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아늑함
모자 달린 옷. 보통 후드, 후디라고 불린다. 한 여름 제외하고는 나는 거의 맨날 입는다.
머리 감지 않은 채로 바깥에 나갈 일이 생기면 무조건 뒤집어쓴다. 의도치 않은 정수리냄새 공격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다. 바람 불어 추울 때는 바람막이가 되고 눈부실 때는 선글라스 역할, 선크림 안 발랐을 때는 강제 그늘 생성기로 사용한다.
중세 서민과 수도사들에겐 로브가 있었다. 햇빛 차단, 비 막기, 신분 감추기, 여행 중 먼지 막기, 심지어 베개 대용으로도 썼다. 색깔로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수도사는 검정이나 갈색, 귀족은 화려한 색과 재질의 것으로 한눈에 신분 파악이 가능했다. 귀족만이 후드 없이도 살 수 있었다.
서민들은 며칠씩 걸리는 먼 길을 이동하며 노숙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불을 지피면 도적들의 표적이 되므로 로브를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린 채 추위를 견뎠다. 물을 길어오는 여인네들, 영주의 땅을 일구는 농노들, 갑옷 밑에 입고 이동하는 병사들과 하위직 기사들 모두에게 생존을 위한 아이템이었다. 수도사에겐 소박과 신앙의 상징, 도망자에겐 신분을 감추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인물이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이 영화 속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로빈 후드는 후드 속에 자신을 감추고 정의를 실현했다. 그의 이름엔 로브와 후드가 공존한다. Robe in hood. Rob in hood.
나는 오늘도 후드를 뒤집어쓴다. 동네 누군가는 나를 후드 쓴 아줌마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뉴필로소퍼를 읽으며 샤워는 나중에 하면 된다고 맘속으로 주문을 건다.
모든 것은 의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