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심문#5
L. 05
from house
어느새 가을입니다.
보내주신 메일을 받은 지도 벌써 3주가 흘렀습니다.
이집저집우리집 건축주들이 모여 메일 내용을 공유하고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뭔가 더 자연스러운 자리에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런 자리에서 정말 편안하게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여전합니다.
“ 이저우집 사람들이 경험하고, 지켜보시기에 건축가는 어떤 사람 같아 보이나요?”
이번에 주신 질문은, 몇 차례 전체 토론을 거치면서도 오랜 고민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저희가 모여 나눈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정리한 내용들입니다.
건축가는 건축주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 건축사무소 삼간일목(대표 권현효)은, 이집저집우리집 건축주들의 이야기에 잘 귀 기울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건축사와 구성원들의 본디 성격이 배려심 있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첫인상부터 그들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던 것 같다. 건축사 혹은 예비 건축사로서 건축주를 위한 배려는 건축사무소로서 ‘삼간일목’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삶이나 동선을 잘 관찰하고 이해한 뒤, 설계와 건축 작업 전반에 반영/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 설계과정에서 건축가는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주의 삶을 직접 관찰하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주 가정의 24시간 혹은 집안에 있는 주요 시간을 관찰하며 얻을 수 있는 삶과 동선에 대한 정리는 건축주가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얘기하는 것과 분명 다른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사무소 ‘삼간일목’과 많은 대화를 하고 설계 과정에서 1차례 가정방문도 받아 보았다. 하지만 가정방문을 먼저 요청한 것도 건축주였고, 그 역시도 건축주로서 기대하고 바라던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건축과정에 대해 건축가가 쓴 몇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생긴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건축 과정이나 결과가 그렇듯, 이 과정에서도 역시 시간과 비용의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사무소에서 동선 파악과 합리적인 공간 구성을 위한 건축사의 관찰 서비스를 부가적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건축가는 건축주가 꿈꿔왔던, 그림 같은 집을 실제로 지어줄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 이집저집우리집 건축주들이 꿈꿔왔던 그림들이 있다. ‘이집’은 1층과 2층 거주자가 서로를 신경 쓰지 않도록 분리하는 것과 1층 안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열린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 공간 구성의 최우선 과제였다. ‘저집’은 창 밖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욕조가 있는 욕실, 아기자기한 공간 구성을 꿈꿨다. 그리고 실제 설계 과정 중 건축가의 상상력과 공간 구성력을 경험하며 ‘왜 건축 설계는 건축가에게 맡겨야 하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삼간일목은 분명 ‘이집저집우리집’ 건축주들이 꿈꿔왔던 상상 속의 집을 실제로 지어주었다. 건축주의 말과 글, 상상력을 통해서만 그려볼 수 있었던 집을 눈앞에 내어놓아 주는 건축가의 역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건축가는 설계된 집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 건축가에 대한 막연한 인상이며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며 직업이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집저집우리집 건축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삼간일목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접하게 되면서는, 가장 모순적으로 느끼게 된 내용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설계를 하고, 설계대로 집이 지어지도록 감리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실제 건축 현장 시공 과정을 책임지는 것은 시공사였다. 이집저집우리집 만의 특징이 건축과정에서 반영되기는 했지만, 실제 공간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큰 역할은 건축가가 아닌 시공사의 몫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레 건축주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만나고 접하는 사람은 건축가가 아닌, 시공사나 시공자였다. 이집저집우리집을 지은 양평의 주택 건축 현장에서 허가빵 설계가 일반적 방법으로 유통되는 것 역시 이런 역할상의 문제일 수 있다고 느껴본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집을 위해서 적재적소의 조언을 잘해줘야 하는 사람이다.
-건축주는 비전문가이다. 전문가인 건축가에게 절대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다. 건축주는 대부분 실제 '건축'이라는 일에 대해 처음 겪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모르는 부분이 있고 주변에서 들어온 잘못된 정보나 어설픈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신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활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나 살면서 필요한 공간적 구조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주는 건축주의 말로 이야기해도 건축가가 모두 이해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이 전문가이니까.
삼간일목은 건축주의 요구나 의견을 가능한 그대로 수용해 주려고 노력하는 건축사로 보인다. 물론, 그런 모습이 어떤 건축주의 눈에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건축주는, 요구하는 것 ‘그대로’가 아닌 대안적 아이디어 또는 건축주는 상상도 못 할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건축가가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늘 기대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택 설계 작업을 하고자 하는 건축사에게 개인적으로 꼭 바라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건축가가 단독주택 설계를 하려면, 단독주택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라도 꼭 한 번은 살아봤으면 좋겠다. 머릿속 상상과 지식의 영역에 설계가 머물지 않고, 실제 공간과 삶을 통해 적용되었거나 언젠가 적용될 설계를 검증해볼 수 있는 경험이 건축사에게 꼭 내재되길 희망한다. 아니라면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삼간일목을 거쳐 간 많은 건축주들과 건축 이후의 공간과 삶에 대해 피드백받을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볼 수 있길 기대한다.
** 건축가에 대한 발레의 지나가는 말.
좋은 건축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좋은 건축가가 어떤 건축가인지 나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다,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겠나? 거기에다 함께 건축 작업해본 것도 딱 1번뿐이지 않는가? 대부분의 건축주가 그러할 것일 텐데....
‘우리 권형’이 완벽한 건축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긴 하다.
좋은 사람이 완벽한 건축가이지는 않겠지만, 좋은 건축가가 될 가능성은 더 있지 않겠나?
그런 가능성이 삼간일목에 있다고는 생각한다.
- 발레
저희 역시 이번 질문 때문에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 듯합니다.
주신 질문에 적절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메일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지난 질문이 너무 광범위했다고 하셔서, 최대한 간소하게 드립니다.
“건축주들이 삼간일목과 같은 전문 설계사무소를 찾아와 설계를 의뢰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시 공을 삼간일목으로 넘깁니다.
짙어질 가을과 함께 보내주실 메일을 기다리며,
2019.09.23 이집저집우리집 일동
이집저집우리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