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시간
찰나의 시간 또는 영겁의 시간.
시간은 하나지만 스케일은 여러가지다. 수강신청을 하거나 티켓팅을 할 때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도 시간이고, 별이 태어나고 죽는 아주 긴 세월도 시간이다. 시간이라는 흐름은 하나인데 "순간"이나 "세월"처럼 길이에 따라서 다른 단어가 붙는다. 인간은 시간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단어일 것이다. 1초에 60번 정도 날갯짓을 한다는 벌새나 인간보다 오랜 세월을 사는 거북이도 나름대로 시간을 체감할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관심이 많기에 그런 단어를 만들었을 것이다.
초 단위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현대인은 점점 더 짧은 시간에 익숙해진다. 순식간에 정원이 다 차버리는 수강신청, 그 많은 자리가 한 순간에 날라가버리는 티켓팅을 할 때면 1초도 길게 느껴진다. 시간의 입장에서 보면 현대인은 1초라는 짧은 순간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때로는 멍하니 화면만 보면서 몇 시간을 통째로 보내버리기도 하지만 옛날 사람들보다는 훨씬 빠르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현대인이 아닐까.
하지만 원시인도 현대인도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가고 괴로운 시간은 늦게 간다. 물론 그렇게 느끼거나 말거나 시간은 지구 위의 인간들에게 항상 일정한 박자로 흐른다. 1년은 365일이고 하루는 24시간이듯이 말이다. 물론 아주 정확하게 365일도 아니고 24시간도 아닌지라 윤달, 윤년, 윤초 등으로 조정하고는 있지만 지구는 정해진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하루 한 바퀴 자전한다. 인간은 이 일정한 박자 속에 살고 있으면서 자기 감정에 따라 시간이 짧다 길다 말한다.
상대성 이론에 따라 블랙홀 가까이 가면 시간의 박자도 흐트러진다. 하지만 지구 위의 생명체들에게는 동일한 박자로 시간이 흐른다. 인간은 이 동일한 박자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선택의 결과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클릭을 하는 아주 짧은 순간의 선택도 하지만, 지금의 연인과 결혼을 할 것인지, 어디에 입사할 것인지, 반려동물과 함께 살 것인지 등 긴 시간 동안 영향을 미칠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시간은 일정한 박자로 움직여 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다. 때로는 세계 대전이나 코로나처럼 극적이면서도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파도가 밀려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생명은 하나의 시대 속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며 일생을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일생이란 시대가 정해준 결과와 내가 선택한 결과를 받아보는 시간의 조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결과에 따라 생명체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시간이 보기에 지구의 생명이란 24시간 365일이라는 항상 똑같은 박자에 맞추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존재가 아닐까.
사르트르가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말을 했듯이 일생은 선택으로 가득하다. 선택의 결과는 오직 시간만이 알고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삶은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노력, 성취와 파괴, 선행과 악행 등 수없이 많은 것들이 살아있기에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무정하게 흐르기만 하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것 중에서도 인간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인간 역시 시간 위에서 똑같은 박자로 살아가지만 흐르는 시간을 이해할 줄 알고 시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문명 속에서 자신이 살던 흔적을 남기기거나 오랜 시간을 거슬러온 지식을 습득하기도 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기에 일생을 경건하고 바르게 보내기도 하며, 방탕하고 향락적으로 보내기도 한다. 정답은 없지만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주어진 시간의 조각을 충실히 사용한다.
시간은 우주와 함께 생겨났다고 한다. 중력에 따라서 시간의 박자는 바뀌므로 우주 곳곳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음악이 흐르는 무도회라면, 우주 곳곳에는 서로 다른 음악이 흐르는 무도회가 열리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특히 지구에서 열리는 무도회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똑같은 음악 속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물론 춤은 단 한 곡 밖에 못 추고 사라져야 하지만 나름대로 딱 한 곡의 춤을 열심히 춘다. 때로는 자기가 추고 싶은 춤을 추고 때로는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춘다.
시간이 보기에 살아있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춤선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서 또다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거대하고 적막한 우주를 흐르는 시간 입장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여러 모습으로 치장한 생명들이 수없이 다양한 춤을 추는 화려한 무도회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한 곡이 흐르는 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오늘은 무엇을 선택할까. 내일은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선택의 결과는 시간이 결정해준다.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인간은 행복도 불행도 모두 삶이라는 이름으로 끌어 안는다. 우주 전체로 보면 짧고도 조그마한 결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꽤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이해할 수 있기에 가끔은 시간을 내려다보며 삶을 돌아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월의 의미를 찾기도 하며, 때로는 쉬면서 그저 시간을 타고 흘러만 가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생명과는 조금 다르게 시간과 춤을 춘다. 시대가 그런 인간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지만 모두 똑같은 박자 속에서 자신만의 춤으로 살아낸다.
그렇게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있는 시간을 우리는 인생이라 부른다. 우주와 함께 생겨난 시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이란 무척 짧은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짧은 시간이 의미를 갖는 건 선택이라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도 이토록 공허하기만 한 우주 속에서 바지런히 짧은 한 곡을 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 무정하게 흐르는 시간이지만, 인간은 그 얼굴을 마주보고 춤을 춘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작은 존재이긴 해도 시간을 바라볼 수 있기에 인간은 분명 의미 있는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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