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 사진, 그리고 아빠의 직업
두서없는 아빠 이야기 (1)
아빠는 웃음이 많다. 윙크도 잦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인물들이 서로 눈빛으로만 소통해야 할 때 건네는 그런 무언의 윙크 말이다. 아빠는 툭하면 윙크를 날려댔다. 보통은 엄마가 화났을 때, 때로는 엄마 몰래 용돈을 주고자 할 때 아빠 멋대로 윙크하였다. 근래는 자주 보진 못한다. 이제는 아빠를 향한 엄마의 화가 줄었고, 내 용돈 문제는 두 분이 협상했기에 감출 필요가 없어서다. 아빠의 윙크는 '윙크'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나온 거 같지도 않다. 어떤 말로 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생네컷 찍을 때 "이번에는 윙크하자" 말하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렇다고 타박할 수도 없는 게 내 윙크는 더 못났다. "윙크를 왜 이렇게 못해?" 혹은 "윙크 안 같은데" 소리를 친구들에게 듣는다. 그리하여 내가 아빠 따라 맞-윙크를 날린 적 또한 없다.
아빠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아빠 휴대폰 사진첩에 들어가면 아빠가 출퇴근길에 찍은 셀카를 여러 장 볼 수 있다. 아빠는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내 얼굴 정도면 잘났지!" 하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어서다. 이런 말을 할 때의 아빠 얼굴은 유심히 보아야 한다. 아빠의 표정이 다양하지 않아서다. 하하 웃거나 끙 인상 쓰거나, 가면이라도 맞춘 것처럼 두 표정만을 반복해서 짓는 아빠가 가장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지을 때는 '외모 부심'의 순간이다. 아빠의 가면을 타박할 수도 없는 게 나도 아빠처럼 표정이 다양하지 않다. 아빠는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웃는데 나는 굳어버린다.
6학년 때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 때문에 사진 백업 공간에 들어가면 2013년부터 시간 설정이 가능하다. 휴대폰의 카메라 렌즈가 깨지고 예고도 없이 수명을 다한 순간이 많았지만 이런 공간 덕에 매해 사진을 통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아빠는 이 공간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고서에 사진 첨부를 해야 된다기에 나와 엄마가 알려주었다. 내가 스물한 살 때 일로, 이 시기에 <아빠의 사무실>이란 곳을 난생처음 방문하였다. 전문성을 내세울 수 있는 직업을 어찌어찌 찾아본 거 같으나 아빠와는 영 맞지 않았다. 보고서며 기획서 등 서(書)로 끝나는 것들은 아빠한테 꽤나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평생을 사무직으로 살아온 엄마가 퇴근하고 나서 아빠의 과외 선생이 되어 줬지만 끝내 익히질 못했다. 아빠도 나와 엄마가 사는 동네에 살고 싶어 구한 직업 같건만, 얼마 안 있어 아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공장이 많은 다른 도시로 떠났다. 잠깐 한 집에서 살았으나 다시 주말 부녀로 지내게 됐다.
아빠의 사진첩을 보게 되었을 때 적잖이 당황하였다. 나는 기억도 안 나는 사진들이 수두룩 해서였다. 아빠와는 초중고 내내 떨어져 살았다. 언제는 부모님의 사이가 좋았지만 보통은 좋지 못했다. 당연 가족 여행이라는 것도 일찌감치 끊겼으며 누구 하나 넷이 떠나자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기 싫어하였는데, 아빠에게 당신은 <두 딸의 아빠>라는 사실은 꾸준히 상기시켰다. 매해 가족 여행은 못 갔을지라도 도합 여섯 번 있던 딸들의 졸업식에는 아빠가 필참 하였다. "안 와도 괜찮아"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와라"는 엄마의 강압이 있었다. 아빠의 사진첩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게 2015년, 언니의 중학교 졸업식 사진이었다. 언니 친구가 찍어 주어 네 사람의 얼굴이 사진 한 장에 담길 수 있었다. 연도가 기억나지 않는 여행 사진도 남아 있었다. 사진 찍고, 찍히기 좋아하는 아빠의 권유로 생긴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 아빠는 시종일관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빠와 사진을 자주 찍어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시기였다. 아빠의 휴대폰도 내 휴대폰처럼 여러 차례 수리와 교체를 거쳤다. 하나 나와 달리 아빠는 사진을 백업할 수 있는 공간을 몰랐다. 그럼에도 아빠의 사진첩에 그 오래 전의 사진들이 모조리 있는 걸 보면, 매번 사진을 옮기는 과정을 반복했다는 의미였다. 휴대폰 가게 직원분들이 해주셨겠지만 아빠가 그 사진들을 놓치지 않았다는 데서 마음이 애달파졌다. 네 사람 중 얼굴이 그대로인 건 모태 동안인 엄마뿐이다. 자식들은 10대 때 발발하는 문제인 이목구비 성장기와 과도기를 거치느라 차이가 난다. 아빠는 성장판 닫힌 지 오래인 어른이었으니 이목구비는 그대로이지만 "이거 뭐, 20년 전의 사진이야?" 의심하게끔 폭삭 늙어버렸다. 아빠는 사무직을 일찍 찾았어야 했다. 몸으로 때우는 일들 말고 머리 쓰는 일들을 구해야 했다. 모태 동안인 아내를 둔 사람으로서 그래야 했다. 엄마가 남편에게 <아빠>라는 무게를 번번이 지적한 것처럼, 나 또한 아빠에게 <남편>이란 사실을 상기시켜야 했던 걸까? 부모님은 같은 50대인데도 서로 다른 나이대의 얼굴을 지니게 됐다.
아빠는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을 숨긴 채 결혼했다. 엄마는 늘 사무직인데 아빠의 직업은 바뀌었다가, 무(無)였다가, 여러 가지가 섞이는 등 복잡다단했다. 딸인 나마저 전부 알지는 못해서 정리할 시도도 못 낸다. 아빠는 택시 기사로 일한 세월이 있음은 말해주지만, 스스로 떳떳이 굴지 못했을 때의 직업은 말해주지 않는다. 공사판에도 머물러서 나는 '노가다'라는 말을 꽤나 일찍 익혔다. 현재 아빠는 공장에 다닌다. 몇 년 전, 서류들을 팽개친 후 아빠가 찾아간 곳은 프라이팬 공장이었다. 어디서 좋은 정보를 얻어 왔는지 지금은 월급 많고 인정도 받는 공장에 재직 중이다. 아빠에게 '직업 부심'까지 생긴 건 축하할 일이지만, 안전모와 안전복을 볼 때면 탐탁지 않다.
윙크에서 시작한 이야기에 아빠의 현 직업까지 거론하게 되었다. 두서없다! 그래도 쓰다 보니 하고픈 말은 세 가지로 추려졌다. 아빠의 노화 시계가 더디게 흘렀으면 좋겠다는 것. 용돈은 예나 지금이나 필요치 않으니 근무 시간을 늘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 도망은 다녔어도 아빠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데에 감사하다는 것.
추신) <야는 착햐> 매거진이 제 매거진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보이는 거 같습니다. 발행한 편수는 (이번 글 제외) 4편밖에 안 되는데 조회 수가 남다르더라고요. 물론 다른 작가님들에게 비(比)할 바는 못 되지만 초짜로서 예상치 못한 관심에 약간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 얘기가 아니니 쓰는 이는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겠지요? ㅎㅎ 저희 아빠를 향한 관심이라 생각하고 계속 써 보겠습니다. 사진 찍고, 찍히는 것도 좋아하는 데다 얼굴 자부심은 배우 정우성 저리 가라인 아빠에게는 관심이 보약일 거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용돈 협상을 했어도 가끔 초과 금액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