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를 만들며 깨달은 것들.
처음으로 집에서 칼국수를 면으로 직접 만들었다가 망한 적이 있다. 어디서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은 있어서 눈대중으로 대충 볼에 밀가루를 털어 넣고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치대고 반죽을 냉장고에 조금 숙성을 시켰다. 도마에 밀가루를 뿌리고 냉장고에서 꺼낸 반죽을 방망이로 밀었다. 얇게 펼친 다음 돌돌 말아 썰 때까지만 해도 그럴싸했는데 면을 들으니 접힌 반죽끼리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멈췄어야 했지만 무슨 자신감인지 끓일 때 젓가락으로 잘 휘저으면 풀릴 것이라 생각하고 칼국수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면을 끓는 육수에 집어넣었다.
완성된 만든 칼국수는 정말.. 맛이 없었다. 30퍼센트 정도만 면의 형상이었다. 어떤 부분은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나머지는 젓가락질에 잘려 나가 부스러기가 되어 국물을 탁하게 만들었다. 몇 시간 동안 공들인 게 아까워 꾸역꾸역 억지로 한 끼를 해결했다.
그 뒤로 우연히 맛집의 수제 만두피를 만드는 영상을 봤다. 영상의 요리사분들은 반죽을 여러 번 치대고 숙성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몇 번을 펴고 접으면서 반죽을 만들었다. 만두의 '소'도 아니고 만두의 '피' 한 장 만드는 것도 그렇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나는 잠깐 냉장고에 넣었다가 바로 썰었으니 쫄깃하기는커녕 뚝뚝 끊기는 밀가루 반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냉장고에 넣기 전에 좀 더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치댔다면 정상적인 칼국수 면이 되지 않았을까? 반죽이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시원하게 뭉쳐서 수제비로 만들어 먹었으면 더 괜찮은 음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일의 '실패 사례'보다는 '성공 사례'에 더 감정 이입을 했다. 당연히 나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장미꽃 미래만을 상상했다. 하지만 시도한 일들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했다. 결국 믿을 거라고는 오직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확신만 믿고 나아가 수밖에 없었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처음 시작할 때 제일 자신 있는 분야여서 확신이 있었고, 자영업을 시작할 때는 '여기는 상권도 있고 주변에 아파트 단지도 있어서 자리가 괜찮아.'라는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확신이 흔들리면 잘 가고 있는 게 맞는지 방향성에 대한 의심이 들고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눈에 띄는 성장이 없으니 왠지 지금 내려놔야 할 것 같고, 빨리 발을 빼야 본전이라도 건질 것 같다. 순간의 흔들림으로 처음의 확신을 의심하기도 한다. 포기해야 할 순감임에도 그동안의 노력이 아깝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고 싶어 물이 나오지 않는 우물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여전히 확신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 나와 주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요령을 피우며 편한 대로 사는 것도 아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놓아야 할 때는 미련 없이 털어 버린 후 새 출발을 하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에 연재하다 정식 출판한 책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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