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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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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Aug 04. 2022

책 속에 빠지기 전의 유희

읽지 않은 책에 대한 기대

책에 빠져든다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좋은 책을 읽는 건 때론 힘들긴 해도, 책 속에 빠져든다는 건 하나의 우주를 체험하는 것과 같다. 책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우주를 체험하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다. 다른 누군가가 되어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을 체험하다 나오는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하고 지적인 즐거움이 충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즐거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제쳐놓으려 한다. 오늘은 책 속에 빠지기 전의 설렘, 그리고 이 책 저 책을 살펴보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책을 듬뿍 사놓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는 이 책 저 책을 들추어보면서 설렘을 느끼기 때문이다. 판본과 표지의 느낌부터 시작해서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슬슬 훑어보며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대를 하기 시작한다. 출판사가 만들어놓은 유혹의 장치들을 하나씩 밟아나가는 과정인데, 이 유혹 속에서 내가 기대하는 바를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 적당한 밀당을 한다. 내용에 적합한 디자인의 표지, 작가의 이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책의 내용을 천천히 훑어보는 과정은 지르기 전의 설렘과 마찬가지로 구매자를 즐겁게 흔들어 놓는다.


비문학 책의 경우에는 제목과 목차를 살펴보고 책장을 대충 넘겨보며 작가의 문체를 따라가 본다. 픽션처럼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고, 차분차분 잘 만들어진 구조에 따라서 내용을 전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루고 있는 내용이 내 흥미를 끌만한 내용인지를 살펴보면서 고른다. 문학책은 조금 다르다. 에세이 같은 경우는 한 두 개 글을 읽어보고 작가의 문체나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여부를 살펴본다. 작가의 살아온 깊이가 깊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경우에는 구입하기도 한다. 문제는 소설인데, 스포일러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뒷부분은 읽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나는 최대한 작가의 이름이나 첫 문장을 살펴보고 웬만하면 추천글에 의존해서 재미없는 책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구입하면 구입한 책을 쌓아놓고 하나씩 읽는다. 그런데 책을 쌓아놓고 보면 이 책 저 책을 한 번에 읽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란 사람이 한 명이기에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번에 하나씩 읽는 대신, 읽지 않는 시간에는 쌓아둔 책을 이리저리 들춰본다. 완독 할 책은 따로 꺼내놓고 나머지 책들을 이리저리 찔러보듯이 살펴보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즐거울 때가 있다. 책 더미에서 책 제목을 보다가 한 권을 꺼내 든다. 그리고 책을 대충 훑으면서 책이 이야기하는 세계를 슬쩍 구경만 하고 빠져나온다. 그러면 이 책을 읽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을지를 상상하면서 기대감을 높인다. 그러고 나면 괜히 두근두근하고 어서 책을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된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막상 책을 읽을 때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책 속에 빠져들기 전에 이런 유희를 즐기면 무척 흥분된다. 책을 들고 슬쩍슬쩍 보면서 '음, 재밌겠다'하고 생각하는 시기가 가장 기대감이 크다고 할까.


기대감이 지나치면 그 자리에서 읽어버리기도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자리에서 책에 빠져들어 버린다. 좋은 책이면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간혹 가다가 실망하는 책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책 속의 빠지기 전만큼은 그런 유희를 즐긴다. 독서를 하기 전에 느끼는 이 설렘도 내게는 독서라는 행위 안에 포함된 즐거움이다. 


서점 안에 들어갔을 때, 잔뜩 쌓여있는 책들을 보고 흥분을 느끼는 것도 이런 설렘 때문이 아닐까. 곧 만나게 될 우주에 대한 설렘, 그런 우주가 잔뜩 쌓여있다는 충만감, 몸 상할 일 없이 안전한 모험을 떠난다는 신남 등이 합쳐져서 서점에 들어섰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 아닐까. 그리고 실물로 책 한 권 한 권을 만졌을 때 언뜻 보이는 우주의 조각들이 '재밌을 것 같다'라는 느낌을 건네줄 때야 말로 짜릿한 유희를 즐기게 되는 것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또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여운도 나름대로 즐거움을 제공하긴 한다. 하지만 가장 짜릿하고 설레는 순간은 책을 만났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읽으려고 사놓은 책들을 한 권 씩 들춰보면서 '음, 이 책은 이런 이야기를 하겠군', '음, 이 소설은 어떤 맛이 있겠군' 이런 상상을 하면 책이 더 사랑스러워진다. 어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해진다. 독서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되는 원동력이라고 할까. 


단순히 욕심이 많아서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읽는 속도가 책을 고르는 속도를 따라가지를 못해서 항상 이런 설렘을 반복하고만 있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가끔은 다음에 읽을 책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렇게 보면 단순히 책을 한 번에 빨리 많이 읽고 싶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기대하고 두근거리는 것이야말로 내가 독서라는 행위를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증명인 것 같이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책을 즐기는 것이 적어도 내 인생에 재미있는 무언가가 되어 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책을 잔뜩 주문해놓거나 빌려놓고 든든함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가끔 나처럼 책들을 들춰보면서 책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즐거움이 자꾸만 소장 욕구를 부르고 마침내는 서재라도, 더 나아가서는 책방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기 전에 느끼는 이 짜릿한 유희는 독서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고 더 많은 책을 들여다 놓는 계기가 된다. 모쪼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감각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서라는 행위에 따라오는 이 짜릿한 감각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Photo by freestock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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