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차'에서 '우리 집 차'로

by 밀과참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며 새내기 행사는 모조리 취소에 개강은 지연되었다.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기숙사비와 학생회비도 환불받았다. 집 떠나 개고생 할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집을 떠날 필요가 없어졌으니 개고생도 하질 않았다. 시험도 기말고사 한 번만 치렀고 대면 시험은 전공 수업 세 개뿐이었다. 1학년 1학기 동안 학교에 세 번 나간 셈이다. 그 3일 전부 아빠 차로 이동하였다. 내가 생각해도 지나친 '과보호'여서 내키지는 않았다.


2019년 가을과 겨울 사이부터 아빠와 한 집에서 지냈다. 아빠보다 과보호 경향이 심한 엄마가 '차' 있는 아빠를 부른 거였다. 당시 나는 입시생이었고, 국립대를 지원한 터라 전주, 대전, 부산 세 군데에 면접을 보러 가야 했다. 그때 아빠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나 엄마처럼 근무 시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 날 맞춰 오라고 부탁만 해도 될 텐데, 집까지 불러들인 건 약속 시간 안 지키는 아빠의 고질병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빠가 못 미더웠는지 첫 번째 면접 날엔 엄마도 휴가를 내고 아빠를 감시하였다. 아빠가 첫 임무를 잘 수행하여 남은 면접에서는 아빠와 둘이 다녀오도록 놔두었다.


면접이 끝나도 아빠는 집에 머물렀다. "칠칠이 합격 발표 나면 돌아가겠다!"라고 했다가 "날이 이리 추우니 봄이 되면 돌아가겠다!" 늑장을 피웠다. 아빠는 오랫동안 우리 집 <숙박 금지 대상자>였다. 이 집에 이사 온 게 2012년인데 이사 과정에도 아빠는 없었다. 이후 2019년까지, 딸들 만나거나 아내에게 빌기 위해 들락거리기는 했어도 취침까지 들진 못했다. 그런 아빠와 한 집에서 생활을 지속하는 건 꽤나 낯설게 다가왔다. 집의 소유권자이자 내 보스는 엄마이니 엄마가 뭐라 하기 전까진 나도 가만히 있었다. 좋다고 눌러앉은 아빠도, 그런 아빠를 묵인하는 엄마도 내게는 의아할 뿐이었다.




시험이 있는 3일 동안 학교에 같이 가자고 한 건 아빠의 제안이었다. 과보호 엄마한테 점수 딸 기회이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 세 번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입 면접은 아침부터 출발해야 돼서 아예 휴가를 냈다면 기말 시험은 한낮에 치러지는 것도 있었다. 아빠는 "일하다가 몇 시까지 가겠다" 약속해 놓고 연락을 받질 않았다. 타지라 뒤늦게 버스 탄들 가망이 없으니 아빠만을 기다렸다. "입학하자마자 F라는 걸 받아보겠구나..." 이른 불안도 들었다. 딸이 고속도로가 아니라 여태 집에 있다고 하자 엄마마저 폭발하였다. 아빠는 나타나긴 했다. 시험에 늦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 도착하였고 "봄 지난 지가 언젠데 얼른 안 나가?!" 소리를 들었다.


결론적으로 아빠는 쫓겨나지 않았다. 한 집에서 살다 보니 책임감이란 게 솟아난 건지 아빠가 직접 두 발로 집을 나갔다. 이전에도 고백한 적 있지만 아빠는 여러 일을 전전했다. 아빠가 구할 수 있는 일의 폭이 좁기도 했거니와 아빠도 꾸준히 할 생각을 안 했다. 어린 내 눈에 아빠는 베짱이였고 엄마는 개미였다. 엄마가 아빠에게 평일 하루를 통째로 날리는 면접 동행을 부탁한 것도 아빠가 상대적으로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아무 일이나 번갈아 했으며 벌이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런 아빠에게 2021년 겨울, 다시 무직기(期)가 찾아올 뻔했으나 아빠는 곧장 택배 상하차 일을 구했다. 끙끙 앓다가 사위가 어두운 새벽에 몸을 일으켜 다시 나갔다. 아빠가 엄마한테 일에 대해 의논한 것도 이때 처음 목격했다. 날이 따뜻해지면 아빠에게 익숙한 공사판 일거리가 나타날 거였다. 엄마는 그때까지 쉴 것을 권하였지만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지인이 납품 기사를 추천했다면서 트럭을 몰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안 된다고 막았다. 원래 아빠가 하는 일들도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마는 엄마 눈엔 이 일이 더 위험하게 여겨졌나 보다.


아빠는 숙식이 가능한 공장에 지원하며 떠났다. 2021년 겨울부터 현재 시점인 2023년 가을까지 아빠의 무직기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 어릴 때는 아빠가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일 안 나가는 걸 종종 보았는데, 요즘은 땡땡이치지도 않는다. 토요일 5시면 청주에 도착하고, 일요일 9시나 월요일 새벽 3시면 평택에 가는 규칙적인 루틴이 몇 달째 이어지는 중이다. 아빠에게 <경제적 책임감>이 늦게 찾아든 건 맞다. 그 때문에 한심하다는 손가락질도 받아왔다. 하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모녀는 기대하지 않아서 괜찮았다. 아빠의 변화는 반가운 한편 어색하기도 하다.




아빠는 평일 대낮에 차를 몰며 느닷없이 등장하였고, 아무렇지 않게 갔다. 그 때문에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아빠 차를 타기가 싫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내려야 했다. 이윽고 아빠 차가 아빠를 태운 채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빠가 숙박을 우리 집에서 해결하니 차는 새롭게 비추어졌다. 시험을 보고 나오면 아빠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 마지막 날에는 아빠와 번화가에서 뽈뽈 돌아다니며 놀았다. 같이 맛집을 찾아가고 쇼핑하고 사진을 찍으며 시시덕거렸다. 아빠의 차는 아빠 하고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나까지 태운 채 곧 퇴근할 엄마에게로 향했다. 셋이 차를 타며 귀가했고 차는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쉬었다. (* 언니는 당시도 타지 살이)


미성년자 때는 걸어 다니거나 버스만 탔으니, 저 많은 승용차들이 어딜 가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잦았다. 주말을 비롯한 휴일에 꽉 찬 도로를 보면 '차 타고 놀러 가고 있나 부다', '놀러 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가 부다' 그리 생각했다. 아빠는 차가 있어도 우리 집에는 차가 없다는 게 딱히 부끄럽진 않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서 차를 자주 타 보니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버스처럼 단순 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차 안에서 간식도 먹고 대화도 나누고 노래도 크게 틀 수 있다는 걸, 이런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가 몰고 다니는 차는 아빠의 차에서 우리 집 차로 레벨업 했다. 아빠의 책임감만큼이나 차도 좋아진 이유다.


마트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오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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