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는 코로나 강타로 개강까지 밀렸다. 2년 동안 대면의 목소리가 커져가며 2022년엔 비대면-대면 반반(* 교수님들 선택 사항)으로 전환됐다. 대면 생활이 드디어 시작되는 거였다. 학교별, 학과별로 차이가 있어서 2021년에 학교를 나가는 친구도 있긴 했다. 내 경우 수업마다 달랐는데 본격적으로 대면 생활이 시작된 2022년 상반기엔 세 수업은 대면 전환, 한 수업은 대면과 비대면 반복, 나머지 교양 수업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네 수업 듣기 위해 학교 나가는 게 얼마나 '꿀'인지 이때는 알지 못했다.
첫 등교하던 날은 내 마음을 반영이라도 하는 건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대학가에서 친구들을 몇 번 만난 적 있기에 터미널 가는 법이야 익숙해졌지만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타지 가는 건 처음이었다. 친구들 만날 때는 시외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도 여유만만이었건만 '출근 시간대 도로 정체' 또한 처음 겪으며 원래도 없던 여유 자리엔 불안만이 채워졌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내렸는데 시내버스 타는 곳도 헷갈려서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말았다. 이전 수업에 무단결석을 한 터라 더 떨 수밖에 없었다.
<ㅇㅇ의 기초>란 수업은 오리엔테이션만 줌(* 실시간 수업)으로 하고 이후 2주 반 정도 녹화 영상으로 진행됐다. 0시인 자정부터 시청 가능하게 해주시는 교수님이 계시는가 하면, 다음 날 아침에 보도록 하시는 교수님도 계셨는데 이 교수님은 후자셨다. 고로 이 수업부터 듣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2주간의 내 루틴이었다. 수업 시간 이전에 딱딱 올려주시기에 일어나자마자 들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날엔 수업 시작인 9시가 넘도록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
'교수님 바쁘신가....' 하고 기다리다가 왠지 모를 서늘함이 온몸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OT 때 대면 전환이 언제부터라 하셨지...?' 당장 에타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역시나 '오늘부터 대면'이 맞았다. 이미 시간은 9시가 넘어간 데다 학교까진 2시간 거리니 당장 튀어나간들 승산이 없었다. "<ㅇㅇ의 기초> 지금 수업 중인가요?" 질문글을 올리자, "2XX 강의실이요? 네."라는 확인 사살까지 받고 나서 한숨만 나왔다.
쫄 일이 아니었다, 22살의 나여! 한두 번의 결석은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는 걸 당시엔 알지 못했고, <ㅇㅇ의 기초>가 타 학과 전공인 게 불안을 증폭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교양은 아는 사람이 없어도 듣는 이가 많으니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소규모 수업, 그것도 타 학과 전공 수업에서 '정보 공유'를 바랄 순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눈물 날 뻔한 첫 등굣길. 간신히 시내버스에 올라타 걸음을 서두르며 인문대에 들어갔다. 쭈뼛쭈뼛 강의실에 들어가려는데 강의실 안에는 한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강의실 앞을 서성이다가 어떤 여학생 분이 문을 열려하기에 물어봤다. "<ㅇㅇ의 기초> 수업 맞나요?" 맞다는 대답을 받고 맨 뒷자리에 앉은 두 분을 피해,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슬그머니 착석했다. 여학생 분이 다가와 "지난 수업 때 안 오셨죠?"라며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나 희망을 품었으나 "교재 받아 가세요"라 하여, "네...." 하며 일어섰다. 모르는 분께 입금까지 마치고 나서, 정적 속에 '집 가고 싶다'는 생각만 반복하던 중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교수님도 오셨다.
출석 이후엔 곧장 수업이 시작되는 줄 알았으나 뒤에서부터 과제를 걷어오라 하셨다. 무단 결석한 지난 수업에 과제가 나간 모양이었다. 나 말고도 대면 전환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교재가 분명 많이 쌓여 있었건만, 과제까지 있었다니. 이쯤 되니 공지 안 해주신 교수님이 너무나 야박하게 느껴졌고 수업 듣고 있었으면서 과제의 존재는 말 안 해 준 익명 2님도 괜스레 미웠다.
"교수님.... 제가 지난 시간에 수업을 못 나와서 그런데 다음 시간까지 제출해도 될까요?"
과제도 모르는 주제에 나대고 봤다. 다행히 과제 공지를 재차 해 주신 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몇 쪽 피라 하셔서 새 책을 딱 펼쳤더니,
如切如磋 如琢如磨
이 문장이 맨 윗줄에 나왔다. 맞다. 겁도 없이 '한문학과' 전공 수업에 도전한 거였다. 수강신청 실패한 이유 70%, 이 기회에 한자의 벽이나 넘어보자는 포부 30%로 인한 선택이었다. 강의명에 기초가 들어간 데다 1학년 대상 '전공 기초' 수업이기에 기초+기초 쌍기초에 희망을 품었다. 지난주까지 한자 형성 원리를 배워 들을 만했건만 급 이런 문장이 주어지다니, 지난 시간에 도대체 진도를 얼마나 나갔기에.... 다시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렇다고 넋 놓고 앉아 있을 순 없으니 교수님의 말씀을 다! 다! 받아 적었다.
한자 잘알 분들은 '절차탁마'라는 고사임을 바로 파악하시겠지만, 수업을 듣던 2022년 3월 내가 아는 한자라고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저 문장에선 자르다는 뜻의 切만 알았다. 다음 시간, 다다음 시간, 중간고사 때까지 배운 내용들은 이처럼 죄 한자로 이루어진 한문 문장이었다. 저 8글자가 첫 문장이니만큼 난이도 最下 수준이었다.
과제는 100개의 한자를 두 번씩 써오기였다. 100개 중 20개를 뽑아 쪽지시험을 볼 거라고도 하셨다. 100개의 한자가 고스란히 적힌 유인물을 가방 속에 고이 넣으며 '망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 수업이 가장 먼저 대면 스타트를 끊은 터라, 다른 수업은 아직 실시간 줌이었다. 줌 들을 장소를 찾아 이동하며 '대면 생활이 시작되니 쪽지 시험도 볼 수 있구나' 쓸데없는 깨달음이 들었다.
대면 악몽에 시동이 걸리고 있었다. 수업 철회가 가능한 기간이라 지인들은 꼴찌 하기 전에 얼른 탈주하라 난리였다. 처음의 포부를 접고 싶진 않았다. 다른 글에서도 서술한 바, 조기졸업을 목전에 두었으니 3학점도 귀하디 귀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만류에도 주말 포함 5일 간 100개의 한자를 죽어라 외우며 수업에 나가 교수님 말씀을 다 받아 적었다. 아는 건 한자 몇 개뿐이니 '한자' 말고 '한문' 수업은 다른 나라 말 같았다.
최종적으로 성적이 어땠는가 하면... 우문현답을 내밀겠다.
<한문의 기초>란 수업을 들은 건 대학 생활 중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참고로 윗 문장의 전문은 이러하다. <<논어>>의 1편인 <학이편> 15장의 대화이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하다. (다만) 가난하면서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즐기는 자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서 이르길, 끊어내듯 하고, 갈 듯이 하고, 다듬듯이 하고, (다시) 갈 듯이 하라는 게 이것을 말하는 것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 자공이란 제자의 이름)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걸 말했더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
란 내용이다. '절차탁마'란 돌이 옥이 되게끔 다듬는 과정을 말하는 걸로, 학문의 과정 또한 이처럼 꾸준히 해내야 함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다른 편은 몰라도 '학이(學而)편'만큼은 學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주석을 보지 않더라도 이해하기 쉽다. 한 번쯤 읽어보시면 도움이 크리라 본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루틴이던 공원 운동과도 안녕.... 대면을 기점삼아 체중이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