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과참 Aug 23. 2023

독립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

집 없는 자의 설움

  내게는 '우리 집'인 공간이 엄마에게는 '나의 집'이다. 엄마가 "여기는 내 집이야"라고 말할 때마다 딱히 부정하는 이는 없으며 나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엄마 힘으로 일구어 냈고 엄마 덕에 편히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거니까 부정보다는 감사함이 더 크다.


  우리 가족 구성원은 사람 넷에 강아지 하나인데 집은 세 군데로 나뉘어 있다. 누가 보면 부동산 부자라 오해할 법한 발언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단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다. 아빠는 경기도 평택에 직장을 구해 회사에서 마련해 준 집이 있다. 언니는 서울로 상경하여 대학 근처에 방을 얻었다. "이 작은 면적이 우리 집보다 비싸"라며 어이없어 하기 일쑤지만 언니는 그 면적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아빠에게는 월화수목금 5일 동안 머무는 집이 있다. 언니에게도 아무리 작을지언정 살림살이는 욱여넣을 수 있는 집이 있다. 아빠와 언니의 집은 엄마의 집과 달리 자가, 자기 소유는 아니다. 하나 집주인과 세입자의 구분은 있더라도 숙식을 해결하고 있으니 내게는 두 공간이 '아빠의 집', '언니의 집'으로 비추어진다. 멍멍이도 나와 함께 엄마 집에 머물고 있지만, '멍멍이만의 (* 통상 개집)'이 한 군데 있다. 나만이 '나의 집'이 없다는 소리다.




  교환 학생을 안 가겠다고 했을 때 전공 교수님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돈 때문에 그러느냐"는 물음에 "모아둔 돈은 있지만 독립 비용으로 써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저금한 돈으로 교환 학생을 간다면 유학생 앞에 붙는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는 떼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떤 돈인데.... 1년 동안 넉넉한 유학생으로 살 바에는 적당히 부족한 취준생으로 지내고 싶었다. 교수님은 먼 미래를 내다 보라며, 가슴을 치시면서 답답해하셨다. 그런 교수님 앞에서 싱글 생글 웃기만 했다. "싫습니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 법이란 비유를 여기에 써도 될지 모르겠으나 웃으면서 잘 넘어갔다.


  부동산 어플에 들어가 방 구경하는 게 취미인 언니와 달리 나는 부동산과 가까워질 생각이 추호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대입을 준비하던 열아홉 살, 대학만 졸업하면 엄마의 집을 떠나게 될 줄 알았다. 회사가 많은 서울이든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 있는 타지든 내 몸 눕힐 수 있는 방 한 칸은 구하리라 예상했다.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온 현재, 나는 '독립'이란 계획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멍멍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때까지는 이곳에 있겠다"라말을 일삼 있다. 멍멍이는 슬슬 노견 축에 들며 날이 갈수록 아픈 데가 생기다 보니 엄마가 품에 끼고 있을 거라 한다. 병원이 근처이기도 하거니와 퇴근 시간이 이른 데다 주말 출근이 없는 엄마가 사회초년생이 될 나보다는 강아지 보호자로 적합하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엄마도 나도, 내 곁에 멍멍이란 존재가 없다면 '당장은' 살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엄마는 나의 <캥거루족 연장 선언>에 승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이것 말고도 이유많다. 작년에 가족 간의 갈등이 극에 치달 때는 엄마 집뛰쳐나오고 싶었다. 자격을 얻기 위해 연수 받고, 기숙사가 있는 회사에 이력서도 냈다. 졸업 학점 채우기 한참 전이었지만 당시 내게는 학교 졸업보다도 가족 탈출이 더 우위인 안건이었다. 엄마는 내 도전을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나를 혼자 살게 했다가 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엄마의 눈에 는 15살 때건 22살 때건 똑같이 '불안정한 자식'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불안정했고 불안정하다. 과거든 현재든 원인은 가족이며 가족들도 이를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집안의 둘째인 나만큼은 함부로 대하려 하지 않는다. 구 막내(* 현 막내는 멍멍이)의 유년 시절을 망친 데에 모두가 연대 책임과 죄책 다소 느끼고 있어서다.




  돈이 있으면서도 독립을 서두르지 않는 통장 잔고를 채워나갈 능력도, 능력을 얻기 위한 의지도 없어서다. 아빠처럼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도, 언니처럼 성공하겠다는 포부도, 엄마처럼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겠다는 의지도 내게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은커녕 내일도 딱히 기대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


  다른 이들처럼 지를 키우고, 포부를 세우고, 욕심을 내고자 애쓰고 있다.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는다. 다만 내게는 노력의 공간이 집안일뿐이다. 10대 때와 달리 20대의 계획에는 그게 어떤 이든 돈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별 수 없다.


  런데도 엄마가 내게 독립하란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눈치 보지 말고 집안에 있으라더니,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폭탄 발언을 들었다. 멍멍이 데려가도 되니까 엄마 품을 떠나란다. "너도 이제 독립할 나이지"라는 표면상의 이유를 내세웠으나 이게 첫 번째 이유가 아님을 우리 다 알고 있다. 이곳은 '우리 집'이 아니라 '엄마의 집'이기에 반론 거리는 없다. 말문이 턱 막혔다. 치사하다! 엄마는 날 무력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 수단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만 이런 것도 아니다. 언니는 언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가족에게 점점 질려가나 보다. 이 같은 가족 와해 위기에서 가족 사랑 매거진을 쓰고 있는 건 분명 의미 있는 행위일 터이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 20대 나부랭이는 가족마저 없고 싶진 않다. 비록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랑한다고 외치는 수뿐이지만. 내 말을 의심하는 가족들 앞에서 고집을 굽히지 않기란 그 어떤 일보다 피로감을 느끼기에 다분하다. 다만 집도 없고, 돈도 없으니 이거라도 하겠다. 구막내랑 현막내에겐 가족이 필요하니 우리가 참을게요.


멍멍이 최애 장난감
매거진의 이전글 애증과 애정, 그 분기점엔 강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