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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날에 맞춰 미리 쓰는 끝맺음

브런치 떠난다는 얘기 아닙니다!

by 밀과참

내야 할 비용이 아까워 이수 학점이 다 채워졌음에도 수강 신청을 하였다. 막상 담기 시작하니 욕심이 생겼는지 여러 과목을 신청했다가 주춤거렸다. 처음으로 <들어야 하는 강의> 말고 <듣고 싶은 강의>로만 시간표를 완성했더니 양심이 찔렸다. 국가장학금을 받으려면 12학점만 들어도 무방했다. 하필 다 인기 있는 강의라 누군가의 우연한 기쁨을 위해 수업을 네 개(12학점)만 남겨놓고 하나씩 놓아주었다. 일주일 있다가 전액 등록금을 받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낼 돈은 없다는, 국가 장학금을 신청 안 해도 된다는 희소식이었다.


9월 1일, 하반기 개강날에 맞춰 수강 신청 시스템은 다시 열린다. 정정 기간을 비롯해 철회 기간도 있어 시간은 넉넉하나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나머지 수업 네 개를 모두 취소하였다. 어제는 한 교수님께 공지 문자가 왔다. 화/금 수업인데 9월 1일 금요일 말고, 다음 주 화요일에 오리엔테이션을 하겠다는 알림이었다. 수강생들의 안부를 묻고, 강의실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는 내용에 마음이 잠시 동하였다. 어찌 됐든 내가 붙잡고 있는 나머지 네 수업도 인기 강의였으며 두 과목은 인기 학과의 전공 수업이었다. 이수 학점 다 채운 타과생의 마지막 남은 욕심이기도 했다. 하나씩 '삭제' 버튼을 누르면서 학점을 다시 0으로 돌렸다.


졸업 요건은 하나 빼고 다 이루었다. 얼마 안 있어 논문과 관련된 공지가 뜰 것이다. 계획-상담-작성-심사 일정에 맞춰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 된다. 시간이 많으니 더 알찬 내용을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된다. 시간은 금방 흐를 것이고 2월이 찾아오면 드디어 학교를 떠날 수 있다. 그때까지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불안을 접는 거다. 어차피 버릴 테니 예쁘게 접을 필요는 없는데, 불안이 너무 커서 그런지 귀퉁이 접는 것도 아직은 힘들다.


2주 동안 연재가 정체된 건 수강 신청이며 등록금과는 별 상관이 없다. 소설이 아닌 수필에는 진실을 담아야 하는데 차마 거론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이 있어서다. 대학 잘 보내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내 고등학교와 문을 두드리고 싶지 않았던 주전공. 두 존재를 감추려다가 글이 막혀 버렸다. 무사히 졸업만 한다면 내 뒤를 계속해서 따라올 요소들이니 글에서만큼은 거론하고 싶지 않아 졌다. 나의 무력감이 깃들어 있어 다른 요소를 앞세우고 싶어졌다. 대신, 전공과는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싶어서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점검해 보고 있다. 여태껏 무용했지만 언젠가 유용해질 수 있으니 파헤쳐 보련다.


<대학이 뭐길래>는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던 자로서 쓰고 싶었던 이야기다. 대단한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니고 대학을 스펙으로만 여기고 싶지 않아 구구절절한 사설을 남기려 하였다. 어찌 됐든 대학과 전공을 빼놓고도 내 유용이 증명될 수 있다면 그때 제대로 연재해 보고자 한다. 나와의 약속을 끝맺음으로 남기고, 제대로 된 끝맺음에서는 유용해진 이의 브이(V)를 내밀어 보고 싶다.


학교는 안 나가도 공부는 할 것이다. 나를 둘러싼 인간 공부든, 내가 몸 담아야 하는 사회 공부든, 끝이 없는 우리나라 공부든.


[이 주제는 언제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걸 좋아합니다. 우리나라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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