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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29. 2023

어린이들아, 너네는 최고야

[ㅓ] 어린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깜찍함을 지닌 대상


童童이들아, 고등학교 생활은 잘 보내고 있니. 지금도 환상의 단짝으로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너네의 깜찍함에 풍덩 빠지느라 헤엄쳐 나오는 데 애먹은 거 있지. 그 깜찍함의 깊이는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어. 그러니 부모님들께서 걱정도 많으셨겠지. 너네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어도 그때는 나도 '어린이' 범주에 속한지라 알지 못했어. 너네의 눈에 나는 선배보단 동네 친구로 다가왔겠지만 어른들의 시선은 달랐을 거야. 우정을 이틀밖에 나누지 못한 데에 친구로서 사과할게.


  반년의 휴학기 동안, 공원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공원은 빌라와 주택이 섞인 골목에 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몇 달 전 새로 단장하면서 이용하는 주민이 늘었으나 2년 전에는 홀로 1시간 넘게 독점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원은 내가 유치원생일 적부터 22살 때까지 변함없는 구조로 매해 늙어가기 바빴다. "어후...."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안쓰러운 행색이었다.


  나야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는 20대가 됐으니 운동 기구만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하나 어린이들은 삐걱삐걱 소리 나는 운동 기구에도 흥미를 보였지만 그보다는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맞은 놀이기구를 타기 바빴다. 현재는 놀이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으나 불과 1년 전까지 '어린이들아, 여긴 지지니 다른 데 가서 놀렴' 싶은 생각이 들게끔 놀만 한 게 없었다. 이리 말해도 나도 초등학생 시절에는 이 공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으니.... 어린이들에겐 뛰 놀 수만 있으면 되는 듯싶다.


  휴학생과 백수에게 평일의 구분은 모호할지라도 주말은 그렇지 않다. 가족들이 옆에 있어서다. 주말은 좀 쉬고 싶은데 눈을 뜨면 엄마의 타박을 들으며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과 달리 주말엔 아침부터 어린이들이 있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소리 지르고 까르륵 웃는 그들은 옷차림도 알록달록했다. 머리 안 감아서 검은 모자 눌러쓰고, 잠옷 가리느라 검정 바람막이를 걸친 내 패션과 특히나 대조됐다. 내가 수상쩍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만 어린이들은 내색 않고 잘 놀았다. 여럿이 있을 때면 나를 피해 갔는데, 혼자나 둘 정도 있을 때는 내게 말도 걸어줬다. 이 사랑둥이들, 그러면 안 돼.




  위로 언니가 있으니 집안에서는 만만한 동생 취급을 당했다. 원체 낯가리고 소심한 탓에 또래 친구들도 내게는 어려웠다. 연하, 동갑, 연상 중 연하가 제일 편했다는 뜻이다. 동네 유치원생들과 단짝인 적도 있었다. "엉니~" "누낭~" 하면서 다가오는 <나보다 더 어린이>들은, "깜찍함은 너네를 위해 있는 단어다!" 싶은 감탄이 들게 하였다. 그러다 13살, 초등학교 최고참이 돼서야 반 애들과도 편한 단계에 진입했다. 사실 활달한 무리에 간택당하면서 '소심함'을 '과묵함'으로 포장한 것도 있었다. 하루 저녁 시간이 코앞인데 딱 봐도 1학년이나 2학년일 거 같은 <나보다 더 어린이>인 두 꼬마가 운동장을 뽈뽈 누비고 있었다. 이하 童童이들이라 칭하겠다. 옆에 있던 친구는 깜찍함에 나보다 더 환장해서 童童이들에게 다가갔다. 童童이들은 키 큰 선배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같이 놀자고 했다. 정작 말 건 친구는 일이 있어 집에 돌아가는 바람에, 엉겁결에 나와 童童이들만 남게 되었다.


  무얼 할 거냐는 내 물음에 이제 '과자 파티'를 하러 간다고 했다. "그럼 친구들이랑 놀아야겠네? 내가 어떻게 껴~" 했더니, 童童이들은 남자 童이와, 여자 童이 자기 둘 뿐이라 괜찮다고 하였다. 초대장 만든 것도 자랑하기에, 나한테도 초대장을 주면 가겠다고 했더니 자랑하던 초대장을 흔쾌히 내밀었다. "이래서 둘이 단짝이구먼" 싶게 만드는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다. 그렇게 같이 과자를 산 후에 파티를 가졌다. 과자를 먹다 말고 잠시 기다리라 하곤 편도 10분 거리의 우리 집까지 뛰어갔다. '먹튀'한 게 아니라 童童이들이 스티커를 좋아한다고 해서였다. 문구점 죽순이던 나는 스티커를 쓰기 위해 산다기보다는 수집하려고 샀다. 몇 년 동안 모은 스티커북을 내밀자 童童이들은 내게 반하기라도 했는지 아예 등하교를 같이 하자고 했다. 다음 날은 방학식인 탓에 실질적인 등하교는 하루에 그쳤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날 저녁 8시까지 童童이들과 놀았다. 童童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童童이들에게 말 건 건 내가 아니었지만 <나보다 더 어린이>는 내게 어려운 대상이 아니었기에 나도 잘 섞였다. 우리 셋 다 헤어지기 아쉬워했다. 우리가 논 곳은 여자 童이네였으며 집을 나설 때까지도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다. 환상의 콤비는 부모님들끼리 아시는 사이라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어찌 보면 집주인에게 허락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童童이들에게 어머니들의 연락처를 받고 "이런 일이 생겨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童童이들이 등교를 같이 하자는데 괜찮으시냐"라고 문자를 남겼다. 부모님들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모르겠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童童이들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나를 기다릴 텐데, 어찌 됐든 부모님의 허락은 못 받으니.... 童童이들의 부모님들은 이제 곧 졸업인 6학년이 1학년 생들과 놀았다는 데서 미심쩍은 오해를 하신 걸 수도 있겠다. 그때는 그런 이해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답장을 왜 안 주시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어른들의 마음보다는 童童이들의 마음이 더 중요한지라 결국 이 등교는 했다. "부모님께서 뭐라셔?"라고 물은 건 확실한데 童童이들의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다. 고민 끝에 童童이들과의 과자파티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여기고 이전처럼 둘만 놀게 놔두려 했다. 어차피 오늘은 방학식이고 1학년 생들은 다른 건물에서 생활하니 마주칠 일도 없었다. 방학식이 끝나곤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1학년 생 건물에 들어갔다. 童童이들이 아직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그런데 이 깜찍童童이들은 신발장에서 말똥한 눈으로 서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게는 휴대폰이 있었지만 童童이들에게는 휴대폰이 없었다. 방학 때도 놀자는 童童이들에게 "연락은 어쩌게?"라 물었고, 童童이들도 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며 자연스레 헤어질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진학하여 조금 있으면 학생 탈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童童이들은 아직 고등학생일 테다. 그때는 같은 <초등학생>에 속했지만 확실히 童童이들과의 나이 차이는 무시 못다. 나도 이런데 童童이들의 부모님들께 얼마나 크게 다가오셨을지, 나였어도 상급생의 문자에 반가워할 수는 없었으리라. 이전에 만난 童, 이후에 만난 童, 공원을 비롯한 오만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童들. 어떤 童이건, 어린이들은 죄다 깜찍함을 흘리고 다닌다. 그 깜찍함에 나처럼 열광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깜찍함을 이용하려는, 소각(燒却)이 시급한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미성년자끼리의 범죄도 그치지 않는 사회 아닌가. 깜찍함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조심하고 봐야 한다. 여전히 10대인 童童이들아, 알겠지? 나와 있었던 일은 잊고 사람들을 조심해야 된다!


童童이들! 너네 웃음이 딱 이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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