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들은 '쌤'이나 'T(티)'란 호칭을 좋아하시나요? 이 글에선 친근감의 표현으로 사용한 건데 요즘 학교에선 또 다를 수 있으니 신경이 쓰이네요. 무시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겠지요? 모든 선생님들께 존경을 보냅니다. ※
초중고 때 좋아한 '쌤'들 다 합치면 우리 과 동기 수만큼은 될 거다. (* 소수과니 너무 적나? 보통 학과라 정정하겠다.) 쌤들을 모조리 사랑한 박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한 달밖에 못 보는 교생쌤, 대신 오셔 잠깐 머물다 떠나시는 쌤들에게도 매달릴 만큼 敎師,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을 향한 마음이 유독 컸다. 또래보다 선생님을 더 좋아한 해도 있었다.
브런치에 교사이신 작가님들이 많으시니 양심에 찔려 굳이 고백하자면.... 모범생은 아니었다. 한 번 졸면 정신을 못 차리는 통에 혼나기 바쁜 수업도 많았다. 특히나 이과계 선생님들, 죄송했습니다....
뭘 여쭤보면 설명이 뚝딱 나오는 순간이 제일 신기했다. 쌤들에게 1:1 설명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질문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공부를 해야 궁금한 것도 생기기에, 찾아가기 전에 학습+알려주신 성의 생각해서 시험 잘 보고 싶은 마음에 추가 복습하여 쏠림 현상도 심했다. 국어가 9n점일 때 수학은 1n점을 찍었다. 수학 시간에는 그리 졸면서 국어쌤에겐 질문 있다고 찾아가니, 교무실 들어갈 때면 수학쌤 뵐 면목이 없었다. 변명이긴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 과목을 다 배우는 학교 시스템은 나와 맞지 않았다!
체육 대회날 쌤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 드리곤 함께 사진 찍은 일(쌤은 교실 안에서만 즐기셨다), 쌤이 우리를 위해 응원 댄스 센터로 나서신 일, 급식실에서 내 이름 부르시며 쌤 식판의 후식도 가져가라 하신 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쌤 나름대로 도와주신 일, 쌤이랑 떠들고 싶어 상담 허락 받아 오면 쓰잘데기 없는 얘기까지 귀 기울여 주신 일 등등 여러 쌤들에게 얻은 추억이 참 많다. 여기까진 고등학생 때의 기억들인데,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닐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11살 때였나, 젊은 영어쌤을 유독 따랐다. 그때만큼은 종례 후에 집 갈 생각 안 하고 쌤 보러 갔다. 쌤이 얼마나 바쁘신 줄 모르고 쌤 앞에서 쫑알쫑알 떠들 만큼 정도를 몰랐다. 나만 이런 것도 아니었다. 초중고 시절 쌤들은 학생에게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렇다 보니 대학 들어가고 초반에는 아쉬움이 강했다. 새내기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교수님 말고 선생님이라 부르는 거라던데, 워낙 주의해 그런 실수조차 저지르지 않을 만큼 교수님은 어려운 대상이었다. SNS에 떠도는 밈들이 겁을 먹는 데 한 몫했다. 선생님이 내 이름 모르시면 섭섭한데 교수님이 내 이름 아시면 큰일 난 거다 등....
이는 1학년 1학기 한정으로 금방 그치긴 했다. 이후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었다. 쌤 좋아하던 애가 어디 가겠는가. 가뜩이나 코로나로 친구도 못 사귀었으니 내적 친밀감이 가장 강한 대상은 비대면이건 대면이건 매일 만나는 교수님들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과 교수님은 차이가 큰 걸 알지만, 어찌 됐든 강의실 안에서만큼은 교수님도 '쌤'이니 맘 가는 대로 존경해 봤다.
대화를 나눠 보면 교수님들도 초중고 선생님들처럼 다정다감하셨다. 강의실에선 칼 같은 교수님들도 교내에서 마주치면 마냥 환하게 웃어주셨다. 소수과라 그런 경향도 있었지만 오히려 교수님이 날 아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더 열심히 했다. 교무실 찾아가던 10대는, 강의실에 남거나 수업 끝나고 메일을 보내는 20대가 되었다. 교수님은 사소한 궁금증도 다 받아주시며, 답변도 청산유수처럼 하셨다. 간혹 기습 공격까지 던지시는 교수님들도 계셨다.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시려는 목적으로 내게도 질문을 하셔서 궁금한 거 풀렸다고 긴장까지 놓을 순 없었다.
선생님들과의 관계처럼 굴어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교수님들이랑 가까워지고 싶었던 건 <학교 안에서만 맺어지는 관계>라 그랬던 듯싶다. 내 형편이 어떻고, 가정이 어떻고, 상황이 어떻고, 하는 얘기들이 나올 일이 없었다. '쌤'들과는 일상 얘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교수님들과의 대화는 딱 학교 한정이었다. 학과며 학습에 대해서만 말하니 교수님 앞에서 난 결점 많은 이가 아니라 미래가 창창한 대학생일 수 있었다. (교육자들은 다 그러신 건지 학교 다닐 때 '쌤'들도 내 상황과 무관하게 미래를 마냥 좋게 봐주셨다.)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의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좋았다.
대학 와서 별의별 칭찬을 다 들었다. 여기서도 차이가 있다. '쌤'들은 공부나 발표, 수행평가를 열심히 하면 아낌없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교수님들은 칭찬보다는 평가를 하셨다. "자네는 ~한 게 강점이니, ~하게 될 수 있을 거네" "~에 흥미를 느낀다면 ~도 고려해 보는 게 어떠니?"라며 자연스럽게 미래까지 연결 지어 봐주셨다. 이렇게 서술하니 모범생인 것만 같아 또다시 양심에 찔린다. 중고등학교에서 졸던 10대는 대학에서도 조는 20대가 되었다. 졸다 깼을 때 교수님이랑 눈이 마주쳐 멋쩍게 웃으면 "웃지 마, 정들어!"라며 농담을 던진 교수님도 계셨다. 예시로 언급한 세 교수님들은 차례대로 20-21, 22, 23년도 '최애' 교수님들이셨다.
최애 교수님의 존재는 소수과 한정 같아 보이긴 한다. 전공 수업에서 만난 이들과 밥 먹거나 카페 갈 때면 최애 교수님이 누구냐는 질문이 종종 나왔다. 이것도 끼리끼리 법칙이 통한 건지 모르겠는데, 지인들 모두 '가르치는 이'에게 기본적으로 애정 어린 존경을 깔고 있었다. 대화에서 교수님들이 언급되는 비중은 꽤나 컸다.
대형과건 소수과건 친구들이 경악한 일화가 있다. 2학년 때는 교수님들께 메일로 편지도 보내봤다. 공부 안 해서 죄송하다며 시험지에 답 대신 적는 사죄의 편지 말고, 마음이 담긴 편지였다. 물론 '쌰바쌰바'가 될 수 있으니 학교를 떠난 두 교수님 한정해서만 썼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스승의 날 때. 선생님께 밥 얻어먹은 염치 없는 제자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