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할 버킷리스트

by 밀과참

스무 살의 재미를 코로나로 만끽하지 못한 01년생 동무들은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이 나라, 저 나라 많이들 다니고 있다. 교환 학생, 단기 유학, 워홀뿐 아니라 방학이나 휴학 때 타국행에 오르며 글로벌한 경험을 쌓는 중이다. 나는 어떤고 하면... 여권도 없다. 그렇다고 타국 갈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버킷리스트에는 해외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다. '태국 가기' 말고 '태국에서 코끼리 만나기' 이런 식으로 구체적이다 보니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관광이라는 이름의 착취에 돈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다. 코끼리와 공존하는 마을에 가서, 코끼리를 타는 게 아니라 보고 싶다. 이외 '사막에서 낙타들의 이동 감상하기'도 있다. 코끼리와 낙타는 내가 닮고 싶은 동물들이라 버킷리스트에도 오르게 되었다. 특정 국가 말고 특정 동물이 우선 사항인 셈이다. 좋아하는 나라로는 평화의 나라 '부탄'이 있데, 여긴 가 차원에서 방문객들을 가려 받는다. 개인적으로 국민 정서를 배울 목적 관광보단 머물 싶다. 즉, 셋 다 당장은 이룰 수 없는 버킷 리스트다.


태국에 다녀온 친구가 내 희망 사항을 듣더니 "코끼리를 보러 간다는 게 신기하네"라고 말하였다. <코끼리를 보러 가다> 이 문장만 곱씹어 보자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자주 하는 말 중에 "고양이 보러 가자!"가 있어서였다.




2021년의 어느 일요일, 아빠와 보은에 놀러 갈 일이 생겼다. 그때 우리 부녀의 목적은 '여행'이 아니라 '고양이'였다. 몇 차례 언급하였는데 이 시기 아빠는 이례적이게도 서류 다루는 회사원이었다. 빠가 면접 본 곳은 우리 집 코앞 거리에 있으나, 사업 대상지가 보은이라 출퇴근은 보은으로 해야 됐다. 그러다 한 카페를 알게 되었 그곳에 새끼 고양이들이 있으니 보러 가자는 거였다. 길에서 만나는 새끼 고양이에겐 다가가면 안 된다고 배웠으나 이 고양이들은 집에서 나고 자라 괜찮았나 보다. 새끼 고양이들이 "삐약삐약" 운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어미 고양이는 경계심을 드러내는 대신 카페 사장님이 새끼들 자랑하실 동안 손님들을 반겼다.


아빠가 종종 간다는 주꾸미 식당에도 들렀다. 여기서는 애교 많은 길고양이를 만났다. 아빠 동료분들이 챙겨준다는 길고양와도 마주쳤다. 계획파인 나와 달리 아빠는 즉흥적으로 구는지라, 느닷없이 보은에 가자는 제안이 리지 않기는 하였다. 다만 최고의 일정으로 하루를 보내며 '보은'은 우리 부모님 고향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군(郡)이 되었다. 아빠가 그해 회사를 관두며 보은과의 직접적인 연은 끊겼지만 보은은 꽃도 아름답게 피어나니 매해 방문할 테다.


아빠는 시력이 아주 좋다. 몇 달 전에는 산책하다 말고 새끼 고양이들의 서식지를 발견하였다. 한밤 중인 데다 덩치 큰 성묘도 아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들이라 눈에긴 힘들었다. 나와 엄마는 "어디, 어디?" 되묻기만 하는데 아빠는 "저기, 나무 밑에 숨어 있네!" 정확한 위치를 말하였다. 이후로 현재까지, 멍이와의 산책에서 아빠는 "고양이들 보러 가자!"는 말을 일삼고 있다. 보러 가자는 건 말 그대로 보러 가는 게다. 건강히 놀고 있는지 눈으로만 확인한 후에 귀가한다. 새끼 고양이들은 어느새 어린이 고양이들로 자랐다. 활동 반경도 수풀에서 아파트 단지로 넓혀졌다가 가장 최근에는 동네 마트 뒷골목에서 마주쳐 깜짝 놀랐다. 잘 자라준 게 아주 대견하다.




아빠는 동물과 아기를 예뻐라 한다. 엄마가 아빠와 가정을 이루기로 결심한 것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이러한 애호는 둘째인 내가 빼다 박았다. 아빠는 여전히 아기들이 보이면 꼭 인사를 한다. 다만 더 이상 서글서글한 청년 얼굴이 닌 데다 사회 풍조도 달라지지 않았는가. 그런 까닭에 아빠의 행동을 제지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으니 "그러지 말랬지!" 말하는 데도 아기만 보면 입이 벌어져 소용은 없다. 산책 중에, 나와 엄마가 어디 들를 곳이 생길 경우 아빠는 멍멍이와 둘이서 기다린다. 볼일을 끝내고 나오면 아빠는 때때로 아이들, 혹은 아기를 업은 어머니와 말을 나누고 있다. 후줄근한 옷차림일지언정, 흰 털의 깜찍한 강아지가 옆에 있으니 수상쩍게 보이지는 않나 보다.


아빠의 최애 동물은 딱히 없다. 우리 집 막내인 멍멍이에게 껌뻑 죽어도 강아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저 동물에게 우호적이며, 당신의 우호를 당연하게 여길 뿐이다. 온갖 학대와 착취에 내가 분개할 때면 아빠는 저들의 행동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아 착잡해한다. 아빠는 내가 코끼리와 낙타를 유달리 좋아하며 언젠가 보러 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버킷 리스트가 이루어질 시기엔 아빠 시간이 을 테니 동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빠는 해외를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처럼 '해외' 자체를 갈망하진 않는다. 고로 아빠에게도 "태국 가자!" 말하는 것보다 "코끼리 보러 태국에 가자!"는 말이 훨씬 마음을 동하게 할 테다. 아빠는 <동물의 왕국>도 즐겨 보니 어째 아프리카 국립공원들도 버킷리스트에 넣어야 하나.


아빠와 내 앞엔 이렇게 깜찍한 생명체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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