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8/11)까지 수강신청 기간이다.
한 달 전 계절학기 종강을 맞으며 총학점을 모두 채웠지만 어김없이 오전 9시부터 수강신청에 임했다. 공석을 확인하고 신청을 누르는 과정이 반복됐다. 혹시 몰라 지난주에 예비수강신청(* 장바구니에 미리 담아두는 개념으로, 수강신청 당일에 '확정' 버튼만 누르면 돼서 수월해짐)도 한지라 강의명부터가 진작 눈에 익고 말았다. 누가 시켜서 한 일 아니고 자발적으로 예상부터 계획까지 세운 건데 속은 답답하기만 하다.
대학 시스템은 이해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이 날 끌어들인 것도 아니고 제 발로 갔으면 대학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스스로 찾고, 알아서 머리를 굴려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스템이다. 숱한 공지사항으로 머리가 지끈할 때면 에브리타임이란 재학생 커뮤니티에 의지할 수 있긴 하다. 사람들은 친절도 하지, 검색하면 동일한 질문글이 나오는데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도 답을 달아준다. 검색 기능으로 학교 사람들의 조언을 쏠쏠히 들으며 학교에 적응해 갔다.
조기졸업을 계획한 건 2학년 2학기였다. 매사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성격이면서 조기졸업만큼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학교를 얼른 벗어나고 싶단 염원만 있었지, 구체적인 계획이랄 게 없었다.
당학기 성적이 우수하면 다음 학기에 3학점을 추가로 들을 수 있다. 이 점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매 학기 학점을 꽉꽉 채워 듣다 보면 남들보다 일찍 대학을 떠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어느덧 고지가 눈앞에 보였을 때 과사무실에 전화를 드렸더니 "3학년은 조기졸업이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공지사항에 <6학기 이상> 들은 자는 신청이 가능하다 적혀 있었건만 잘못 이해한 모양이었다. 신청 시점 기준 <완료된 학기가 6학기 이상>이란 거였다. 즉, 7학기(4학년 1학기)가 돼서야 조기졸업 신청이 가능하단 뜻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한 학기 동안 졸업 논문(* 이 또한 4학년부터 가능이란다)이랑 공모전 준비하며 보내야겠단 생각에 물러섰다.
졸업을 한 학기 미루었더니 이번에는 등록금이 문제다. 0학점이면 등록금도 안 낼 줄 알았던 건 오산 중의 오산이었다. 학점과 상관없이 4학년까지는 전액 납부라 한다. 5학년부터는 신청한 학점에 따라 등록금이 차등 고지되나 정규 학기인 8학기(4학년 2학기) 내엔 얄짤 없어 보인다.
0학점을 들으면 나라에서 주는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 국가장학금은 최소 12학점(보통 4과목)을 들어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전 학기 다닐 때는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서 차라리 등록금 다 내고 학교 안 나갈 거라 호언장담했다. 그 때문에 국가장학금 1차 신청도 남일인 양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9월 개강이 다가오니 등록금이 미치도록 신경 쓰여서 다시 수강신청을 했고, 국장 2차 신청 기간을 기다리고 있다. 2차 신청은 1차를 놓친 학생들을 위해 열리는 거라, 1차 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구제 신청'이란 걸 따로 내야 한다.
아래 세 항목은 국립대인 우리 학교에서 '등록금 감면'을 위해 지급해 주는 장학금이다. 사립대는 등록금 수준이 다르고 단과대마다 금액 차이도 커서 장학 제도 또한 완전 다르리라 본다.
* 우수: 소수과의 경우 한 학년 당 한 사람만 선출, 등록금 전액 면제
* 격려: 학과마다 선출자 수와 금액이 다름, 몇십 만 원 면제
* 복지: 8분위 내 학생에 한해 국장(*나라 지원)을 제한 차액을 학교에서 대신 내줌, 국장을 신청해야 받을 수 있음
즉 1분위에서 8분위까지의 학생들은 성적 경고를 받지 않는 한 등록금을 내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국립대에선 등록금 걱정은 확실히 줄어든다. 다만 등록금을 내지 않고 다니는 나 같은 학생보다 전액 다 내고 다니는 학생들이 더 쉽게 보이는 편이다.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나라와 학교에서 등록금을 내주어 매번 다른 학생들에게 넘어갔다. 이번만큼은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 성적 장학금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21학점을 교양 하나 없이 전공과목 7개로만 채우느라 공부할 내용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래도 매번 대상자였으면서 막상 돈을 내야 하는 학기에만 장학금을 놓친다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할 거 같았다.
끝내 21학점 모두 A+ 을 받았지만 걱정은 덜 수 없다. 4.5 만점에 4.5라 해도 복수 전공 학점을 채우느라 주전공 수업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점수를 받은 동학년이 주전공 수업을 하나라도 들었다면 밀려나게 된다. 이 경우 38만 원 정도만 감면되고 나머지 금액은 납부해야 한다.
이 또한 학과마다 차이가 있는데, 우리 학과는 등록금 납부 기간에 장학 선정 소식을 알려주는 편이다. 고로 긴장을 풀려면 아직 열흘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부모님은 등록금이 얼마든 내주겠다고 이전부터 말해 오셨지만, 학교도 안 나가면서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싶지는 않다. 수업을 들으면 얻어가는 거라도 있지, 0학점인데 내는 건 그 큰 금액을 허공에 날려 버리는 것만 같다. 이틀에 강의를 몰아넣어 주 2회 학교 나갈 경우의 교통비를 합해도 60만 원 정도가 된다. 성적 장학금과 교통비 합한 금액이 등록금과 엇비슷하다면 과감히 나가지 않을 텐데, 100만 원 이상의 차액은 현재의 내겐 지나치게 큰 금액이다.
계절학기 등록금은 학점마다 달리 고지된다. 내 경우 5학점을 들어서 11~12만 원 냈다. 당연 이 또한 사립대보다 훨 저렴한 금액이다. 하나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계절학기 비용마저 아까워진다.
'이럴 거면 계절학기 듣지 말 걸, 8학기 꽉꽉 채우며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 다닐 걸'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내는 비용이 큰 사립대 학생들에게는 배부른 투정으로 보일 수도 있음을 안다. 하나 등록금만을 이유로 국립대를 택한 내게는 지금의 상황이 버거울 따름이다.
학교에서 8학기(4학년 2학기까지) 동안 들으라고 제시한 총학점을 6학기(3학년 2학기까지) 내에 모두 채워 학교에 안 나가도 되는 건데, 등록금은 전액 내라니. 대학은 정말 신기하고도 얄짤 없는 곳이다.
우수 장학금에 뽑히지 못하여 결국 한 학기 더 학교를 다니게 될지라도, 1년 후엔 이 선택이 우습게 여겨졌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겐 짜증 나는 현실이라도 미래의 내게는 별거 아니었던 걱정으로 남으면 좋겠다.
대학은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듭니다. 얼른 졸업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