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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Nov 25. 2022

텍스트에서 멀어지는 날들

언제든 바쁜 날은 있으니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제법 할 일이 많아서 일정이 빠듯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일을 한다. 코딩할 것도 많아서 집중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하다 보니 퇴근하면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책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것이다. 물론, 고되고 힘든 날을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치면 누워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편이라서 그렇게 끊임없이 책을 읽는 분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직업이 개발자이다 보니,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필요한 기술들을 공부해서 억지로 머릿속에 쑤셔 넣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서를 단기간에 읽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느긋하게 하는 독서가 아니다 보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벼락치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억지 공부를 하고 코딩까지 집중해서 하다 보니 뇌가 빨리 지쳐버린다. 그렇게 지친 와중에도 샤워를 하면서 가끔 프로젝트 생각이 번뜩 떠오를 때가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일에 엄청나게 몰입해 있는 것 같다. 이 지경이 되면 쉬어도 쉬는 느낌이 안 든다. 그러니 밤이 되면 그저 벌러덩 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이 정도로 지치면 아무래도 텍스트를 읽기가 어렵다. 뇌가 프로젝트에 최적화되어 굴러가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 상태에서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뇌가 거부 반응을 보인다. 책에 손이 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어도 몰입할 수 없고, 과학, 인문처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힘들다. 지식 노동자의 뇌란 가끔 이렇게 과부하가 걸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럴 때는 억지로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읽지 않는다. 가끔은 야근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부터는 매일 꾸준히 책을 읽는다는 목표도 세우지 않는다. 읽으래야 읽을 수도 없으니, 그저 힘들면 조용히 음악이나 켜놓고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누워서 뇌가 쉬도록 내버려 둔다. 무의식 속 생각까지 뇌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기다려준다. 요즘에는 이렇게 쉬는 시간도 내기 어려워서 독서는 훨씬 뒤로 밀린다.


웬만해서는 잠도 줄이지 않는 탓에 더더욱 책을 읽지 못한다.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위해 잠을 줄이는 분들도 있고, 나도 한 때는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어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은 후에는 잠은 규칙적으로 자려고 노력하고 있다. 잠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해서 잠은 충분히 자려고 한다. 덕분에 책을 손에 잡지도 못하고 잠드는 날이 늘어가는 셈이다.


그렇다고 책 읽는 시간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쌓아놓은 책들은 항상 나를 유혹한다. 펼쳐봤자 얼마 읽지도 못하고 접을 걸 알고 있기에 손을 못 대고 있을 뿐이다. 괜히 온라인 장바구니나 들락날락 거리며 어서 이 책들이 읽을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프로젝트만 끝나면 다 읽어버릴 거라고 괜히 장바구니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며 열의만 불태운다. 






그러다가 정 책 읽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면 간단한 만화책 정도로 합의한다. <책 좀 빌려줄래?> 같은 만화책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 읽는 시간이 그립고 책에 대한 공감을 하고 싶으면 한 번 씩 펼쳐 읽는다. 비슷한 종류의 만화책으로는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이 있다.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을 때, 책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짧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다. 바쁠 때 조금씩 읽으면 좋아서 소장하고 있다. 






그밖에도 잡지 사진이나 그림만 슥 훑어보고 넘어간다던지, 괜히 책장을 바라보며 제목만 따라가며 읽는다던지 다양한 방법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어서 부자가 되어 회사 그만두고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이렇게 벌어서 어느 세월에 부자가 되겠느냐만은, 하루 종일 집에서 콕 박혀서 책만 읽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본다.


뇌도 꾸준히 활동하지 않으면 운동하지 않은 근육처럼 학습 능력이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일정 기간 독서를 놓아버리면 전처럼 책을 읽기 어려워지고 머릿속에 정보를 집어넣기도 어려워진다. 운동하다 만 것처럼 뇌도 어딘가 근질근질해지고 말이다. 하지만 일상이 책을 읽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른이 되고 바쁜 일상을 살아갈수록 오히려 더 퇴보하는 듯이 느껴지는 건, 이렇게 책을 읽는 시간이 자꾸 줄어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Photo by Mikołaj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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