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소비 생활

by 밀과참

엄마는 뭐든 신중히 사주었는데 아빠는 내가 사달라고도 하기 전에 바리바리 내미는 편이었다. 나와 언니가 초등학생 때까지 우리 집에는 온갖 인형들이 쌓여 있었다. 엄마의 속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좋아라 해서, 둘째 딸 반응에 힘입어 더 가져온 것도 있었다. 엄마는 최후의 수단으로 인형들을 쓰레기 봉지에 넣어 내다 버렸다. 크기가 작은 몇몇 인형들만 구조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안 없어져 볼멘소리는 아직도 나오지만 이렇게라도 아빠의 버릇, 그리고 내 욕심을 고쳐야 했을 테다.


초등학생 때는 문구점만이 내 방앗간이었는데, 머리가 커지면서 박물관, 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여기 가자!"는 말에 아빠는 내뺀 적이 없었다. 문구점에 들어가면 절대 빈손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던 아빠는 더 큰 씀씀이를 보여주었다. 내가 원한 게 '구경'이어도 아빠는 그 시간을 추억할 만한 물건들을 꼭 쥐어주었다. 자잘한 브로치부터 몇만 원은 되는 도록까지 다양했다. 동행하지 않은 엄마와 언니 몫의 음식들도 사라 청주 집에 들어설 때면 양손은 늘 무거웠다.


스무 살이 되면서는 치장에 용돈을 썼다. 운동화 말고 처음으로 구두를 신고는 아빠에게 자랑해 봤다. 얼마 안 있어 집안 한구석에 신발 박스들이 쌓이게 되었다. 그 안에는 하나같이 구두가 들어 있었다. 아빠가 사다 둔 거였다. 어느 날은 유행 지난 꽃무늬 원피스를 두 벌 가져왔다. 또 어느 날은 검은색 인조 가죽의 크로스백 세 개를 내 방에 두었다. 출처는 동일하게 '시장'이었다. 현금으로 값을 치렀고, 영수증 또한 받지 않았으니 환불이 불가능했다.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아, 아빠!!!" 소리도 질러보고, "아, 아빠...." 탄식도 해 봤다. 처음엔 나도 내 취향을 몰랐다. 그러다 교복 대신 사복만 입으니 점차 취향이란 게 정립되었다. 아빠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빠의 선택과 내 취향은 꽤나 어긋났다. 인형과 달리 호응이 따라오지 않자 더는 사 오지 않았다. 어찌 됐든 아빠 앞에서는 "갖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이거 예쁘다"는 말도 안 튀어나오게 조심해야 한다.




이런 일화가 증명하듯 아빠는 경제관념이 좋지 못한 편이다. 아빠의 소비 걸음에는 '고민'이라는 돌부리가 있지 않는 게 문제다. 그렇다 해도 아빠가 당신을 위해 과소비하지는 않으니 대놓고 분통을 터뜨릴 수도 없다. 아빠의 살림살이만 보면 간소한 데다 행색도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아빠가 당신을 위해 들르는 방앗간으로는 복권방이 유일하다. 그 때문에 내 나이 스무 살 적, 복권을 사면서 처음의 설렘이란 건 일절 들지 않았다. 복권방 구조는 원래부터 훤히 알았고 종류와 구매 방법도 귀동냥으로 들어 익숙하였다. 이후 '로또'를 주마다 샀다. 엄마에게 꾸중 들을 위험은 없었다. 나는 MZ 세대 아닌가. 동행복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명백한 증거물(종이)을 남기는 일 없이 도전 가능했다. 아빠한테 복권은 일상의 재미지만, 복권을 이제 막 사보는 스무 살에게는 철부지의 희망이랄 게 솟아났다. 수동으로 임했고 일곱 개의 숫자도 신중히 골랐다. 나와 멍멍이의 나이, 언니 생일, 부모님의 생년월일 등을 더해 45 이하의 숫자를 뽑아냈다. 사랑이 가미된들 요행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복권은 타이밍과 인내심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아빠와의 '복권 동지'를 반년만에 관두면서 엄마 편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로또, 연금복권, 스피또, 스포츠 토토.... 아빠가 넷 중 하나만 구매할 때면 가만히 있으나, 넷 중 둘 이상 사 오면 잔소리를 내뿜는다.


이외 아빠가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데는 음식이다. 아빠 입뿐만 아니라 나와 언니, 엄마를 먹이는 데도 써 댄다. 날마다는 아니다. 집에 먹을 게 쌓이는 날이면 아빠가 월급 탄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뜻이고, 아빠가 빈손으로 귀가할 때면 여윳돈이 없다는 내포로 보면 된다. 떨어져 살 때도 아빠 만나면 밥 먹는 게 일이었다. 그때는 왜 밥부터 먹이는지, 뭔 간식을 그리 사주는지 아빠의 음식 폭격에 도리어 식욕이 저하되기도 하였다. 아빠와 같이 산 결과, 아빠가 밥 먹이러 온 날은 돈 들어온 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별거 겸 아빠만의 부랑 생활이 막을 내리면서 아빠는 우리 집 경제의 일원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알아서 벌고 마음대로 썼다면 이제는 단독으로 굴 수 없어진 거다. 우리 집 경제 활동은 엄마라는 큰 축으로 돌아간다. 엄마만이 구성원들(아빠, 언니, 나, 멍멍이)의 소비를 꿰뚫을 수 있다. 구성원들은 자기 명의의 신용카드가 없다. 다만 현금이나 체크카드 말고 '엄카'라는 신용카드도 쓸 수 있다. 엄카를 갖고 다니면서 때 맞춰 정산금을 이체하면 된다. 금액이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더 내는 경우는 없고 가끔 엄마가 선심을 베풀어 깎아주기에 현금 사용보다 이득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이 생활을 가져 7년 차인데, 아빠는 합세한 지 얼마 되질 않았다. '엄카 사용'에 있어서는 내가 아빠의 선배인 셈이다. 직급이 다른 건 아니다. 우리 집 경제는 회장부터 대리 역할까지 엄마가 도맡고 나, 언니, 아빠 세 사람은 일개 사원이다. 용돈은 받으나 엄카를 쓰지 않는 멍멍이는... 마스코트다. 이직하려면 개인 신용 카드를 만듦으로써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아빠는 계획이 없고, 나와 언니도 독립 생각이 아직은 없는 걸 보면 엄마네 복지가 우수한 편이기는 한가 보다. 뻘소리였다.


아빠 휴대폰에 인터넷 뱅킹 어플이 깔린 건 1년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그전까지는 은행에 직접 찾아갔다. 단둘이 만나던 중고등학생 때 아빠는 내가 지갑을 꺼내지 않도록 했다. 아빠 혼자 계산대로 가 바지 주머니나 점퍼 안을 뒤적여 현금을 주섬주섬 내밀었다. 챙겨 온 현금이 떨어진 바람에 은행 ATM기를 찾는 일도 종종 있었다. 현금만을 사용하는 데다 영수증도 받질 않으니 돈이 어디로, 얼마나 새나가는지 파악하기 힘들었을 터이다. 하나 이제는 인터넷 뱅킹을 쓰며, '엄카'도 쥐어져서 아빠의 소비 패턴이 뚜렷해지고 있다.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사원 격에서 해고될 수 있으니 아빠도 몸을 사리는 게 보인다.


막무가내의 소비 생활에 제동이 걸리고 있으나 아직 뿌리 뽑히지는 못했다. 아빠의 씀씀이가 웃픈 추억을 남기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살면서 아빠로부터 "돈 좀 아껴 써"라는 말은 들어보지 않았다. 이 말은 엄마와 나만이 반복하고 있는데 만약 아빠한테 듣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 아빠 맞나 의심부터 할 거 같다.


<<해리 포터>> 구판을 직거래해야 돼서 아빠를 잠시 대동한 날. 아빠는 차에서 기다리지 않고 따라오더니 어김없이 현금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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