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을 결정하고 내가 일 년에 최소 천만 원을 모으려면 한 달 얼마를 벌고,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생겼다. 막연하기만 했던 독립 계획에 그럼 꾸준히 돈을 모을 경우에 00년에 독립가능! 이란 구체적인 시기가 계산이 되니 의지가 생기면서도 양가감정이 함께 들었다.
보통 때에는
'그래도 체력 있을 때 하고 싶은 경험을 다 하고 살아본 게 얼마나 큰 자산이야? 20대 때 돈 모은다고 일만 했다고 해도 나는 결국 그림을 그릴 게 분명한데 30대인 내가 20대 때 내가 한 것처럼 말 돼 안 되는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돈보다 값진 경험과 이력이 있는데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라고 생각했다가도 또 어쩔 때는,
'이 돈을 20대 때 회사 다니면서 꾹 참고 일해서 조금이라도 모아 뒀으면 좋았을걸.
이래서 다들 힘들어도 더러워도 참고 직장을 다녔던 거구나.
다 참고 벌어온 세월을 지나 이제는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는데
나는 지금 이 걸 하고 있네...'
이런 생각들이 직장을 구하면서, 입사해 출근을 할 때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카페를 그만두고 취직을 하니 엄마는 '드디어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싶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기뻐했다.
그동안 내가 한 건 일이 아니었나? 계속 내가 하는 이를 못마땅해하더니 카페로 버는 돈보다 직장에 다니며 버는 월급이 더 적었는데도 그냥 남 밑에서 주는 돈 받는 일을 한다니, 엄마는 너무나 좋아했다.
그동안 일러스트레이터와 카페를 하는 동안 온갖 나를 괴롭현던 아프고 모진 말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아침, 저녁까지 출근과 퇴근을 하는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었고 퇴근을 하고 오면 고생했다며 현관까지 나와 나를 반겨줬다.
드디어 나를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친구는 내가 현실적으로 생각한 돈문제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니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과 입사 선물까지 해주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이 사실 될까? 싶었다는 말을 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 가지 일을 모두 다 잡으려고 했던 그동안의 마음을 욕심이었다. '독립'에 초점을 맞추고 저축으로 목표를 잡으니 오히려 정신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열심히 살았던 내 시간들에 대한 것들이 평가 절하 될 때. 정말 속상했다.
요즘 일러스트레이터가 얼마나 많은데,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거기서 그래도 살아남고 버텨왔는데 대박이나 돈을 쓸어 담게 유명해지지 않으면 일반 사람들 눈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헛짓거리로만 보이는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인정받고 응원받고 싶었는데.
아쉬움과 우울함이 밀려들었고 감정이 무너지듯 외로워졌다.
하지만 외롭다고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고, 출근은 해야 한다. 밝은 미소로 일하고 돌아와 스치듯 보고 넘긴 장면을 검색해 개그우먼 조혜련 님이 했던 말을 옮겨 적었다.
"실패는 없어요. 삶에는 과정과 성공만 있는 거예요. 끝까지 살아내는 게 성공이에요."
그래 다시 살아내자. 칼은 뽑았으니 무라도 썰때까진 칼 끝을 흔들리지 말자.
여린 감정과 정신으로 오늘을 무너트리지 말고 목표를 세웠으니 앞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