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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Sep 06. 2023

내면을 위해 외면하지 않을 거야

[ㅚ] 외면하다
연유가 있어서 얼굴을 돌려버리는 일
 까닭이 마땅하지 않다면 변명과도 같은 행동


基 교수님, 건강부터 여쭙고 싶어집니다. 처음보다 끝날 때의 마음가짐이 방대할 수 있다는 걸 基 교수님 수업을 통해 겪었습니다. 처음과 끝 사이에 제 의도는 휘청여서, 그릇된 모습을 문제 될 게 없다며 합리화하였지요. 교수님의 소신과 마주하면서 다행히 합리화를 내버린 채 반성도 할 수 있었습니다. 미성년자도, 새내기도 아닌 이의 못난 객기는 교수님의 포용에 드러나지 않았지만요.


  지난 학기(3학년 2학기)에는 인복이 절정을 찍었는지 본받을 점 넘치는 두 사람과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동갑인 賢은 원래 아는 사이였으나 다섯 강의를 함께 들으면서 단순한 면모 말고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찰싹 기대고 있는 柱 언니와는 말을 나눔과 동시에 생전 처음 겪는 스피드로 화합을 이루었다. 賢은 알고 지낼수록 더 사랑스러운 친구이며, 柱 언니는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 하고 싶게끔 무척 멋지다. 두 사람과 있을 때면 코미디 영화를 한동안 안 봐도 될 만큼 상당량의 웃음을 충전하게 된다. 둘은 내 웃는 얼굴을 유난히 칭찬하는데 둘 덕에 나오는 <찐 웃음> 임을 알랑가 모르겠다. 내 욕심에 꽁꽁 감쳐두고 싶다가도 이리저리 자랑하고픈 두 사람을 서두로 데려와 봤다.


  나의 성실은 가짜가 가미된 성실이라는 걸 둘로 인해 알았다. 농담으로라도 '자휴(* 자체 휴강의 준말, 수업이 있는데도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는 것)' 하겠다고는 못할 만큼 둘은 출석에 민감하기보다는 당연시 여겼다. 賢은 나와 6시간 연강의 동지였고, 柱 언니는 대학 수업이 끝나면 2시간 30분의 또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갔다. 갑자기 보강 잡힌 1시간을 위해 본가에서부터 내달려온 賢과, 모든 수업이 끝나고도 타지에 남아 할 일을 이어가는 柱 언니를 보며 낯 부끄러웠던 순간을 곱씹게 되었다. 賢과는 친해지는 단계에, 柱 언니 하고는 얼굴도 몰랐던 3학년 1학기, 한 수업에 자휴를 2번이나 저질러서다. 




  基 교수님은 <한자와 한문학>이라는 국어국문학과 전공 수업을 맡으셨다. 국문학과는 나와 연관이 없지만 한문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신청하면서 한자와는 관련성이 생기던 참이었다. '복수전공 첫 학기니까 수업 많이 듣고 기초 쌓아야지'라는 포부와 '내용이 겹칠 테니 시험공부 덜 수 있겠다'라는 속내가 섞여 있었다. 基 교수님은 제출용 자기소개서를 돌리셨는데 '한문학과 복전생'이라는 개인 정보는 누설하지 않았다. 대개 인문대 수업들이 그렇지만 어문학은 타과생들이 유난히 기웃거린다. 간혹 수준에 맞지 않게 쉬운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에게는 교수님들께서 한 마디 하시거나, 심하게는 내쫓으시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나는 실력도 없는데 복전생이라는 이유로 오인받을까 봐 함구했던 거다.


  한문학과와 언어학과는 흔하지 않은 학과로, 우리 학교에선 국문학과로부터 독립하여 창설된 거라 들었다. 그렇다 해도 국어국문 학도생들에게는 한문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니 한문 관련 수업들은 여전히 있는 모양이다. 어찌 됐든 전공 수업이라 난이도가 이(易) 말고 난(難)에 치우쳐 있을 거라 여겼는데 어라리요, 교양과 달리 한문 위주로 다루니 범위가 약간 넓으면서도 한자를 쓰는 건 요구하지 않으셔서 할 만했다. 배경지식이 뛰어나면서 교양이나 전공 기초에 출입하는 이들을 '생태계 교란종' '양민 학살'이라고 부르는 눈치다. 일본어 자격시험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N1을 땄으면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시작하는 회화 수업에 출입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수업을 대충 듣고도 A+을 당당히 취해가니, 공부 열심히 하는 학우들의 눈엣가시이기도 하다.


  에이 설마, 내가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자만이라 여기면서 출석하였다. 하나 자기소개서에 적어낸 포부와 달리 조는 횟수가 늘어났다. 물어볼 인맥 한 명 없었으나 필기를 대강하고도 학습에 무리가 없었다. 어라리요! 정말 불순(不純)한 목적으로 앉아 있는 건 아닌가, 거짓말을 한 것마냥 제 발 저리기 시작했다. 중간고사를 치른 지 얼마 안 된 때, 강의실 말고 복도에서 基 교수님과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허억' 숨 참으면서 피하고 싶었다. 基 교수님은 내게 다가오시더니 "이번 시험에서 만점을 맞았던데,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나?" 해맑게 물으셨다. 내 옆에는 하필이면 한문학과 전용 강의실이 위치해 있었다. 이제는 밝혀야 될 거 같아, "사... 사실, 한... 한문이 복수전공인데... 이번 학기부터 하게 돼서 잘은 모릅니다" 구구절절 말했다. 基 교수님은 그렇다면 수업이 쉽지 않으냐는 확인도, 내 시선 회피에 의심도 않으셨다.




  <한자와 한문학> OT가 있던 날에는 다른 두 수업도 있었다.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탓에 두 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사이에 <한자와 한문학> 1시간 수업이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어 '이 수업도 제발 비대면!!!' 간절히 바랐지만 공지는 없었다. 첫 수업과 이 수업 사이에는 2시간의 공강이 있으나 학교와 우리 집까지가 편도 2시간의 거리였다. 시외버스를 바로 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라 아예 학교로 가서 비대면 수업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1시간 전에 연락 주시는 교수님도 계시니' 그리 희망을 걸며 집에 남길 택했으나 첫 수업이 끝나기 전에 날은 개고 말았다. 조바심이 일었다.


  개강 전인 8월 중에 基 교수님은 밴드 주소를 보내오셨다. 가입자가 한 명씩 늘 때마다 먼저 인사를 건네셨고 감미로운 노래 영상도 공유해 주셨다. 基 교수님의 정(情) 쌓기에 타과생으로서 마음이 동했다. 출석 부르지 않는 OT날이니 그냥 빠지면 될 것을 굳이 사유를 밝혀가며 연락을 드린 건 그 때문이었다. 基 교수님께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라고 답해 주셨다. 이후 한 번 더 수업을 빠졌는데 이때는 연락을 남기지 않았다. 단순하고도 가벼운 마음이어서였다. 다른 수업들이 휴강이라 1시간을 위해 왕복 4시간을 가고 싶지 않았다. 엉터리 변명 댈 바에는 연락을 안 드린 거였다.


  해당 학과가 정원도 많으며 타과생도 적지 않은 편인지 결석하는 이들은 매일 발생하였다. 그러다 基 교수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基 교수님의 결단에는 나도 숟가락을 올린 셈이라 경청하였다. 태도 정립의 중요성과 함께, 출석에 대해 당신은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소신을 들려주셨다. "출결이 왜 이 모양이야!" 화내신 게 아니라 "학생들의 앞으로를 위해 이런 소리도 꺼내는 겁니다"라고 평소와 다름없는 톤으로 얘기하셨다. '결석 2번 정도는 출석 점수에 타격을 안 미친다고 하니 괜찮겠지 뭐'라는 마음으로, 단지 편하고 싶어서 두 차례나 빠진 게 그리 부끄러울 수 없었다. 하루는 폭설로 시외버스가 40분을 연착하였다. '이러다간 지각이다' 싶은 걱정에 미리 연락을 드리고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 맞아가며 한달음에 뛰어갔다. 고속도로에선 덜 막힌 덕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였고, 基 교수님은 나를 보시고는 "어! 제시간에 들어왔구먼?"라면서 반가워하셨다.


  중간고사를 성의 없이 치른 건 아니었다. 다만 준비한 것보다 훨씬 쉬웠으며 기말 유형도 똑같이 나올 거라 하셔서 기말에는 힘을 덜 들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해이한 마음을 더는 놔두고 싶지 않아서 지독하게 복습하였다. 이날 시험은 하나뿐이었고, 문제 푸는 데는 30분 정도 걸린 거 같다. 30분을 위해 타지를 오갔지만 괜한 아까움은 찾아들지 않았다. 중요하면서도 진지하게 임하고 싶어진 수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길에 시간 계산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았다. 基 교수님은 그간의 감사와 소회를 밴드에 올리셨고 하굣길에 읽으며 나도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도덕적인 賢과 올바른 柱 언니. 의심하는 대신 끝까지 응원만 건네신 基 교수님. 세 사람은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다. 그 결이 내가 따라가야 할 방향임을 의심치 않는다. 추억의 대상인 基 교수님과 달리 賢과 柱 언니와는 현재도 동행하고 있다. 그릇된 짓을 저질렀을 때 가만히 놔두는 대신 일러줄 사람들이 있으니, 내가 범한 실책을 외면하는 일은 없을 테다. 나 편하자고 외면하기에는 이 같은 결의 사람들이 건네는 눈빛이 꽤나 깊어서 마음까지 울렁이게 만드니! 


날마다 나오는 오리들이 등굣길 친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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