른이신 데다 매주 뵈니까 정은 쌓여 갔다.


초중고와 대학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표가 자율 선택에 달려 있는 거라 생각한다. 전공의 경우 운이 좋으면 똑같은 교수님을 졸업 전까지 뵐 수 있었다. 이 점이 내 안의 정(情)을 마구마구 키워나갔다.




대면 생활을 하면서 여러 교수님들과 좋은 교류를 맺을 수 있었다. 다만 1~2학년 때까지는 수업이 비대면으로 운영된 터라 관계가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교양에서 만난 교수님들과 문답을 통해 가까워졌지, 전공 교수님들과는 그런 게 미미했다. (교양은 재밌는데 전공은 안 맞아서 질문드릴 일이 적었다.... ^^)


전공 교수님들 중 가까워질 뻔한 분은 딱 한 분 계셨다. <대학생이 됐으니 다르게 사고하세요> 편에서 언급한 S 교수님이시다. 학생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렸다. "무서워서 어렵다" "은근 친절하시다" "단호하셔서 힘들다" "적응만 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대충 이런 평이 오갔다. 개인적으로 스파르타 방식을 좋아하는 터라 S 교수님의 살벌한 수업에 가장 큰 흥미를 느꼈다.


그런데 2학년 2학기가 되자 S 교수님이 떠나신다는 게 아닌가! 학교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교수님들은 학교를 안 떠나시는 줄 알았기에 연이은 충격을 받았다. 내게는 모두가 똑같은 교수님이셨지만 학과 홈페이지 '교수진 소개'에 달리 표기되었거나 안 올라와 계신 경우 다른 학교로 가시는 모양이었다. 초중고와 달리 작별 기간이랄 것도 없어 보였다. "다음 시간부턴 XX 교수님이 하실 겁니다" 역시나 차가운 교수님은 말이 끝나자마자 줌을 종료하셨다. 나는 이 소식을 진작 알고 있어 덜 놀랐지만.




S 교수님은 스파르타셔서 정이 쌓여간들 원초의 무서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호명당할 때마다 쫄았고 잘못 대답하는 날에는 더 떨었다. 학생들한테 관심 없다는 말도 직접 하셨으니 보이지 않는 벽이란 게 느껴졌다. 고로 S 교수님의 성격을 존중해 사적인 편지를 쓸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D 교수님이 예외셨던 거지, 대학은 초중고와 같을 수 없었다. 교수님도 그저 떠나시고 수강생들도 동요하지 않으니 나도 이 방식을 받아들이려 했다.


하나 친구의 실언으로 또! 편지를 쓰게 됐다. 수강생들에게 알림이 있기 전, 친구는 교수님과의 상담으로 이 소식을 먼저 들었다. 교수님은 "나중에 직접 공지할 테니 되도록 말하지 말아 달라"며 부탁하셨다. 이에 따른 친구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칠칠이(나)한테만 말해도 될까요? 칠칠이가 편지 쓰는 걸 좋아하니 미리 아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란, 진짜, 아무도 묻지 않은, 정보를 해맑게 흘렸다. 친구는 무리 사이에서 극강의 순수함으로 통한다. 고로 스파르타 교수님 앞에서도 의도 없이 하고픈 말을 한 거였다. 친구의 사고가 어떻게 굴러갔기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던 걸까? S 교수님은 멋쩍게 웃으시며 그러라 하셨단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 예고 아닌 예고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연락을 드린다.

* 수강생들도 모르는 마당에 왜 굳이.... 그냥 넘어간다.

아무리 스파르타 교수님이신들 잘 가시라는 인사에도 무섭게 대하실까 싶어 용기를 내 봤다.


뭔 말씀을 드려야 되나 걱정이었다. 전공 교수님이라 나를 잘 아시기도 하니 더 어려웠다. 첫 줄을 시작하자 그간의 다분한 정 때문인지, 친구의 말대로 편지의인이라 그런 건지 이어지긴 했다. 기대도 안 한 편지 예에 황당하셨을 S 교수님은 친히 답장도 주셨다.


막막한 마음으로 쓴 편지였지만 도리어 내가 감동받았다. 교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만 적어주셨기 때문이었다. 한국 성함이시나 타국에서 나고 자라셔서 원어민 격으로 와 계신 분이셨다. 수업 공지, 시험 공지 다 외국어로 올리셨고 수업에선 '최대한 전공 언어로만 말하기'가 룰일 정도로 전공 학습에 깐깐하셨다. 괜히 스파르타란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었다. 외국어 공부하라고 그리 닦달하시더니, 답 편지는 한국어로만 써 주신 건 반전 포인트였다. (번역기인 파파고 돌릴 준비하고 있었건만 ㅎ)




절친의 실언은 이후에도 도마 위에 몇 번 올랐다. 지인들은 교수님께 편지를 드리냐면서, 하필이면 스파르타 교수님일 건 뭐냐며 웃었다. 애당초 편지란 게 일상에서 점점 옅어지기도 하거니와, 강의 평가 때 감사 인사는 남겨도, 따로 편지 쓸 생각을 하는 대학생은 손에 꼽으리라 예상해 본다. 나 또한 1학년 때부터 대면 생활을 하며 고딩티를 일찍 벗었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을 테다.


그렇다 한들 형태가 없는 말과 형태로 남는 글은 다를 수밖에 없다. 편지를 나눈 두 교수님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응원을 건네주셨고 그 응원이 대학 생활을 끝맺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 건 지당한 사실이었다. 교수-수강생이란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도 두 교수님은 본받고 싶은 어른이었다. 그런 교수님들을 추억하며 나 또한 부끄럽지 않은 학생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고찰할 수 있었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친구는 이 표정처럼 순수하고도 해맑은 티가 많이 남아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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