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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한 나날 속 포근한 사람들

by 밀과참

2021년 봄, 아직 휴학을 하기 전의 일이다.


수강 정정이 가능한 개강 첫 주였다. 수업 편람을 볼 수 있는 수강신청 사이트에 접속하여 둘러보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영화와 문학>이란 교양 수업은 인기 강의여서 두 반(01반, 02반)으로 운영되었고, 두 교수님이 따로 맡으셨다. 그런데 사이트의 오류인지 01반과 02반 담당 교수님의 성함이 동일하게 나와 있었다. 이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 특정 교수님의 성함을 외우고 있었는데, 내가 들었던 교수님 말고 다른 교수님의 성함뿐이었다.


"뭐야?" 불안한 예감이 들며, '에브리타임'이란 재학생 커뮤니티 어플에 교수님 성함을 검색하니 최근에 올라온 글들이 많았다. 다른 대학으로 가시게 되면서 01반도 02반 교수님이 맡으실 예정이라며, 이미 신청한 수강생들에게 사과를 전하는 교수님의 메시지가 공유되어 있었다. 워낙 유명한 교수님(이하 D 교수님)이셨기에 아쉬워하는 재학생들이 많았다. 나 또한 "진짜야? 말도 안 돼...." 좌절을 육성으로 내뱉으며 믿을 수 없어했다.




2학년 1학기가 끝나면 복수 전공을 신청할 수 있었다. 첫 학기에 들은 국어국문학과 교양들이 깊은 잔상을 남겼기에 국문학과 복전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자퇴를 희망하던 와중에 계획이란 게 생긴 건 기막힌 일이었는데, 그 기막힘에는 D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혹여 복전을 못 하게 되더라도 D 교수님 강의만큼은 일반 선택(* 타 학과의 전공 수업을 들을 경우 '교양', '전공' 대신 '일반 선택'으로 이수)으로라도 잡을 생각이었는데, 시작도 전에 기대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무엇보다 아직 비대면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교수님을 실제로 뵙지도 못했다. D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건, 코로나로 우왕좌왕하던 2020년도 봄~여름이라 시험마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었다. 개강부터 종강까지 사이버 공간으로만 뵈었을지언정 <처음 들은 교양 수업>인 만큼 정이 깊이 들었었다. 해당 수업을 들은 지 1년이 넘어가던 때에도 수업 내용을 복기할 수 있을 정도로 얻은 게 많았다. 그래서 인사도 꼭 드리고 싶었다.


공유된 메시지 하단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 달라며 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번 학기 수강생은 아니니 궁금한 건 없었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았다. 이삼일 가까이 울적해 있다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혼자 끄적여 보았다. 교수님을 더 이상 뵙지 못하는 아쉬움이며, 대학이 싫기만 하던 내게 교수님의 수업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어떠한 자세를 지닐 건지 쭉 서술했다. 새벽 감성을 메일에 옮겨 적다 발송 예약을 걸었다. 취소할지 말지 수십 번 고민했다. 하나 <타이밍을 놓친 감사와 사과는 평생의 후회>란 경험에 따라 취소하는 대신 노트북을 끄고 잠에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은 오전을 보냈다. 줌 수업 휴식 시간 동안 휴대폰을 켰더니 세상에나!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보낸 이는 D 교수님이셨다. 장문의 메일을 반복해서 읽으며 덜덜 떨렸다. 내 과제를 기억하신다며, 나를 비롯하여 학생들과의 시간이 어떠했는지 애정이 흘러넘치도록 말씀해 주시곤 개인적인 응원을 담아주셨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내 이름을 여러 번 불러주시며 생일을 미리 축하한다면서 선물도 보내주셨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육성이 재현되었다. 다만 좀 더 크게, "진짜야?!?!? 말도 안 돼!!!"라 외치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쉬는 시간이 끝나면 줌 수업에서 캠 켜야 되는 것도 망각했다. 흘러넘친 눈물에 뜨거워진 얼굴 식히느라 애먹었더랬다.


한창 벚꽃이 흩날리던 봄에 첫 번째 과제가 나왔다. <감독과 작가가 되어보기>란 과제였다. 감독이 되어 영화 속 한 장면인 양 일상을 포착하기, 초단편 소설의 화자를 뒤바꿔 작가가 되어 창작하기 두 가지였다. 전자의 과제에서 한 장면으로 찍은 건 생일 케이크였다. 고등학생 때부턴 생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저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쳤다. 스무 살의 생일, 어김없이 우울한 와중에 친구가 건넨 제작 케이크를 클로즈업한 후, 친구들의 편지 속에서 날뛰는 특정 문장을 대사처럼 자막으로 집어넣었다. 그 과제를 기억하신 것도 모자라 곧 있으면 벚꽃이 개화하니 내 생일이 다가오리란 걸 놓치지 않으신 교수님의 다정함에 눈물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몇 주 후, 내 생일날에 맞춰 교보 문고가 있는 대도시를 방문했다. 책은 늘 인터넷으로만 사서 거대한 대형 서점이 어색했지만 수업에서 언급된 책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오래 머물렀다. 집에 오는 길에는 교수님이 골라주신 케이크도 바꾸려 했는데 우리 동네 지점엔 없고 옆 동네에만 있다고 하여 빙빙 돌아갔다. 밤늦게서야 귀가한 후 가족들과 케이크를 먹는데 순간 '오늘 하루는 울적하지 않았다'는 감상이 마음을 강타했다. 까닭 모를 생일-블루가 올해는 찾아오지 않았다는 데에 다시금 눈물이 나려 했다.


학교가 싫었고 대학이 싫었다. 하나 몇 년째 썩어가던 설움을 달래 준 건, 다름 아닌 학교 안의 사람들임을 떠올렸다. 대학을 향한 미움은 쉬이 떨치지 못하더라도 대학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더 소중히 지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물한 살의 생일은 감동 속에서 저물어갔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수업에서 언급됐던 글들을 찾아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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