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과참 Sep 16. 2023

나이를 퇴행하는 가족 간의 대화

마미 알라뷰

  우리 가족 중 나만 수면 장애가 있다. 시간이 몇 시든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잠에 ㅈ에도 도달하지 못하기에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침대에 눕는 순간 픽 쓰러질 수 있도록 피로도를 잔뜩 높여놔야 간신히 잠에 들 수 있다. 이번 주에는 연이어 내린 비로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피로도를 좀체 채울 수 없었다. 말똥한 정신에 새벽 5시 넘어서도 몸을 뒤척여야 했다. 이렇다 보니 엄마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나의 수면 부족이다.


  토요일(오늘) 새벽 3시엔 잠깐 바닥에 엎어져 있었는데 아침에 눈 떠 보니 침대였다. 몇 시에, 어떻게 이동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형광등이며 노트북 전원을 켜둔 채 몸만 이동한 거였다.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 당황스럽지는 않았고 그저 좀 더 자고 싶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생각보다 일찍 깨버린 거였다. 전날, 엄마가 오전 중에 안과 다녀오겠다고 미리 말해두긴 하였다. 엄마 얼굴 보고 다시 누우려는데 엄마는 "좀 더 자~"란 말 대신 속사포로 말을 와다다 늘여놓았다.


  정신이 비몽사몽 한 탓에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중요 포인트는 '노화'였다. 원장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이제 연세가 드셨으니 주기적으로 검사해야 합니다"라고 하셨단다. 엄마는 올해 51세(등본상 50세)다. 이 안과를 30 후반부터 다녔으니 원장 선생님의 요지는 이해가 되었다. 다만 엄마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원장 선생님, 우리 집 금지어 중에는 '연세'도 있단 말이에요~!




  나만 보는 일기에는 부모님에게 높임 표현을 쓴다. <엄마가 안과에 다녀오시고는 엉엉 우는 소리를 내셨다> 이런 식으로 쓰는데 브런치 글은 부모님도 볼 수 있기에 일부러 그리 쓰지 않는다. 메신저 상에서나 장난 삼아 존댓말을 쓰기는 해도 평상시에는 부모님과 격 없이 대화 나눈다. 편지에서도 반말 쓴 지 오래되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부모님도 점차 '찐어른'이 되고 있음은 알지만 부모님이 어른 대우를 원치 않아 해서 이러는 거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에게는 높임말을 쓰면 안 되었다. 특히 '연세'처럼 명백한 높임말은 엄마가 무척 싫어하였다. 연세 대신 나이, 생신 대신 생일, 말씀 대신 말, 편찮으시다 대신 아프다, 드시다 대신 먹다.... 전자 말들은 우리 부모님 앞에선 사어(死語)다.


  엄마는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보다는 "마미, 생일 축하축하~!~!" 하고 날뛰는 걸 좋아한다. 어른들이 의아하게 보는 것 중엔 집안 내 호칭도 있다. 아빠엄마가 서로를 '여보'나 '당신'으로 부르는 듣지 못했다. 내가 빡빡이 갓난쟁이일 때부터 머리숱 걱정하는 20대가 된 지금도 부모님은 '자기' 거린다. 가끔 '아저씨'와 '아줌마'라고도 부른다. 아빠가 허세를 떨면 "어후, 아저씨!" 하는 식이다. 하도 듣다 보니 이건 나까지 따라 하게 되었다. 다이소를 구경하던 중, 엄마가 하마터면 식기를 떨어트릴 뻔했다. 제자리에 올려두면서 "아줌마~! 지금 뭐 하세요!" 놀렸더니, 옆에 있던 청년이 날 타박하듯 쳐다봐서 당황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을 야유한 걸로 보였던 걸까? "엄마, 저기 구경하자" 서둘러 말하며 팔짱을 꼈다.


  엄마를 '엄마' 말고도 오마니, 마미, 마마, 바부, 궁딩이 등 다양하게 부른다. '바부'와 '궁딩이'는 우리 집 멍멍이 애칭데 어느새 우리끼리도 쓰게 되었다. 멍멍이 별명 중에는 '똥꼬'도 있다. 그 때문에 가족들 호칭 중에도 똥꼬가 붙는 게 있다. '똥꼬 누나'는 나와 언니를 말한다. '똥꼬 엄마'는 엄마를 가리킨다. 언니에게는 '언니'란 말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 '온닝' '언뉘' '언냐' 등이 그것이다. 아빠는 상대적으로 칭의 가짓수가 적다. 난 태어날 때부터 엄마 팬클럽 1호가 될 운명이었다. 그러니 아빠를 편애하는 것도 있고, 붙어 산 세월이 얼마 되지 않아서 생기지 못한 것도 있다. 차차 생길 테다.


  아빠 혼자 고집하는 호칭으로는 '신랑'과 '색시'가 있다. 이건 멍멍이마저도 오글거려하는데 아빠는 굽히지도 않고 쓴다. 아빠는 연락처에 엄마를 '예쁜 색시'라고 저장해 두었다. 나와 언니는 '첫째 딸', '둘째 딸'이다. 어찌 보면 내 편애보다 아빠의 편애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연락처에서 차별하는 은밀한 수법은 쓰지 않는다. 대놓고 엄마바라기임을 보여줄 뿐이다. 엄마는 얼굴부터 타고난 동안인데 성격도 꾸러기 같은 면이 있어서 위와 같은 말들과 잘 어울린다. 직장에서도 활달하여 29살인 여자 동료와 절친이 되었다. 동료분이 쉬는 날엔 엄마를 불러내는 바람에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껌딱지로서는 쓸쓸한 요즘이다.




  내가 엄마를 '마미'라 부르기 전에 우리 언니가 먼저 '마미'라고 불러댔다. 원래 동생은 언니의 별 거 아닌 것까지 따라 하기 바쁘지 않은가. 우리 집 호칭은 저마다 나이에 맞지 않게 퇴행되어 왔다. 한 번 굳어진 습관은 고치기가 힘드니, 난 서른이 넘어서도 엄마를 '마미'라 부를 테다.


  교수님께서 '격'의 문제로 호칭을 예시 드신 적 있었다. 평상시에 '여보'라 부르며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와 '야'라 불러대는 부부가 있다 할 때, 다툴 일이 생기면 후자의 부부가 더 격하게 싸운다고 한다. '여보'라 부르다가 감정이 상해 '야'가 튀어나올 수는 있어도, 격 없이 '야'라 부르다간 싸울 때 '새ㄲ' 같은 욕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올 수 있다는 거다. 이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뜨끔하였다. 하지만 고쳐지진 않았고 멍멍이를 포함한 구성원 모두 문제 삼을 생각이 없어 보여서 가만히 있는 중이다. 말할 때만 이럴 뿐이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부모님'이니 마음과 행동으로는 효를 실천하고 있다.


  우리 집 호칭은 우리 집만의 애칭(愛稱)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퇴직하고 이름 불릴 일이 없어지면 내가 불러주기로 하였다. 언젠가 'ㅇㅇ양'(* '여사'는 높임말이라 엄마가 싫어한다)도 추가될 예정이다. 어째 호칭의 가짓수는 늘어나기만 할 듯싶다. 그러니 마미야~ 엄마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나는 "진지 잡수셨어요?"는 물론, "끼니는 챙겨드셨어요?"라고 말할 생각이 없단 말이지. "마미, 밥 먹었남?"이라고 물어볼 야. 내가 엄마 눈에는 여전히 아이인 것처럼, 엄마도 내 눈에는 언제고 예쁘고도 빛날 여인일 테니 사회의 기준은 신경 쓰지 말자구. 엄마는 나이 상관없이 생기발랄한 게 어울려!

 

엄마의 '토깽이' 이모티콘. 엄마는 꼭 엄마 닮은 것만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극장, 일상이 모여 삶이 되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