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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28. 2023

얘기를 나눌 때면 눈을 바라볼 수 있어서

[ㅒ] 얘기
모든 게 다른 이들과도
눈 맞춤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


波 선생님! 웃기지요? 선생님의 멋들어진 성을 밝히는 대신 성의 앞글자만 따서 이리 칭해 봤어요. 波는 물결이란 뜻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인종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데다, 성별이며 나이대마저 다 달랐지만 선생님의 존재는 때로는 거센 파도(波濤)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잔잔한 파동(波動)을 일으켰답니다. 전 영어를 여전히 못해요. 그래도 선생님을 잊을 일은 없으니 선생님의 모국어를 언젠가 익혀 보겠어요. I miss you.


  대학 강의가 대면으로 전환됐어도 마스크 해제는 나지 않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50분을 내리 졸다가 쉬는 시간이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스크가 표정을 가려주니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강의실 밖으로 나가 바깥공기를 쐬었다. '남은 1시간은 제발 졸지 말자....' 다짐하며 도로 들어가려는데 한 외국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Can you speak English?"라는 확인도 없이 다급하게 말을 쏟아내는 눈망울을 바라보며 미치는 줄 알았다. 대학 내에서 길을 찾는 눈치였는데 목적지가 어딘지도 알아듣지 못했고 내 쉬는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쏘↗리,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라 내뱉곤, 내 허접한 발음에 내가 충격을 받았다. 차라리 마스크라도 안 썼으면 진심을 담아 미안한 표정이라도 비출 수 있었을 텐데. 괜찮다며 가는 외국인에게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충격과 부끄러움의 여파로 입이 꽉 다물어진 거였다.


  이 일을 겪고 나서 "한국 대학생으로서의 심이 있지! 이 같은 경험은 두 번 다시 없을 테다"란 마음 가짐으로 종강 이후 몇 주 간 영단어를 외우기는 했다. 개강하자 전공 공부로 시선을 돌리며 "영어는 조만간...."이라는 지긋지긋하고도 구차한 변명을 내세워 버렸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날부로 외국인이 영어로 뭔가를 물어본 적은 여태껏 없었다는 거다. '여태껏'이 '영원히'가 될 순 없음을 알고 있다. 영어 공부.... 해야겠지. 해야 된다.




  등 시절 매일 나가던 영어 학원을 관영어는 꾸준히 못하게 됐다. 다만 멋쩍은 실력을 뒤로하고 철면피를 내세운 덕에 영어 선생님들과는 친한 편이었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는 탄식이 나올 지경으로 성적이 떨어졌는데 이상하게도, 정말 신기하게도 영어 선생님들께선 날 좋아하셨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특히나 2학년 때 오신 원어민 선생님은 날 복도에서 마주쳤다 하면 전폭적인 응원을 해 주셨다. 당시 수행평가로 <연설 흉내내기>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연설을 찾아 친구들과 선생님들(* 원어민 선생님, 한국인 선생님) 앞에서 따라 하면 됐다. 영어로는 자기소개도 못하면서, 대본 없이 연설을 매끄럽게 선보인 악바리가 통했던 모양이다. 연설이 끝나면 선생님들의 영어 질문에 답까지 해야 됐는데 이때는 어.... 어버.. 버 하였다. '아잇, 다 외우면 뭐 하나. 점수 왕창 깎이겠네' 싶은 걱정이 무색하게 고득점을 받으며 편애까지 얻었다. 연설 외우는 데 쏟은 시간으로 사랑을 샀다고 볼 수 있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원어민 선생님들은 해마다 한 분씩 계셨다. 波 선생님은 내 나이 16살 때 우리 학교에 오신 분으로 한국어도 유창하셨다. 한국인 아내와의 슬하에 두 아이가 있다며 자랑스럽게 사진을 보여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학생들은 波 선생님의 존재보다도 아내분과 자제들의 사랑스러움에 환호를 던졌다. 나는 그 무리에 섞인 한 사람에 불과했지만 [ㅐ] 편에서 소개한 株로 인해 좀 더 사적인 기억을 쌓게 됐다. 株는  선생님과방과 후 수업에 날 등록시켰다. 문제는, 영어 잘하는 株는 학생회 회의에 예고 준비로 바빠서 영어 못하는 나 혼자 수업에 들어갈 날이 잦았다는 거다. 선생님도 꽤나 답답하셨는지 나와 97 한국어 3 영어 비율로 대화를 나눠주신 덕에 겁먹기보단 빵끗빵끗 웃을 수 있었다.




  '멍멍이'란 단어를 좋아하게 된 것도 波 선생님 덕분이다. 무심코 "멍멍이가~" 했더니, 波 선생님은 깔깔 웃으시면서 "칠칠이! 멍멍이가 뭐야~"라 하셨다. 뭐가 그리 재밌으신 건지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멍멍이는 아기들이 쓰는 말이야. 칠칠이는 아기가 아니잖아"라고 답하셨다. 이때도 선생님의 한국어 실력에 감탄하기 바빴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진 않았다. 사전에 '멍멍이'를 검색하면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나오는 걸 보면 선생님의 한국어 공부는 정확했지만 나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화자 아닌가! 이후로 일상생활에서 '멍멍이'란 말이 언제 나오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어른들은 몰라도 내 또래는 자주 쓰는 걸 확인한 후 맘 놓고 쓰게 됐다. 이런 순간이 없었다면 '강아지'나 '멍멍이'나 별 신경 안 쓰고 입에 올렸을 텐데, 波 선생님의 시원한 웃음에 '멍멍이'란 단어가 '강아지'보다 훨씬 좋아지고 말았다.


  17살의 어느 날, 사촌 언니와 길을 걷던 중 뜻밖의 동네에서 波 선생님을 마주쳤다. 波 선생님은 장난을 걸며 내게 다가오셨다. 나는 波 선생님인 걸 알아차리고 반가움에 팔짝 뛰려는데, 사촌 언니가 내 팔을 끌어당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외국인이 뭘 묻는 것도 아니고 깔깔 웃으며 다가오니 경계하게 됐단다. 서운하게도 波 선생님은 영어로 말을 거셨다. 나는 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말만 간신히 마친 후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이날을 한동안 곱씹게 됐다. 波 선생님은 자제들과 있었고 나도 일행이 있으니 오래 대화를 나눌 순 없었지만 <'멍멍이'에 대한 고찰 결과>는 들려 드렸어야 했는데!


  막판에는 방과 후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았다. 나와 株 말고는 후배들만 있었고 株 없이, 혼자 쭈뼛쭈뼛 들어가 후배들과 달리 한국어로만 말하는 게 어느 순간 부끄러워졌다. 波 선생님이야 내 속내를 모르시니 방과 후 수업에 왜 안 오느냐면서 속상함을 드러내신 적도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죄송하다. 방과 후 수업은 국영수 같은 과목들처럼 정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었다. 波 선생님이 혼자 기획하시곤 개인적으로 신청 받으신 걸로 기억한다. 그 때문에 학생 수가 적음에도 굴러갔고 당연 수업료도 내지 않았다.


  모교인 중학교는 학습 분위기가 썩 좋은 학교는 아니었다. 波 선생님은 우리 중학교에 계시기엔 너무 뛰어난 원어민 선생님이 아니셨을까 싶다. 波 선생님의 열정에 따라가지 못한 한 사람으로서, 생님의 피로에 1인분 이상 영향을 끼친 거 같아 감사한 마음만큼 죄송한 마음크다. 波 선생님 덕에 외국인이 더는 낯설게 다가오지 않게 됐으니, 보답할 길은 어째 영어 학습뿐이려나. 波 선생님이 내게 어떤 말로 장난을 거셨는지, 이것 말고도 우리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어색한 영어와 선생님의 유창한 한국어가 섞이던 순간마다 내 시야 꽂힌 선생님의 눈은 아주 잘 기억한다. 장난기와 따스함이 고루 어린 눈망울에 내 낯가림이며 경계심도 사르륵 무너졌으리라. 波 선생님의 멋들어진 이름이 한국에 널리 알려져야 할 텐데. Thank you for (...).


波 선생님 도움으로 만든 잭 오 랜턴. 핼러윈이 다가올 때면 波 선생님 생각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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