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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Nov 14. 2019

08. 여덟 번째 편지

건축심문#8

L. 08


from house



여덟 번째 편지

#8



입동(立冬)을 지나.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일주일 간격으로 정해진 일상들이 느린 듯하면서도 빠르게 흐른 듯합니다. 

금요일이 입동(立冬)이었죠. 

삼간일목은 또 그간 별 일 없었나요? 

이 편지가 여덟 번째 편지라는 것을, 브런치에 올라간 글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몇 번째 편지까지 주고받게 될까,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지난 일곱 번째 편지에 이어 쓰는 이야기가 되므로, 정확하게는 

7-2번째 편지이겠죠. 

막바지에 다다른 가을을 맘껏 즐기시길 바라며, 편지를 띄웁니다. 

10월도 한 주가 넘게 흘렀네요. 






" 공간이 정말 삶을 바꾸는 걸까요? 주택에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바뀐 삶의 방식이나 습관 또는 생각이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질문에 대한 답, 그 2편입니다. 2편 정리 담당 역시, '참치'입니다


지난 1편 이후 시간이 좀 흘러서 글을 다시 봤습니다. 시작할 땐 항상 뭘 쓰지 하다가도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할 말들이 많아지네요. 집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커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저우 사람들의 주택에 대한 경험은 각자 다 다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해 보니 주택에 살며 느낀 가장 다른 점은 집을 둘러싼 환경이 아닐까 합니다.


주택은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고층 건물과 다르게 문을 열면 바로 땅을 밟을 수 있기에 사람에게 뭔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와 같은 간접적인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내 발로 걸어서 집 안팎을 쉽게 누빌 수 있죠.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주변에서 듣는 여러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이것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참치는 다른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 방문해서 하룻밤을 잤는데요, 신축 아파트였고 전체 높이 45층 중 36층에 있는 집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있는 집이었지만 일단 차를 가지고 그 집을 방문하니 뭔가 절차들이 많고 이동 동선이 복잡하더라고요. 비슷비슷해 보이는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그 아파트 동을 찾고, 출차 시스템을 통해 차량 확인을 받고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 빡빡한 주차장 사이에서 겨우 주차 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다시 방문자 출입 시스템을 통해 호수를 누르고 방문객을 확인, 주차장에서 36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동선까지. 주차 자리를 찾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타고 층층이 stop & go를 반복하는 시간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공동 주택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때는 익숙해져서 몰랐는데, 주택에 살면서 우리 집 주차장에 바로 주차하고 몇 걸음 걸어 곧장 현관문을 여는 지금의 ‘5초 시스템’이 너무나 편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죠. 36층에서 보이는 뷰가 너무 좋다고 감탄하는 가족들 앞에서 웃고 있었지만, 내심, 문 밖을 나서면 바로 앞집 문과 엘리베이터가 보이는 이 집이 정말 좋은 것인지, 매번 출입할 때마다 시스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이 집이 과연 편한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담배를 피운다면 36층에서 1층까지 내려와서 외부의 정해진 흡연구역을 찾아가 담배를 피우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 그 불편함이라니.. 흡연자는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최근의 공동 주택이 가진 불편함이 아닐까요?


그리고 새 집이라 모든 붙박이 가구와 조명 등 인테리어도 새 것이었는데, 그냥 전형적인 흰색 하이그로시 소재 기본 제품들과 마감재가 이 집의 개성을 죽이는 것 같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 신축 아파트나 빌라에서 볼 수 있는 듯 한 싱크대, 붙박이장과 선반들이라 만일 저라면, ‘내 집’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집을 매매할 때 선택 사항으로 많이들 본다는 에어컨은 천정형으로 각 방과 거실에 있는 것을 보니, ‘이건 또 필요 이상으로 과한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대 매매가와 쉬운 부동산 거래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기본 인테리어와 탄탄한(?) 옵션 사항이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 거주자들은 살면서 괜찮을지 조금 걱정이 들더군요.


국패 언니의 지인 이야기도 주택에서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인분의 아파트에 엘리베이터 ‘보수공사’를 하는데,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엘리베이터 공사를 재건축할 때 하는 게 아니라 살면서 동시에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8층에 사시는데 하필 그 공사 기간이 한여름이어서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네요. 불편을 예상한 일부 세대는 다른 가족들의 집으로 임시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지만, 아파트 동 전체 주민 대부분이 이동의 불편함을 겪었다고 합니다. 특히, 음식 배달 업체는 엘리베이터 공사 때문에 고층 거주 고객에게는 배달을 보이콧했다고 하는 상황까지 갔다고 하네요. 이저우는 음식 배달이 안 되는 지역에 살기에 그런 걱정은 필요 없지만, 나의 의지와 다른 요소가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그렇게 유쾌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앞서 언급했던 내 발로 땅을 밟을 수 있는 ‘안정감’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겠죠? 공간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아파트나 빌라에서의 삶을 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도심에서 가성비 있게 살 수 있고 재테크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리고 주변 편의 시설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장점일 테니까요. 이저우 사람들은 그런 장점보다는 주택이 주는 환경적인 장점을 더욱 가치 있게 생각한다고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양평으로 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집’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뀐 것 같아요. 서울에 살 때는 언제 어떻게 집을 살까, 옮겨갈까를 고민하며 집테크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젠 정말 이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때로는 힐링하는 곳이 되었거든요. 2년 뒤 전세 기간이 끝난 뒤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는 게 훨씬 단순하고 즐거워짐을, 이 글을 쓰며 새삼 다시 느끼게 되네요.





기대하던 답이 되셨을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2편까지 모두 마치며 처음에 예고해 드린 질문을 다시 한번 띄웁니다. 질문: 


"시장에 청어 장수 a,b,c가 있었습니다. a와 b 상인의 항아리 속 청어는 매번 금방 죽었지만 c 상인의 청어는 가장 늦게까지 항아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두 장수는 c장수에게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 있냐고 물어봤더니 c장수는 항아리에 가물치를 넣어놔서 청어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어의 천적인 가물치의 공격에 죽지 않으려 애쓰다가 그 생명력이 길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의 인생에도 가물치 역할을 하는 가족, 친구, 지인들이 있었기에 보석 같은 시가 나왔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청어인가요, 가물치인가요? 만일 청어라면, 당신의 가물치는 무엇인가요? "


곧, 다시 만나 '잔' 기울일 수 있길.... 


2019.11.10 이집저집우리집 일동 


이집저집우리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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