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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Jul 21. 2023

피터팬인지, 한 줌 남은 열정인지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친구들과 한 반에서 생활하며 다분히도 정을 쌓았다. 성인이 된 이후 만남이 끊긴 이들도 있지만 고등학교 친구가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이상 동창들의 근황은 매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나이 스물셋, 만으로는 스물둘. 우리 엄마는 스물넷에 아빠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사진 속의 엄마와 거울 속의 나를 비교해 보면 난 왜 이리 코찔찔이 같은지. 킁. 나오지도 않는 콧물을 삼키며 머리를 긁적인다.


  거의 반년만에 만난 소중한 친구에게서 그 친구답게 빛나는 근황을 듣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당장 내일의 일정도 없어 텅 빈 내 머릿속에 불현듯, 새로운 계획 대신 중학교 3학년 때의 작문이 떠오르고 말았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피터팬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중학교 예비소집일 날에도 벌벌 떨기 바빴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생각을 하니 암울하기만 했다. 아! 정확히는 "피터팬이 되고 싶었다"였다. 성장을 거부한 채 소년이기를 택한 피터팬이 16살의 내 로망이었나 보다. (고백하자면 피터팬의 내용을 알지도 못하면서 용감히그런 비유를 택한 게다.)


  학교 거부의 역사, 취업 거부의 현재. 두 결과에 분명한 원인은 있(었)으나 내 행동이 어리광이 아니라고는 나 또한 단정하지 못하겠다. 결혼식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저 성숙한 남녀는 자식이 이럴 줄 몰랐겠지. 16살의 숙제, 과거형으로 쓴 그 작문이 결국 뒤늦게서야 이루어진 건 아닐까?


  아무래도 내 안에 피터팬이 숨 쉬고 있나 보다. 열정으로 둔갑한 채 내게 손짓하고 있나 보다. 내가 이리 속삭이는데.

  아니야, 이건 내게 남은 한 줌의 열정이야. 또 다른 내가 속삭인다.

  내 안의 남은 무언가가 피터팬인지 열정인지는, 한참 후에야 알 수 있겠지. 그러니 너네 둘은 잠시 입을 다물어다오.


  나만은 나를 믿어야 함에도 쉽지가 않은 요즘이다.

시골쥐는 오늘 서울에 다녀왔는데요. 안곡역 주민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니,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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